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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258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 '사람들은 서사시를 필요로 한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 '사람들은 서사시를 필요로 한다' '이야기'는 공통의 감각을 생산해 낸다. 어떤 사건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감정 같은 것들이다. 백명의 사람이 있으면 저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 그런데 그렇게 다르면서도 사실은 비슷비슷한 감정들을 느낀다. 나는 그런 감정이 '자연적'이라거나, '원래 그렇다'고 믿지 않는다. '느끼는 방식'도 사실은 발명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동시대의 한 사회 안에서 사회구성원들이 '느끼는 방식'이 극단적으로 서로 다르다면, 사회는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가운데서도 그 다름을 지탱하는 공통의 지반이 있기 때문에 '사회'의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로 치자면, '자본주의', '화폐'에 대한 서로 비슷한 욕망 같은 것들이다.('아이.. 2018. 8. 13.
삶이 다 기적이므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삶이 다 기적이므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이 세상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가자, 해서 오아시스에서 만난 해바라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으나 딱 한 송이로 백만 송이의 정원에 맞서는 존재감 사막 전체를 후광(後光)으로 지닌 꽃 앞발로 수맥을 짚어가는 낙타처럼 죄 없이 태어난 생명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성모(聖母) 같다 검은 망사 쓴 얼굴 속에 속울음이 있다 너는 살아 있으시라 살아 있기 힘들면 다시 태어나시라 약속하기 어려우나 삶이 다 기적이므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사막 끝까지 배웅하는 해바라기 _김중식, 「다시 해바라기」, 『울지도 못했다』, 문학과지성사, 2018, 88쪽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가물가물해질 즈음, 하나의 사건을 겪었다. 아니 사건이 닥쳐왔다. 이제.. 2018. 8. 3.
들뢰즈, 가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 '대중은 속았다'로는 부족하다 들뢰즈, 가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 '대중은 속았다'로는 부족하다 적敵, 혹은 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할 때마다 사로잡히는 하나의 가상이 있다.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고, 대중들은 거기에 속고, 속아서 지지하고, 그리하여 적들은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다'는 식의 가상이다. 이 가상은 합리적이고, 선하고, 훨씬 더 공정한 비전을 제시하는 '우리측'에 비해서 전근대적이고, 악하고, 극도로 부패한 적들의 지지율이 언제나 높은 이유를 스스로 납득해야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게 아닐까 싶다. 여기에 투표로서 이른바 '민의'를 '대의'한다는 '대의민주주의'의 정식까지 들어와 버리면 머릿 속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되어서, 대중에 대한 혐오, 혹은 허무로 나아가가게 된다. 차라리 이쪽이든 저쪽이든, 제.. 2018. 7. 23.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 책상 위, 손 닿는 곳에 두고 자주 펼쳐보는 소설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 책상 위, 손 닿는 곳에 두고 자주 펼쳐보는 소설 좋은 음반도 그렇고, 좋은 소설도 그렇고, 흠…… 좋은 그림도 그렇고, 어쨌든 좋은 작품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음식으로 치자면, '깊은 맛'하고 비슷한 것이다. 들을 때마다, 읽을 때마다, 볼 때마다 다른 맛이 난다. 이 '깊이'라는 것이 엄청나서 어떤 것은 결코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매번 다른 길을 걷도록 만든다. 어쩌면 그게 '인생'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어느 길로 가더라도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매번 다른 풍경이 펼쳐지겠지. 다른 길로 가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좋은 작품'은 그런 식으로 300쪽 남짓한 단편집, 60분이 될까 말까 한 음반 한장, 한 눈에 다 들어오는 화폭 안에 '리얼'한 인.. 2018.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