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263 [씨앗문장] 인공지능 시대에 생각하는 하던 것을 ‘그냥 하기’ 인공지능 시대에 생각하는 하던 것을 ‘그냥 하기’“무엇보다 내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이 지적 생산을 대체하게 된다면, 책을 쓰는 인간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다. 나는 몇 년에 걸쳐서 고민하며 강도 높은 노동을 통해 원고를 쓴다. 영어가 모어인 내가 한국어로 원고를 쓴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은 방대한 원고를 순식간에 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몇 개의 언어로도 순식간에 결과물을 토해낸다. 그런 시대가 현실화 되었다. 이 책을 쓰는 내내 인공지능은 잘 훈련된 연구 조교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협력적 관계였다. 하지만 과연 여기에서 끝일까? 걱정을 하고 있자니, 걱정이 끝이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걱정을 멈추기로 했다. 나는 인문학자로서, 앞으로도 쓰고 싶은 주제에 더욱 더 최선을 다해.. 2026. 7. 30. "늘 그렇지는 않다" "늘 그렇지는 않다" " 불교 선생님 잭 콘필드(Jack Kornfield)는 언젠가 삶의 전부를 다음의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늘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하루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결정할까? 늘 그렇지는 않다. 친구나 친척 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행동할 것 같나? 늘 그렇지는 않다. 패턴이 존재하지만 패턴 자체를 복잡하고 재미있게 만들어 패턴의 형성을 방해하는 빠진 코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란 패턴이 망가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것, 빠진 코에 대한 것이다.(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한유주 옮김, 마티, 2022, 191쪽) 미국의 불교명상사이자 심리학자인 잭 콘필드가 말한, 삶의 전부를 요약하는 세 단어는 Not always so, 늘 그렇지.. 2026. 7. 16. 4월의 슬픔은 우리가 맺어온 연결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4월의 슬픔은 우리가 맺어온 연결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주디스] 버틀러는 상실의 슬픔이 파도처럼 우리를 덮칠 때, ‘알 수 없음’이 우리를 장악한다고 말한다. (......) ‘너’를 상실함으로써 내가 무언가에 압도된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알 수 없다는 감각이다. 이것은 나 자신을 벗어나는 감각,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는 박탈의 감각이기도 하다. ‘너’를 상실하게 되면서 사실은 내 존재가 ‘너’ 덕분에 가능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알 수 없음’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나를 구성하는 것이 너와의 유대관계였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슬픔은 몸에 대한 버틀러의 사유를 확장한다.”(이선현, 「주디스 버틀러, 몸 그리고 수행성」, 『여성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216~217쪽)12년 전 그때부터.. 2026. 4. 24. 『애프터 해러웨이』 - 사실과 진실의 줄다리기 『애프터 해러웨이』 - 사실과 진실의 줄다리기“탈체현적 표상 안에서 지식은 ‘관점 없는 것(pespectiveless)’이 된다. ‘만일 지식 생산과 평가 안에서 지식의 주체가 하나의 맹점으로 남겨진다면, 필연적으로 모든 지식은 그 중심부에서부터 환원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요소로 오염될 것이다.’ 이 표상체계 안에서는 흔히 잊혀 왔지만, 우리는 보기 위해서, 그리고 ‘시각’이라는 감각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몸을 배워야 한다.” - 김애령, 『애프터 해러웨이』, 봄날의박씨, 95쪽푸코는 『주체의 해석학』에서 서구 주체성의 역사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데카르트적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가 ‘데카르트적 순간’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주체가 진리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변형시킬.. 2025. 11. 28. 이전 1 2 3 4 ··· 6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