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1024 작은 것들을 위한 시 – 노르웨이 동화 ‘에스펜의 피리’ 작은 것들을 위한 시 – 노르웨이 동화 ‘에스펜의 피리’ 구석으로부터의 사색 ‘사랑은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도 큰 의미를 갖게 만든다’고 방탄소년단은 말했다.(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그렇다면 둥순이와 둥자는 정녕 세계의 구석구석을, 한없이 미세한 수준에서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 오늘도 둥시는 집 구석 어딘가를 찾아 들어가 앉아 있다. 딱 붙여 놓은 침대 옆에 조금 남아 있는 벽면이라든가, 빨래가 휘휘 널린 빨래대 아래. 그도 아니면 이불장 안이나 식탁 밑. 아이들은 왜 구석을 좋아하는 것일까? 비좁고 어둑한데. 갑갑하지 않나? 좀 호방하게 컸으면 좋겠는데 저렇게 구멍만 찾다가는 쪼잔한 어린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구석에서 하고 있는 놀이가 또 대단하다. 정말 작은 것들을 갖고 놀기 .. 2020. 7. 6. [나의삶과천개의고원] 지난 10년간 대체 무슨 일이? 지난 10년간 대체 무슨 일이? 골목에서 한 아이가 정신없이 놀고 있다. 순간, 한 모퉁이에서 트럭이 돌진해 온다. 아이는 갑자기 커다란 외침을 듣는다. “빨리 피해!”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옆으로 비켜선다. 세월이 한참이 지난 뒤, 그 아이는 승려가 되었다. 쉰이 넘은 어느 날, 참선을 하다 삼매에 들었다. 순간 눈앞에 한 아이가 골목에서 트럭에 치일 뻔한 장면이 나타난다. 노승은 전신으로 아이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빨리 피해!” 결국 그 옛날 자신을 구해준 목소리는 수십 년 뒤의 ‘자기’였던 것.- 고미숙, 『계몽의 시대』, 2014, 북드라망, 15~16쪽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구하다니. 현재라는 시공간은 단순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왜냐.. 2020. 7. 1. [쿠바리포트] 코로나를 ‘뻬스끼사’ 하라(2) -커뮤니티, 바이러스를 걸러내는 마법의 필터 코로나를 ‘뻬스끼사’ 하라(2) - 커뮤니티, 바이러스를 걸러내는 마법의 필터 지금 나는 내 구역 주민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웠다. 이름뿐인가. 몇 명이 한 집에 사는지, 연령대는 어떠한지, 친하게 지내는 이웃은 누구인지, 가족 분위기는 어떠한지도 대충 알게 되었다. 두 달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매일 동일한 내용을 필사하는데다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얼굴을 보기 때문이다. 이제 주민들도 나와의 거리가 좀 가까워졌다고 느끼는지, 어떤 할머니들은 커피를 건네거나 나를 붙잡고 아침 수다를 떠신다. 습하고 끈적거리는 날씨를 피해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로서는 좀 곤란하다. 그래도 호기심 때문에 떠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6호 아파트 할머니의 아들은 에콰도르에 살면서 약을 보내주는데 지금 국경이 막혀서 곤.. 2020. 6. 23. [쿠바리포트] 코로나를 ‘뻬스끼사’ 하라 (1) – 쿠바산 타가진단 앱 코로나를 ‘뻬스끼사’ 하라 (1) – 쿠바산 타가진단 앱 잠든 자들의 도시 조용하다. 뜨겁다. 아무 일도 없다. 요즘 내가 보는 쿠바의 모습이다. 전국 격리 조치가 실행된 지 벌써 두 달이 꽉 차게 흘렀다. 3월 말에 닫혔던 국경은 6월에도 닫힐 예정이고, 매연을 뿜는 올드카로 소란스러웠던 거리는 완벽하게 비워졌다. 살 태우는 햇볕 아래서 시간만 증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쿠바의 코로나 확진자는 2,000명을 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말 선방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죽음의 전운이 감도는 고요는 아니고, 기약 없이 영영 잠들어버린 도시의 고요다. 이 집단 수면 상태에서 시간의 흐름을 유일하게 알려주는 것은 조금씩 늘어나는 확진자 통계와 날씨뿐이다. 올해 특히 변덕스러웠던 날씨는 몇 번 추위를 타더니 결국 완.. 2020. 6. 22. 이전 1 ··· 54 55 56 57 58 59 60 ··· 2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