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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윌헬름,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세대를 가르고 흐르는 강 케이트 윌헬름,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세대를 가르고 흐르는 강 2018년 3월 1일은 오랜만에 잘 닦은 유리처럼 날이 쨍했다. 시야가 맑고 투명했고, 햇빛은 공기를 뚫고 직선으로 내리꽂혔다. 본따 오려낸 것 같은 그림자들이 발밑에서 춤을 추었다. 만물의 가장자리가 먹선으로 그은 듯 또렷한 날이었다. 바람도 많이 불었다. 살갗을 할퀴는 공기가 유난히 차고 날카로워, 나는 낮 볕이 따사로운 걸 알면서도 연신 옷깃을 다시 여몄다. 시내 대로를 따라 오래 걸었다. 뺨이 에이고 손이 곱아오기 시작할 즈음 비로소, 잠깐 몸을 녹일 겸 종로타워에 들어갔다. 잠깐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유명한 격언이 말하듯이,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나는 의도치 않게 그 안에.. 2018. 3. 21.
솔직함, 혼돈을 살기 솔직함, 혼돈을 살기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누군가 내게 여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말들을 할 수 있을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여자들은 보통 ‘주변’을 중요시한다. 남자들은 모두 얼마간 자기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산다. 텅 빈 관념에 사로잡히거나 자기원칙만 고집하거나 허황된 꿈을 좇는다. 때문에 어딜 가도 관계에 무능한 쪽은 대개 남자다. 그에 비해 여자들은 훨씬 현실적이다. 옆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대한 망상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자신의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한다. 그 때문에 세속적인 가치에 더 많이 붙들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지나치게 연연하고,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 2018. 3. 20.
『아파서 살았다』- 연민의 종류들 『아파서 살았다』- 연민의 종류들 나를 ‘불쌍히’ 보는 그 눈길이 생명 에너지를 잃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나 보다. 이미 통증과 여러 가지 행동 장애로 힘이 빠진 상태에 ‘불쌍하다’는 그 한방이 날아온 것이다. 물론 청정한 연민은 자비의 모습을 띠게 되고 그것은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민에는 탁한 마음이 끼어들기 쉽다. 상대적 우월감이나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같은 것. 자기 연민이건 상대에게 연민을 느끼건 이런 삿된 기운이 끼어들면 그것은 부정적인 힘으로 작동한다. 그날의 한 판 싸움은 어쩌면 위기에서 나를 지키고자 한 생명 차원에서의 반응이었는지도 모르겠다.오창희, 『아파서 살았다』, 52~53쪽 탁한 마음이 끼어들지 않은 ‘연민’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것은 .. 2018. 3. 19.
딸의 직장생활 2 ― 엄마와 딸, 우리는 행운아_엄마 딸의 직장생활 2 ― 엄마와 딸, 우리는 행운아 지난주 아빠 글에서 나왔듯이 우리 딸은 현재 직장(에서 놀고먹는)생활 중이다. 딸과의 출근을 위해 우리는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딸의 기저귀를 갈고 아침 분유를 먹이고, 안방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딸의 이불을 털고, 딸의 오전과 오후 이유식을 데워서 보온병에 넣고, 일명 기저귀가방에 그날 필요한 물건과 장난감 등을 챙기고, 싱크대와 거실을 대충 정리하고, 딸의 머리를 묶고 옷을 입히고, 우리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집을 나선다. 보통 8시 30분에서 8시 50분 사이에는 사무실에 도착하는데,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또 청소다. 사무실 바닥을 온몸으로 쓸고 다닐 딸을 생각하면 안 할 수가 없다. 아빠가 딸을 보며 기저귀가방을 푸는 사이.. 2018.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