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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258

이미 이루어졌거나, 결코 이룰 수 없는 '벗어나기' 이미 이루어졌거나, 결코 이룰 수 없는 '벗어나기' 비트겐슈타인 말대로, 존재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주아주 짧은 찰나에서 수도 없이 많은 존재들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들뢰즈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그저 아주 어렴풋이만 알 것 같다. '질문'으로 (미래의)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 잡으려고 했던 것은 멀리도 아니고, 아주 살짝 비켜선다. 그러면 다시 질문하겠지. 그러면 그것은 또 살짝 비켜서고 말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는 채로……, 무언가를 보태거나 빼는 방식으로, '안정'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조금씩 비켜서며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 덕에 '불안'은 여러 상태들 중에 특정한 어떤 상태가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2018. 6. 11.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기를 미셸 푸코 『말과 사물』-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기를 그 유명한 『말과 사물』(미셸 푸코)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 문장이 네 줄에 걸쳐 있을 만큼 복잡하지만, 결국 요지는 하나. '배치'가 바뀌면 모든 게 바뀐다는 뜻. '인간'은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과 같았다고 믿고 있다. 『말과 사물』은 그러한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사실은 특정한 배치의 산물임을 밝힌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체로서의 '인간'은 발명(또는 발견)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영 유치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는 발명(발견)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 삶에 거의 100%(는 뻥이고 구십 몇 퍼센트 쯤) 만족하기는 하지만, 가끔 '인간'으로 사는 것이 너무 피.. 2018. 5. 21.
미셸 푸코,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 미셸 푸코,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러번 다시 썼다. 그러다가 결국 처음 쓴 것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마치 인생의 클리셰처럼 자주 그런다. '글씨'만의 문제도 아니다. 글도 이것저것 쓰고 고치다가 처음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인생을 악보에 비유하자면, 거기에는 군데군데 도돌이표가 숨겨져 있어서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갔다가 온 다음에만 다음 소절로 넘겨주는 것 같다.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 푸코는 어째서 이전과 다른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일까? 더군다나 푸코의 '이전'들이 딱히 남루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재미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수도 없이 OS를 깔았다 지우고 새로 까는 것을 반복하는 소프트웨어 매니아들처럼, 푸코는 '한계'를 돌파해가는 .. 2018. 5. 14.
『삶을 바꾼 만남』 - "저도 공부할 수 있을까요?" 『삶을 바꾼 만남』 - "저도 공부할 수 있을까요?" 스승은 정약용이고, 아이(제자)는 황상이다. 책의 제목 『삶을 바꾼 만남』에 붙은 부제는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인데, 이 책은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그에게 글을 배운 황상의 인연에 대한, 삶을 바꾼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름다운 책이다. 제목 그대로 '삶을 바꾼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제자는 글을 배우러 다니기는 하지만,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다. 둔하고, 앞뒤가 꼭 막혀 있으며, 답답한 성품인 자신이 과연 '공부'하여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스승은 '배우는 사람'들이 가진 '세 가지' 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너(제자)에게는 그것이 없으니 '능히'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정약용이 말한 '세.. 2018.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