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문장85 [씨앗문장] "누구에게나 제 시간의 사다리가 있다" "누구에게나 제 시간의 사다리가 있다" "누구에게나 제 시간의 사다리가 있다. 볼테르는 예순 살에 칼라스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심하고, 예순여덟 살에 풍자문을 출간한다. 3년 뒤에는 시르방 부부를 옹호하고, 일흔일곱 살에는 그들의 명예회복을 얻어낸다. 말레르브는 일흔두 살에 루이 16세를 옹호한다. 베르디는 여든 살에 를 작곡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여든아홉 살인 1961년에 핵무기에 반대하는 100인 위원회의 위원으로서 평화시위를 위해 대중에게 길바닥에 앉도록 권유한다. 보르헤스는 브로디의 보고서 서문에 70년을 보내고서야 마침내 자신의 언어를 찾았다고 쓴다."(로르 아들레르, 『노년 끌어안기』,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2022, 86~87쪽) 우리는 삶의 '시간표'를 작성해 놓는 데 익숙하다... 2026. 8. 12. "늘 그렇지는 않다" "늘 그렇지는 않다" " 불교 선생님 잭 콘필드(Jack Kornfield)는 언젠가 삶의 전부를 다음의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늘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하루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결정할까? 늘 그렇지는 않다. 친구나 친척 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행동할 것 같나? 늘 그렇지는 않다. 패턴이 존재하지만 패턴 자체를 복잡하고 재미있게 만들어 패턴의 형성을 방해하는 빠진 코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란 패턴이 망가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것, 빠진 코에 대한 것이다.(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한유주 옮김, 마티, 2022, 191쪽) 미국의 불교명상사이자 심리학자인 잭 콘필드가 말한, 삶의 전부를 요약하는 세 단어는 Not always so, 늘 그렇지.. 2026. 7. 16. 4월의 슬픔은 우리가 맺어온 연결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4월의 슬픔은 우리가 맺어온 연결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주디스] 버틀러는 상실의 슬픔이 파도처럼 우리를 덮칠 때, ‘알 수 없음’이 우리를 장악한다고 말한다. (......) ‘너’를 상실함으로써 내가 무언가에 압도된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알 수 없다는 감각이다. 이것은 나 자신을 벗어나는 감각,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는 박탈의 감각이기도 하다. ‘너’를 상실하게 되면서 사실은 내 존재가 ‘너’ 덕분에 가능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알 수 없음’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나를 구성하는 것이 너와의 유대관계였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슬픔은 몸에 대한 버틀러의 사유를 확장한다.”(이선현, 「주디스 버틀러, 몸 그리고 수행성」, 『여성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216~217쪽)12년 전 그때부터.. 2026. 4. 24. 스토아적 삶의 방식‘우리에게 달린 것과 달리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스토아적 삶의 방식 ‘우리에게 달린 것과 달리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정승연(『세미나책』 저자) 우리가 자유를 행사하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다. 운명과 사건의 거대한 흐름 한가운데 탈취할 수 없는 자율의 섬이 있다. 우리에게 달린 것은 우리 영혼의 행위다. 그 행위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니까. 어떤 것을 판단하느냐 마느냐, 어떤 식으로 판단하느냐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무엇을 욕망하느냐 마느냐, 어떤 것을 원하느냐 아니냐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반대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픽테토스는 육신, 부, 명예, 높은 직위가 그런 것이라고 보는데)은 자연 일반의 흐름에 달려 있다. 육신은 대체로 우리 의지로 움직일 수 있지만 육신의 생로병사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 2025. 10. 31. 이전 1 2 3 4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