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반양생적 시대를 살다 - 2)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대학교 1학년 때 느꼈던 막막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고등학교를 벗어나 대학에 간다는 생각에 처음엔 설레기만 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와 보니 무수한 선택지들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시간표를 짜는 것부터 막혀버렸다. OT를 하면서 선배들이 수강신청방법을 알려줬지만, 어떤 수업이 학점을 잘 준다더라 하는 단편적인 정보만 가득할 뿐이었다. 어떤 과목을 듣고 싶고,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전공도 수시 경쟁률을 보고서 피상적으로 선택한 것에 불과했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결정인데도 으레 그러거니 하는 길을 따라간 것이다. 그러다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물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냥 누군가 모든 걸 다 결정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그때의 심정이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타고 있던 배가 갑자기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선내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50분 남짓 동안 10번 넘게 나왔다고 한다.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 대기를 한 학생들. 하지만 구조대는 오지 않았고 배는 침몰했다. 매뉴얼대로 했을 뿐인데 물은 계속 차올랐다. 그때쯤이면 이건 뭔가 아니다하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앞에서 생존을 위한 시도조차 못 해봤다는 점이 가장 쓰라렸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 앞에서 나는 과연 움직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토록 명령을 바라던 내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나였고, 공교육을 받은 우리 청년세대였다. 지금 우리 세대는 명령어로 가득한 매뉴얼에 길들여져 있다. 학교뿐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원에 가야 한다. 학원에서 정해준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다. 스스로 묻고, 탐색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 자체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저 더 좋은 학원, 더 비싼 학원을 찾아다닐 뿐이다. 오직 원하는 건 확실한 매뉴얼뿐!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고액입시 코디 김주영은 매뉴얼의 화신이다. 입시를 향해 달려갈 때 주인공 예서가 취해야 할 모든 행동지침을 알려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한다. 나중에는 아이의 영혼까지 잠식할 지경이다. 아이와 학부모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된 코디. 김주영은 묻는다.-“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처음에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시험지 유출에서 청부 살인까지, 나중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매뉴얼이 삶을 뒤덮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성적경쟁에서 밀려난 둘째 예빈이의 주 무대는 편의점이다. 유일한 자유시간인 저녁 식사 시간. 학원에서 나와 친구들을 이끌고 편의점에서 과자를 훔친다. 그리고는 훔쳐온 과자를 학원 옥상에서 짓밟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그들의 일탈이자 오락이다.
이처럼 집, 학교,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의 동선에는 늘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은 아이들의 일상이자, 놀이터이자, 유일한 탈출구다. 틀에 박힌 스케쥴로 움직이는 그들과 틀에 박힌 대로 세팅된 편의점의 모습은 몹시 닮아있다.
‘호모 꼼비니타스’의 탄생
밝은 실내, 깔끔한 인테리어, 가지런히 진열된 상품들, 기계적으로 바코드를 찍는 알바생. 이것들이 편의점을 구성한다. 어느 것 하나 매뉴얼에서 벗어난 것이 없다. 이 안에서 생기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깨끗이 씻겨 봉지에 담긴 과일의 세련된 모습은 마치 정물화처럼 느껴진다. 편의점은 말 그대로 ‘편리함’을 제공한다. 진열대에 배치된 수많은 상품들 앞에서 가성비를 따지기만 하면 된다. 오직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지금 청년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런 공간에서 모든 것은 활력을 잃게 된다.
무라타 사야키의 소설 『편의점 인간』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의 극단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후루쿠라이다. 그녀의 모든 감각은 편의점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맞춰져 있다. 그녀의 귀는 편의점에 들어오는 손님의 발소리에, 눈은 손님의 손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녀의 몸을 채우는 것 역시 편의점 제품들이다. 이쯤 되면 존재 자체가 편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녀가 편의점을 그만두게 됐다.
지금까지라면 내일을 위해 자야 할 시간이다. 편의점을 위해 몸을 조절하려고 생각하면 금세 잠들 수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무엇을 위해 잠을 자면 좋을지도 알 수 없어져 버렸다.(『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키, 살림, p.176)
모든 것을 편의점에 합리적이냐 아니냐로 판단하던 나는 이제 기준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 행동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하면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책, p.179-180)
행동지침이 없어진 그녀의 신체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이제 그녀는 언제 자고 일어나야 하는지도, 언제 밥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생리적인 욕구마저도 매뉴얼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결국,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는 경지에 이른다. 매뉴얼이 몸속 깊숙이 침투해 온몸을 장악해버린 것이다.
요즘 청년들은 인터넷 검색에 익숙하다. 궁금하면 바로 스마트폰부터 꺼낸다. 검색창도 포털사이트에서 유튜브로 진화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영상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준다. 압축된 정보의 편의점에서 편리하게 내용물을 빼먹는 것이다. 오로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단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삶의 중요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입시는 물론이고, 연애도 매뉴얼대로 한다. 연애 잘하는 비법이라고 알려주는 영상이 수두룩하다. 취업, 관계, 삶의 가치와 의미 등 모든 것을 정보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행동이 아니라 정보를 모으는데 골몰하는 것이다. 더 편리하게, 더 빠르게 가기 위해.
