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소설 읽는 수경6 돈 드릴로, 『그레이트존스 거리』 ― 시장과 예술 돈 드릴로, 『그레이트존스 거리』 ― 시장과 예술 십여 년 전쯤 처음으로 『화이트 노이즈』를 읽으며 놀라움에 빠졌고 그로부터 몇 해 뒤 『코스모폴리스』를 읽으면서 ‘이건 뭐지?’를 반복했더랬다. 지난해에는 『그레이트존스 거리』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었는데 역시나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초현실적 감각으로 조명하는 소설가 돈 드릴로의 세계를 보는 건 마치 일부러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골라 쓴 것 같은 체험을 선사한다. 그곳에서는 눈짓 한 번으로 수백만 달러를 이동시키는 남자가 비현실적인 그만큼 반자본주의 시위대의 퍼포먼스 또한 비현실적이다. 어떤 장소도 어떤 사람도 기댈 만한 것이 못 된다. 모두가 어딘가 일그러져 있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장소, 그곳이 돈 드릴로가 보여주는 현대 도시다... 2017. 9. 19. 제임스 설터, 『어젯밤』- 어제, 밤 우리에게도 일어난 일들 제임스 설터, 『어젯밤』- 어제, 밤 우리에게도 일어난 일들 제임스 설터의 소설집 『어젯밤』을 읽었다. 이 이름이 낯선 이들이 많겠지만 설터는 이미 해외에서는 최고의 문장을 쓰는 작가로 인정받는 80대의 노작가다. 국내에 소개된 건 『어젯밤』과 『가벼운 나날』 단 두 권뿐인데 듣기로는 그의 다른 작품도 현재 번역 중이라고 한다. 미국의 단편 소설가. 이 말만으로 떠오르는 몇몇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헤밍웨이, 카버, 존 치버와 같은 설터라는 이름을 그 계보 끝에 달아두는 게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어젯밤』에 실린 열 편의 단편을 보건대 그는 군더더기가 될 만한 것들을 다 거둬내고 오직 핵심만을 보여주는 데 있어 발군의 실력을 지녔다. 이는 하드보일드의 대가로 이름을 떨친 헤밍웨이나 미니멀리스트로 손.. 2017. 7. 21. 한강 『소년이 온다』 - 소년이 살았던 삶, 그리고... 한강 『소년이 온다』 - 소년이 살았던 삶, 살았을 수도 있었을 삶 광주 이야기가 또 다시 소설로 나왔다.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그것이다. 신간 출간 소식에 처음에는 좀 시큰둥했었는데 그 이유는 더 이상 작가에게도 광주 이야기에도 큰 흥미나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다보니 책을 구입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처음 그 책을 펼쳤다가 아주 혼이 났다. 자꾸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작품 제목이 암시하듯,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저어기 80년 광주에서 살던 소년이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서서히 다가오는 걸 경험하게 된다. 계엄령 당시 거리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정신없이 도망쳐야 했던 소년, 그 후 도청의 다른 시민군 사이에서 지내기 시작한 소년, 그리고 잔혹했던 마지막.. 2017. 6. 16.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 기억에 관한 무참한 이야기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 기억에 관한 무참한 이야기 제목이 너무 감각적이라 선택이 머뭇거려지는 경우들이 있다. 이 작품도 그랬다. 현대 여성작가가 ‘슬픈 짐승’이라는 제목으로 쓴 소설… 작품을 보지 않고도 ‘촉’이 왔다. 표지를 봤더니 첼로 뒤에 누운 여인(남자 다리 같지는 않다)의 벗은 다리 사진이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뭣에 씌었는지 책을 주문했고 도착한 그날부터 읽기 시작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문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라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간을 이해하게끔 만들어버리는 그 마력과도 같은 힘에 대해. 간단히 말해 이 작품은 짧은 사랑과 긴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중년의 여인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발작 이후 몇 .. 2017. 5. 19.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