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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발굴, <한서>라는 역사책28

[발굴!한서라는역사책] 때를 아는 군주, 선제가 주도권을 잡기까지 때를 아는 군주, 선제가 주도권을 잡기까지 몰락한 황족의 후손으로 18년간 평민으로 지내다 천운으로 황제에 오른 선제 유병이. 그는 정치와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막상 황위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정을 펼쳐, 한나라의 중흥기를 열었다. 선제의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제의 25년간의 재위 기간 중 초기 8년간의 행적, 그 중에서도 선제와 곽광의 8년 간의 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이 재위에 오른 선제가 곽광의 권력을 해체하고, 조정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힘이 없는 군주가 살아남는 법 선제 초기 8년은 곽광의 시대였다. 곽광.. 2021. 5. 27.
[발굴!한서라는역사책] 선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황제에 오르다 선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황제에 오르다 현대인은 자기 현존에 대한 불행을 상처에서 찾는 것에 익숙하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지 못한 애정결핍을 시작으로, 이별에, 재수에, 취업실패까지, 이 상처로 아프고, 저 상처로 아프다. 정말 삶의 불행이 상처에 기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런 상처는 어떨까? 천애고아에, 한때는 고귀한 황족이었으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적의 자손이 되어 밑바닥으로 떨어진 삶. 오늘날 현대인의 상처와 견주어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불행한 삶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 상처의 주인공은 훗날 유하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올라, 위대한 군주에게만 붙는 시호 선(宣)을 부여받은, 선제 유병이다. 이것이 과연 삶의 조건만으로 설명이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을 다 갖춰야 불행.. 2021. 5. 13.
[발굴!한서라는 역사책] 기원전 81년의 시국 대토론회, ‘소금·철 논쟁’ 기원전 81년의 시국 대토론회, ‘소금·철 논쟁’ 수구세력과 신진세력의 대격돌 기원전 81년! 대신들과 60여 명의 신진 관리들이 장안의 궁궐로 호출되었다. 어린 소제가 등극한 지 6년, 조정에서는 각 제후국에 조서를 내려 덕행이 뛰어난 선비[賢良]들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文學]들을 천거케 했다. 말하자면 각 지역의 숨은 인재들을 추천받은 것이다. 추천받은 인재 중 60여 명을 선발하여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이들 신진 관리들과 대신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시국 대토론회를 벌였다. 주제는 백성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와 그 해결 방안이었다. 중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시국 대토론회! 분명 전무후무한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염철(鹽鐵) 논쟁’ 즉 ‘소금과 철의 전매에 관한 논쟁’이다.. 2021. 4. 8.
[발굴한서라는역사책] 한나라 최단기 황제의 탄생과 몰락 한나라 최단기 황제의 탄생과 몰락 1. 느닷없이 오른 황제! 중국에서 황제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대충 봐도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그렇다면 이런 확률은 어떨까? 황제가 되었다가, 폐황제가 될 확률은? 믿기 어렵겠지만, 한나라의 역사에는 실제로 이 엄청난 확률로 황제가 되었다가 무려 27일 만에 폐황제가 된 황손이 있었다. 그는 창읍왕 유하다. 소제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올랐으나 본기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황제 유하. 그는 어떻게 한나라 최단기 황제가 된 것일까? 소제는 21살, 재위 13년 만에 갑작스런 건강악화로 후사 없이 붕어한다. 과연 누가 소제의 뒤를 이어야할까? 소제를 보위하며 한나라의 가을을 열었던 곽광은 이를 고민한다. 허나 시간적 여유가 없다. 주지하듯 황제는 한시라도 비워둘 수 없는.. 2021.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