편의점과 같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호모 꼼비니타스’의 탄생! (편의점을 뜻하는 일본어 ‘콤비니’コンビニ에서 따왔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매뉴얼이 내면화된 지금 우리 청년들. 이쯤 되면 매뉴얼은 ‘신흥종교’라 해도 무방하다. 이런 행동 패턴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동의보감』의 시선에서 알아보자.
갑목의 추동력, 을목의 유연성
동의보감의 기본코드는 음양오행이다. 목화토금수 오행 가운데 첫 시작을 여는 목(木). 목은 봄에 해당한다. 만물이 성장하는 단계다. 청춘은 봄에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의 기운이다. 새싹은 얼어붙은 땅 밑에서 겨우내 응축했다가 봄이 되면 강렬한 추동력을 가지고 솟아난다. 나무는 위로, 덩굴은 옆으로 어떻게든 뻗어 나가려 한다. 아래에서 위로 수직성장을 하는 것이 목중에서도 갑목(甲木)의 에너지이다. 위로 솟구치는 강한 추동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을목(乙木)은 유연하고 부드럽다. 덩굴은 나무와 담장 등 온갖 장애물을 타고 오른다. 약간의 틈만 있으면 어디서든 자기를 드러내고 꽃피운다. 특유의 유연함으로 상황에 맞추어서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변형의 힘이 을목의 생존력이다.
목은 장부로는 간(肝)과 연결된다. 간의 작용 역시 목의 기운처럼 강한 추동력을 갖는다. 이 힘으로 간은 몸 안의 뭉친 기운을 풀어주고 소통시켜주는 일을 주관한다. 이를 간의 소설(疏泄)작용이라 한다. 그런데 지금 청춘들은 매뉴얼에 완전히 길들여져 있다. 그럼 어떻게 될까?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간기는 울결된다. 뻗어 나가야 할 기운이 막혀 안으로 눌려버린 것이다. 몸의 근육이 뭉쳐서 담이 되는 것처럼, 마음도 감정이 뭉쳐서 무거워진다. 슬픔과 우울함에 빠져 쉽사리 헤어나오기 힘들다. 요즘 청년들 대다수는 자기 이야기를 하면 울기부터 한다. 원인 모를 억울함이 마음에 가득 차 있다. 흩어져야 할 감정이 안으로 쌓인 것이다. 억울한 마음이 또 간기를 억압한다. 간기가 뭉쳐 열을 내면, 소설이 과다해져 쉽게 화를 내게 된다.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며 화를 내는 분노조절장애도 간의 문제다. 능동적으로 에너지를 자유롭게 분출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때의 화는 억압된 감정이 폭발하는 수동적인 행위이다. 지금 대부분의 청년들은 억울함과 분노조절 장애, 이 둘 사이를 오가고 있다. 감정의 소통과 배설이 꽉 막혀버린 탓이다.
간은 용기와 결단을 주관한다. 장군지관(將軍之官)이라 하여 간의 추동력을 장군의 기세에 비유하기도 한다. 장군은 변수가 생겨도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다. 간기가 약하면 약간의 장애물도 두렵게만 느껴진다. 불안감에 휩싸여 결단할 때를 놓쳐버린다. 그러다 보니 다들 남보다 튀고 싶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비슷비슷해진다. 전국 편의점의 상품들처럼 말이다. 그 안에서는 갑목의 추동력도, 을목의 유연성도 발휘될 수 없다.
지금은 을목 시대~
청년은 새로운 길을 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니체는 말한다. ‘따뜻한 봄바람은 수소, 그러나 밭이나 갈도록 길들여진 수소가 아니다. 그것은 성난 뿔로 얼음을 마구 깨부수는 난폭한 수소이자 파괴자다! 깨어지면서 얼음은 판자다리를 무너뜨리게 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p.332) 과연 그렇다. 이전의 청년들은 기존의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분투했다. 1960년대 후기산업사회의 과도한 물질주의를 거부하고 주류사회의 가치에 반항한 히피들.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며 국가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서로 연대했다. 비틀즈, 로큰롤도 그들 문화의 산물이다. 우리나라의 80년대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며 평화를 노래한 것도, 짱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국가 폭력에 저항했던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갑목의 추동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20세기의 청년운동이 주력했던 것은 바로 시스템의 혁명이었다. 그 결과 제도와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디지털 문명의 도래와 함께 매뉴얼이 새로운 종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럼 우리 시대에는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까? 촘촘한 그물망 사이로 틈새를 파고들어 가 보자. 대학을 갈 때, 내가 정말로 원하는가를 한 번 더 묻고, 연애의 매뉴얼 대신 내 앞에 있는 상대와 터놓고 얘기하는 것. 학원, 편의점을 벗어나 자율성과 능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탐색해보는 것. 마지막으로 정말 목숨이 위험할 때는 자신의 생명력을 믿는 것 등등. 을목은 자신의 현장에서 작고 미세한 틈 사이로 가지를 뻗어 나간다. 에둘러서 돌아가기도 하며 주변의 지형지물과 활발히 소통한다. 그렇게 휘감아 오르다 보면 나중에는 거대한 벽도 타고 넘을 수 있다. 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처럼’ 말이다^^
글_Moon 명(감이당 청스_의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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