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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왕양명마이너리티리포트22

[왕양명의마이너리티리포트]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내일이 아니라 매일 - 유배라는 시간 한편 유배에 관해 한 가지 더 말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배라는 시간에 관한 것입니다. 유배라는 시간? 다소 모순 형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보통 유배를 절해고도 혹은 깊은 산속 같은 공간의 차원에서 상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유배의 핵심은 오히려 시간 문제를 생각해보는 데에 있습니다. 예컨대 용장에서 지낸 양명의 유배생활은 채 2년이 되지 않습니다. 원인이 되었던 환관 유근의 전횡에 대한 비판 상소문 사건이 정덕 원년(서기 1506년) 일이고, 그로 인해 장형 40대를 맞고 만신창이가된 몸으로 좌천(유배.. 2022. 5. 10.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정덕 3년(1508년), 귀주성 용장에 무슨 일이? 주자(주희)는 사유가 방대하고 놀라우리만치 담대한 대학자이지만, 결정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의 사유는 어떤 경계가 있습니다. 안과 밖, 나와 너, 중화와 오랑캐 등등. 물론 주자 혹은 주자주의자(?)들에게는 이런 지적 자체가 부당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주자의 학문 혹은 사상적 배경이 어떤 경계를 전제하고 있는 한 이분적(화이론적) 구도를 공고히 하게된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는 이미 5, 6세 때부터 생각에 잠겨 괴로워했다. 대체 천지사방의 바깥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사방은 끝이 없다고들 사람.. 2022. 4. 12.
[왕양명의마이너리티리포트]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치우, 상 그리고 묘족 - 왜 순(舜)이 아니라 상(象)이었을까 귀주(貴州). 귀주는 북쪽으로는 사천, 서쪽으로는 운남, 동쪽으로는 호남성, 남쪽으로는 광서성장족자치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중국 전체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곳입니다. 지형이 험준하다보니 왕래가 적어서 고립지가 많기 때문인데, 정식으로 중국사에 편입된 것도 명나라 때부터이니 실제로 귀주는 오랫동안 중국의 외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게 귀주는, 양명학을 공부하게 된 이래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가 봐야 하는?) 장소였습니다(양명의 연보에서 귀주는 양명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는, 다시 말해 양명.. 2022. 3. 15.
[왕양명마이너리티리포트]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2부. 슬기로운 유배생활(1) -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영취산과 박남산이 어우러진 곳에 상(象)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사당 아래에는 묘족들이 모여 사는데 상을 신으로 여기고 섬긴다. 선위사(宣慰使) 안귀영(安貴榮)이 그 사당 건물을 새롭게 해달라는 묘족인들의 요청에 인연하여 나에게 사당의 기문을 요청해왔다. 내가 물었다. “헐어버릴 겁니까? 아니면 새롭게 고칠 겁니까?” 선위사 안군이 대답하여 말하길, “새롭게 고치겠습니다.” “그것을 새로 짓는다니 왜 때문에?”선위사 안군이 대답했다. “이 사당의 시원성(상징성) 때문입니다. 아무도 이 사당의 기원 등에 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살고있는 토착 오랑캐 종족들은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 2022.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