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러번 다시 썼다. 그러다가 결국 처음 쓴 것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마치 인생의 클리셰처럼 자주 그런다. '글씨'만의 문제도 아니다. 글도 이것저것 쓰고 고치다가 처음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인생을 악보에 비유하자면, 거기에는 군데군데 도돌이표가 숨겨져 있어서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갔다가 온 다음에만 다음 소절로 넘겨주는 것 같다.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 푸코는 어째서 이전과 다른 인간이 되려고 했던 것일까? 더군다나 푸코의 '이전'들이 딱히 남루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재미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수도 없이 OS를 깔았다 지우고 새로 까는 것을 반복하는 소프트웨어 매니아들처럼, 푸코는 '한계'를 돌파해가는 실험이 즐거웠을 것이다. 작업의 결과물로 나올 자신의 텍스트보다 훨씬 더 많은, 어쩌면 수십 수백배에 이를 텍스트들을 읽어가는 과정이 그에게는 낡은 코드를 지우고 새로운 코드를 머릿 속에 추가해가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약간 엉뚱하지만(언제는 안 그랬다고…), 푸코가 몰두했던 '자기변화'야 말로 '읽기'가 가진 궁극의 즐거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옮겨 적은 문장에서 '쓰기'를 모두 '읽기'로 바꿔 읽어보자. 푸코처럼 '실험가'가 되고 싶어진다. 얼마나 알아낼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역시 '읽기'는 지금까지 읽어온 것에 지금 읽고 있는 것을 더하는 '덧셈'이 아니다.
다시 '쓰기'로 돌아와 보자. 단순하게 내면을 마주하며 (용감하게) 글을 써 갈 수 있다면, 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사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코끼리처럼, 한 번 뛸 때마다 모습을 바꾸는 여우처럼, 천천히 가지면 결국엔 도달하고 마는 황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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