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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아기가왔다 1

딸의 직장생활 2 ― 엄마와 딸, 우리는 행운아_엄마

by 북드라망 2018. 3. 16.

딸의  2 

― 엄마와 딸, 우리는 행운아



지난주 아빠 글에서 나왔듯이 우리 딸은 현재 직장(에서 놀고먹는)생활 중이다. 딸과의 출근을 위해 우리는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딸의 기저귀를 갈고 아침 분유를 먹이고, 안방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딸의 이불을 털고, 딸의 오전과 오후 이유식을 데워서 보온병에 넣고, 일명 기저귀가방에 그날 필요한 물건과 장난감 등을 챙기고, 싱크대와 거실을 대충 정리하고, 딸의 머리를 묶고 옷을 입히고, 우리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집을 나선다. 


보통 8시 30분에서 8시 50분 사이에는 사무실에 도착하는데,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또 청소다. 사무실 바닥을 온몸으로 쓸고 다닐 딸을 생각하면 안 할 수가 없다. 아빠가 딸을 보며 기저귀가방을 푸는 사이, 엄마는 사무실 곳곳을 닦고 다닌다. 그 다음 엄마가 오전에 가장 중요한 업무인 서점에서 온 책주문 처리를 하는 사이 아빠는 딸에게 오전 이유식을 먹이고 식후 뒷정리를 한다. 


업무개시



사무실에서 딸이 이유식 2회, 분유 1회, 간식 1~2회를 먹고 나면 퇴근시간.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오면 바로 딸의 저녁 이유식 시간이다(이제 11개월을 향해 가는 딸은 이유식 3회, 분유 3회를 먹는데, 이 무렵이면 양들이 제법 많기 때문에 이유식과 분유를 간격을 띄워서 먹여야 한다. 결국 부모는 이른바 ‘이유식 후기’ 무렵의 아기에게 하루 종일 무언가를 먹이고 있어야 한다). 역시 또 아빠가 딸에게 저녁 이유식을 데워서 먹이고 할 동안, 엄마는 또 청소를 한다. 낮 동안 비어 있었는데도 어째서 그렇게 먼지들은 쌓여 있는가. 아무튼 안방과 거실과 작업실이었지만 창고가 되어 버린 작은방을 닦는다. 


그러고 나서 이제 우리가 저녁을 먹으려고 하면 딸의 방해가 시작된다. 사족보행(네발 기기)이 가능해지고 일어서기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식탁에 앉아 있는 우리 다리에 매달려 일어서서는 계속 안으라고 보챈다. 그 통에 우리는 저녁을 맘 편하게 먹는 날이 정말 드물다. 아기용 뻥과자를 쥐어주어 봤자 1분도 안 되어 후딱 먹어치우고 마지막 조각을 입에 털어넣음과 동시에 소리를 지른다. 자기를 돌봐주거나 뻥과자를 하나 더 달라는 의사표시다. 


이렇게 대충 저녁을 먹고 다시 아기의 마지막 오늘용 먹거리인 분유를 먹이고 씻기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히고 난 후 업거나 안아서 재우면 딸과 관련된 우리의 하루 일정은 끝난다. 그 다음에 남은 일들(기저귀 가방 정리와 아기 빨래 정리, 다음날 이유식 만들기, 집안 정리 등)을 하고 나면 그저 빨리 자고 싶을 뿐이다.


사실 딸과 함께 출근을 하지 않으면 엄마 입장에서 몸은 좀더 편하다. 아침에도 30분은 늦게 일어날 수 있고, 퇴근한 다음에 집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아빠가 집에 있는 날은 청소까지 다 해놓는다). 아기 짐보따리를 싸고 풀고 정리할 일도 없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딸과 함께 출근하면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회사의 성장이나 업무의 효율만 생각하면 당연히(?) 딸은 아빠와 집에 있고, 엄마는 출근하여 집중력 있게 일들을 착, 착, 착 처리해 나가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장’과 ‘효율’ 같은, 내가 지금까지 중요하게 생각했던 단어를(타고난 성격도 급한 편이라 ‘효율’을 무척 찾아댔더랬다. 그놈의 효율이 뭐라고… -_-;;) 딸을 임신하면서 놓아 버렸다. 임신과 출산은 도무지 ‘효율’과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이었고, 다행하게도 나는 체력을 믿고 무리하는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나이도 꽤 먹은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타고난 성정을 버릴 수는 없는 법… 아직도 급한 성격 때문에 내 발등 내가 찍는 일이 적지 않다.)


인턴사원의 주업무_놀기



임신했을 때부터 나는 딸과 함께 있는 것을 가장 기본으로 두고 다른 일상의 배치를 바꾸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고 일을 쉰다거나 하지 않을 생각도 없었다. 일을 하지 않는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물론 몇 개월 정도 아기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지만, 그것도 역시 그때 잠깐뿐으로, 내 머릿속에서는 일과 아기가 늘 같이 있다. 


다행하게도 자영업자인 터라, 일터에 아기와 함께 나올 수가 있고, 남편과 내가 약간(?)만 더 부지런을 떨면 이 생활을 지속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과 꼭 맞게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떻든 딸과 함께 출근할 수 있는 것만으로 나는 (특히 이 사회에서) 드문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걸 안다. 엄마와 아빠 어느 한쪽이 아니라 부모 두 사람과 함께 시간을 계속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딸 역시 행운아다.


물론 우리가 이 행운을 누리기 위해서 엄마는 (타고난) 급한 성질을 참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일의 속도와 육아 욕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하고, 40년 넘게 ‘효율’을 추구하며(그놈의 효율이 뭔지…) 뭐든 ‘빨리빨리’ 처리해 온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바뀌지 않으면 순식간에 행운은 같이 있는 ‘지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같이 있는 것이 행운’이 되려면 우리는 또 자신의 기본부터 다시 돌아보고 바꾸어야 (최소한 바꿀 마음을 내어야) 한다. 딸과 엄마만이 아니라, 이것은 아마도 엄마와 아빠 사이, 친구와 친구 사이, 그이와 그이 사이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늘 (깊은) 만남은 (자신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모양이다.


_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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