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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1199

[청량리발영화이야기]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러나 이 영화의 질문은 애초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 2022. 12. 13.
[요요와불교산책]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싸운다. 진리를 설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쌍윳따니까야』 22:94)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깊은 산에 있는 사찰은 본당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의 문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문들 중 첫 번째 문이 일주문(一柱門)이다. 기둥 하나로 지붕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일주문이라고 한다. 일주문의 현판에는 보통 산 이름과 절 이름이 쓰여 있다. 그런데 역사가 오랜 절에 가보면 일주문에 앞서 사찰의 존재를 알리는 돌기둥이 있다. 바로 당간지주(幢竿支柱)다. 본래는 두 개의 돌기둥 사이에 높이 솟은 당간이 세워져 있었다. 당간이란 당(幢)이라고도 하고 번(幡)이라고도 하는 깃발을 거는 기둥이다. 당간지주의 용도는 .. 2022. 12. 9.
[메디씨나지중해] 첫 번째 마무리 첫 번째 마무리 끝이 안 날 것 같던 학기도 끝이 났다. 내심 마음을 졸였던 재시험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나는 공식적으로 UAB의 ‘재학생’이 되었다.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집에 돌아오자 제프리가 말했다. 세수도 안 한 것 같은데 보이는 얼굴인데 어째 빛이 난다고. (세수 안 한 건 사실이었다.) 학기 동안 종종 툭 튀어나와 불거졌던 이마의 정맥도 (해리포터의 이마 흉터를 연상시켰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날 점심을 먹고 늘어지게 낮잠을 잤는데 어찌나 달았는지 모른다. 끝을 내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는데, 아침의 흥분은 벌써 사라져 있었다. 시험공부처럼 재미없는 고행(?)을 할 때는 그 끝에 찾아올 자유를 상상하게 된다. 모든 할 일을 마치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때 그 .. 2022. 12. 7.
[레비스트로스와함께하는신화탐구] 식구되기의 어려움 식구되기의 어려움 ⟪고독한 미식가⟫ (☞링크) 2012년부터 시작된 시리즈는 2022년 10월, 시즌 10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질리지도 않고, 다시 한번 가을’이라는 광고문구가 보입니다. 평범한 도시 샐러리맨이 도시 여기저기 혹은 이 도시 저 도시로 외근하다가 중간에 딱 시간 맞춰 먹는 한 끼의 식사! 오지상(미식가 아저씨)은 도심 뒷골목의 오래된 튀김집을 예배하듯 들어가, 음식의 정갈한 태와 맛의 다채로운 조화를 천천히 음미하지요. ⟪고독한 미식가⟫는 나날의 이 일상을 지탱하는 ‘질릴 수 없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밥입니다. 저는 이 고독한 아저씨의 혼밥을 좋아했습니다. 먹는 이야기가 주는 근원적 쾌락(요리의 색, 향기, 맛, 소리!)에 흠뻑 .. 2022.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