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796 『안티 오이디푸스』- 우리 모두가 파시스트였다! 우리 모두가 파시스트였다! 작년 추석 연휴기간 벌어진 사건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녘, 고성과 폭언으로 동네 개들마저 따라 짖을 정도로 우리 부부는 흥분해 있었다. 감이당 공부를 그만두라는 남편의 일방적 통보에 나는 치솟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실례합니다.” 예기치 않은 경찰의 방문에 부부싸움은 자동 종결됐지만, 나와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 아빠의 폭언에 불만을 품었던 딸이 용단을 내린 것이었다. 놀랍게도 우리 부부는 그날 이후 폭언을 딱 끊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가족의 지반’에 의심을 품게 됐다. ‘아빠-엄마-나’라는 가족삼각형 안에서 나는 지극히 모범적인 아내, 엄마로 살아왔다. 남편은 또 어떤가. 성실하고 가족밖에 모르는 가장이다. 하지만 그는 전제군주였다. 남편이 .. 2019. 8. 12. [아기가왔다] 아이에겐 자연이 잘 어울린다 아이에겐 자연이 잘 어울린다 나는 마케팅 용어로 사용 되는 '자연주의', '천연' 같은 말들을 싫어한다. 아니, 그걸 넘어서 혐오한다. 인간을 포함해 자연스럽게 태어난 모든 걸 망쳐 놓고선 먹고 마시고 바르는 것들은 '안전한' 자연적인 걸 쓰겠다는 그 뻔뻔스러움에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아서다. 아이에게도 자연적인 것만 골라 입힌다거나 먹인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도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입히고 먹이는 편이다. 그래서 전혀 의식을 못했다. 아이가 얼마나 자연적인지, 비-인간적인지 말이다. 이번주 초에는 강원도 함백, 고미숙 선생님의 고향 마을에 다녀왔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야말로 산골이었다. 몇걸음만 가면 흙을 밟을수 있고, 그렇게 몇결음만 가면 물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 2019. 8. 9. 나쓰메 소세키, 『명암』 -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결혼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나쓰메 소세키, 『명암』 -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결혼의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결혼의 빛과 그림자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누군가는 유행가 가사처럼 ‘눈물의 씨앗’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 못해 쓴 맛을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혹은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 봐’라고 말끝을 흐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눈앞에서 팔랑거리는 나비처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지만 언젠가는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의 대답이 되겠다. 내게 같은 질문을 묻는다면 ‘사랑은 바닷물’이라고 대답하겠다.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르게 된다. 『명암』은 사랑과 결혼을 둘러싸고 소용돌이치는 내면을 보여준다. 『명암』은 소세키가 죽기 직전까지 신.. 2019. 8. 7. 청년, 반양생적 시대를 살다 - 2) 청년, 반양생적 시대를 살다 - 2)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대학교 1학년 때 느꼈던 막막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에 간다는 생각에 처음엔 설레기만 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와 보니 무수한 선택지들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시간표를 짜는 것부터 막혀버렸다. OT를 하면서 선배들이 수강신청방법을 알려줬지만, 어떤 수업이 학점을 잘 준다더라 하는 단편적인 정보만 가득할 뿐이었다. 어떤 과목을 듣고 싶고,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전공도 수시 경쟁률을 보고서 피상적으로 선택한 것에 불과했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결정인데도 으레 그러거니 하는 길을 따라간 것이다. 그러다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여긴 어디? 나는 누.. 2019. 8. 6.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1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