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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씨나 지중해15

[메디씨나 지중해] 손님맞이의 시간 손님맞이의 시간 북적였던 겨울 바르셀로나에도 봄바람이 분다. 2023년으로 해가 바뀐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달력이 3월로 넘어간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매년 매번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 같다. 도대체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지? 내 나이 앞자리가 언제 바뀌었더라? 그렇게 십 년이 흐른다. 올해는 내가 한국을 떠나 산지 햇수로 십년 째 되는 해다. 이번 겨울은 내가 바르셀로나에 온 후 처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시간이었다. 그제야 내가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꽤 흘렀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지만 나의 손님맞이는 이번에도 미숙했다. 원래도 가이드를 못 하기로 유명한 나이지만, 바르셀로나 도심으로 이사를 온 건 겨우 두 달 전인지라 정말 아는 게 없었다. 손님들이 오히려 바르셀로나 맛.. 2023. 5. 18.
[메디씨나 지중해] 이사 이야기 이사 이야기 마라갈 주민이 되다 내가 바르셀로나로 공부하러 가게 되었다고 공표했을 당시, 많은 지인이 나를 찾아가겠노라고 약속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꼭 짚어야만 했는데, 내가 공부하게 될 학교가 행정구역상 ‘바르셀로나‘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내가 살았던 기숙사 캠퍼스는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사십 분은 나가야 나오는 산에 있었다. 밤이면 멧돼지가 출몰하고, 낮이면 수의대 학생들이 양과 말을 치는 그런 캠퍼스에… 덕분에 나는 지난 일 년 반 동안 바르셀로나 도심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살았다. 내가 찍는 일상 사진은 초록빛 자연의 색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한국 지인들에게 이 야생(?)의 캠퍼스를 소개할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다. 올겨울부터 한국 손님들이 하나둘씩 바르셀로나를 방문하기 시.. 2023. 4. 25.
[메디씨나 지중해]새해를 맞이하며 새해를 맞이하며 끝없는 장작패기 누군가 나에게 의학공부가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고생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무슨 영광을 보려고? 애초에 의사를 꿈꿨던 것도 아닌데.) 게다가 지금 바르셀로나에서 공부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순탄치 못했다. 사 년 전 의학 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 사촌동생이 만학도냐고 나를 놀렸다. 온 우주도 내가 만학도가 되기를 바랐던 것인가, ‘글로벌 천재지변’은 내 공부를 몇 년 더 지연시켰고, 덕분에 나는 올해야 병리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지만 요즘, 스페인인들 모두가 성찬을 즐기며 여유를 만끽하는 연말에 수백 쪽의 종이에 묻혀 여전히 ‘의학의 유령’과 씨름하고 있는 요즘,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이게 대체 어떻게 ‘재미’가 될 수 .. 2023. 3. 28.
[메디씨나 지중해] 중심과 주변 중심과 주변 UAB 의대에 발 붙인지 일 년 반이 흘렀다. 요즘 들어 부쩍 생각하게 된 주제가 있다. 바르셀로나 의대생들이 보여주는 미묘한 다이내믹이다. 작년에는 내 발 등에 떨어진 불(카탈란어, 새로운 시험 방식, 갑자기 다시 들춰보게 된 삼각함수와 자연로그…)을 끄느라 급급해서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었는데, 이제는 동료 의대생들의 모습을 관찰할 여유까지 생기다니. 바르셀로나에 정말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관찰은 내 학교생활에서 빼먹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다. 나는 내가 우리 학교에서 가장 특이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바르셀로나에 전혀 연고가 없는 한국인, 의대 공부를 시작한 곳은 보통의 스페인인들이 전혀 모르는 쿠바, 의대와 상관없는 직업(글쓰기), 게다가 결혼한 유부녀이기도 하다. .. 2023.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