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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네트워크90

[현민의 독국유학기] 내가 나여도 되는 공간 내가 나여도 되는 공간   종종 외국에 나와 사는 여자애들을 보면 비슷한 분위기를 느낀다. 정처 없는 느낌. 집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떠도는 사람들의 정처 없음을 그들과 나로부터 느낀다. 가족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나와 친구들의 화두였다. 우리는 만나면 처음엔 웃긴 얘기나 좀 하다가 결국 가족사로 가서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할 것 같은 얼굴들로 끝냈다. 자신의 상처를 바탕삼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의 원가족은 집이었는데,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아니었다. 가족 이야기는 모두가 하나같이 기괴해서 웃겼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처량할 때도 있었다. 도대체 왜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에는 자기 탓을 하기가 가장 쉬웠다. 이제는 그때처럼 가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지겹.. 2025. 1. 21.
[나의 은퇴 이야기] 야호! 은퇴닷! : 사회적 명함에서 내면의 명함으로 1955~1963년 사이에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시화되면서 ‘은퇴’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너무 적었습니다. 작년부터는 1964년생으로 필두로 한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 출생자) 세대가 은퇴를 시작했습니다. 1천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은퇴를 시작한 이때, 우리는 어떤 은퇴를 ‘상상’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지,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미 은퇴를 한, 은퇴를 앞둔, 아직 은퇴가 먼, 각양각색의 학인들이 자신의 은퇴 이야기를 나눕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은퇴 5년차에 접어 드신, 문탁네트워크 철학학교 ‘전교 1등’이자 ‘만능살림꾼’이신 가마솥 샘이 써주셨습니다.야호! 은퇴닷! : 사회적 명함에서 내면의 명함으로 가마솥(.. 2025. 1. 20.
[돼지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1편 - 지구에 살 자격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1편 - 지구에 살 자격  글_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새벽이생추어리 비보질 활동가.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 2025. 1. 15.
[아스퍼거는 귀여워] 촌철살인 감자 촌철살인 감자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에피소드를 먼저 말해볼까 한다. 몇 년 전 진지하게 감자의 대안학교를 알아보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생활을 코로나로 시작해 무려 3년을 제대로 된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고 학년이 올라가 버린 감자는, 또래 관계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고기동에 있는 수지꿈학교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입학설명회를 신청하고 온 가족이 방문했었다. 학교도 둘러보고, 같이 사는(?) 야생 닭도 구경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는 이만하면 보내도 되지 않으냐는 생각이 들었고, 전학을 가는 게 어떨지 감자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감자 왈. “꿈학교를 가도 그렇게 재미있을 거 같지 않고, 손곡초를 그대로 다녀도 재미없을 거 같은데, 그럴 거면 가까운 데로 가는 게 .. 2025.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