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융12 [내가 만난 융] 정신의 팽창, 페르소나와의 동일시 정신의 팽창, 페르소나와의 동일시 지 산 씨 (사이재) 나는 왕이다, 짐은 국가다! AI가 의사를 대신하여 수술을 하고, 기자를 대신하여 기사를 쓰고, 판검사를 대신하여 판결을 내린다. 이미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계적인 바둑기사 이세돌과 대결하여 4승 1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바둑계를 초토화시켰다. 이 세기의 대결은 인공지능 시대의 서막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AI는 이제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AI의 결과물을 판에 박힌 공산품이라 폄하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지능과 독창성과 예술성 그 어떤 방면에서도 인간 못지않다. 아니 인간을 뛰어넘는다. 21세기 인간들은 ‘신과 비슷한’ AI를 창조하셨다! 그런데 기술문명의 이 거침없는 도약에 비교할 때 인간의 마음은 어떤가.. 2025. 9. 4. [내가 만난 융] 뮤즈인가, 나락行 급행열차인가 ─ 아니마/아니무스 뮤즈인가, 나락行 급행열차인가 ─ 아니마/아니무스 서 윤 (사이재) 그림자와의 대면이 도제徒弟의 작품이라면, 아니마와의 대면은 장인匠人의 작품이다. 『원형과 무의식』, C.G.융, 솔, 139쪽.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 곁에서 영감을 주는 존재가, 뮤즈라 불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일부 예술가들의 삶에서만 발생하는 특별한 사건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뻔한 삶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시도를 하도록 고무하고, 그리하여 무언가를 낳도록 자극하는 존재가 바로 뮤즈 아니던가. 그렇다면 평범한 나도 영감을 주는 존재를 향한 갈망과 부득이한 사로잡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며 엮이는 그런 관계들을 극화(劇化)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2025. 7. 3. [내가 만난 융] 작은 것보다 더 작고 큰 것보다 더 큰, 자기 작은 것보다 더 작고 큰 것보다 더 큰, 자기정기재 (사이재) “고유한 자신이 될 수 있는 자는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파라켈수스)” (카를 융,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정신요법의 기본 문제』, 솔, 2001, 80쪽) 에스토니아 민담에 등장하는 이 소녀는 하찮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처지다. 의지가지 하나 없는 고아인 데다가 계모 밑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다.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바느질을 해야 겨우 매질을 면하는 고단한 신세. 의붓딸의 처지를 알고 교묘하게 파고드는 하녀의 심술은 덤이다. 그러나 단정하고 순종적인 이 소녀는 그 모든 상황을 무던히 견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소녀가 더 이상 집에 머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의 유일한 생존 수단이던 실패가 샘물에 떨어.. 2025. 6. 5. [내가 만난 융]마음의 갈피를 잡자(2)– 정신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하여 내가 만난 융 마음의 갈피를 잡자(2) – 정신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하여 지산씨 (사이재)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 요즈음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과 그의 강연이 화제다. 작금의 시국과 맞물려 우리 모두는 또다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강의 소설과 강연이 한층 더 저릿하게 다가온다. 그 어느 때도 아닌 바로 지금 한강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의식의 신호이자 경고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의 끝에서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찾고 있다고. 역사적이고 국가적 폭력인 5·18과 4·3, 인간의 근원적 폭력인 먹고 먹히는 싸움, 여기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리고 ‘이런 세계.. 2025. 5. 8.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