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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말과 사물』 -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기를

by 북드라망 2018. 5. 21.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기를





그 유명한 『말과 사물』(미셸 푸코)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 문장이 네 줄에 걸쳐 있을 만큼 복잡하지만, 결국 요지는 하나. '배치'가 바뀌면 모든 게 바뀐다는 뜻. '인간'은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과 같았다고 믿고 있다. 『말과 사물』은 그러한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사실은 특정한 배치의 산물임을 밝힌다.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주체로서의 '인간'은 발명(또는 발견)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영 유치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나는 발명(발견)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 삶에 거의 100%(는 뻥이고 구십 몇 퍼센트 쯤) 만족하기는 하지만, 가끔 '인간'으로 사는 것이 너무 피곤할 때가 있다. 세상에 매달 공과금을 내는 고래는 없을 것이며, 광역버스를 타고 도시와 도시 사이를 오가는 북극곰도 없을 것이다. 그뿐인가? 마치 태어날 때부터 내장된 소프트웨어마냥 매순간마다 본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도덕'이 그것들에게는 없다. 부러울 따름이다. 


덕德이 모자르니 공기나 먼지, 하다못해 돌맹이가 되는 정도는 바랄 수가 없다. 이른바 '생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한자리에 서서 아무 미련도 없이 우두커니 죽음을 맡는 나무나 풀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가장 밑으로 파고 들어가서 보자면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는……. 


가을이 되면,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알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들은 대부분 가을, 겨울 사이에 떠났다. 이미 몇 해가 지났지만, 그 얼굴들이 떠오를 때면 여전히 가슴 구석이 저릿하게 조여온다. 그저 모두 편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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