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1024 둥글레의 인문약방, 여기가 로두스다! 인문약방, 여기가 로두스다! 약사가 되기 싫었다 나는 약사라는 직업에 그다지 소명의식이 없었다. 약대 대신 미대에 가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그 어떤 과목보다 미술 시간에 집중했다. 미술로 먹고 살 자신이 없어서 엄마가 권한 약대에 갔지만 미술은 내게 못다 이룬 꿈이었다. 약사가 되어서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으로 미술을 공부하리라 마음먹었다. 실제로 스물아홉 되던 해에 국내 미술 대학원 두 곳에 지원했다. 한 곳은 무참하게 떨어졌고 다른 한 곳은 전문과 과정으로 합격했다. 서류전형인 곳에서는 인터뷰 내내 미술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받았고, 시험을 치른 곳은 탈락자가 한 명도 없어서 이건 뭔가 싶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유학을 가서 제대로 공부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학비가 .. 2020. 11. 30. 「지빠귀 부리 왕」 - 웃지 않는 공주의 그림자 노동 「지빠귀 부리 왕」 , 동화의 행위- 웃지 않는 공주의 그림자 노동 공주를 웃겨라! 그림 동화에는 종종 웃지 않는 공주 이야기가 나온다. 레비 스트로스는 웃지 않는 공주란 자기 왕국의 어떤 남자에게도 만족할 줄 모르는 여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외혼제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공주를 웃기는 자가 늘 성 밖에서 ‘멋도 모르고’ 찾아와서 웃겨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공주 나라의 상식이나 관습에 무지했기에, 공주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제들을 뒤집을 수 있기에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왕자는 가장 늦게 온다. 동화가 괜히 듣는 사람 감질맛 나게 하려고 웃기는 왕자를 제일 마지막에 출현시키는 게 아니다. 왕자는 공주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와야만 했던 것이다. 공주가 갖고 있는 통념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자.. 2020. 11. 24. 혼자 읽기의 어려움 그리고, 함께 읽기를 권함 혼자 읽기의 어려움 읽다만 책들이 쌓이는 과정 읽기 어려워서 초반에, 혹은 중간쯤 읽다가 포기한 책들이 있다. ‘읽기 어려운 책’들은 어떤 책들일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내용 자체가 어려운 책들이 있다. 이를테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같은 책들은 시작부터 한 걸음 떼기가 어렵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이라는 낱말로 본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새롭게 제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존재’라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서 당혹스러움에라도 빠져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선 무엇보다도 다시금 이 물음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일깨워야 할 필요가 있다. ‘존재’의 의미에 .. 2020. 11. 16. [동화인류학] 대지를 놀래키는 완두콩의 큰 웃음 대지를 놀래키는 완두콩의 큰 웃음 냉장고 앞에서 내가 카프카의 시골 사람도 아닌데 냉장고 앞에서면 매번 「법 앞에서」라는 작품이 연출된다. 돈까스를 튀겨야 하는데 오늘은 고기가 없군. 달걀말이를 해야 하는데 오늘은 달걀이 없군. 된장을 지져야 하는데, 아흥! 된장밖에 없군. 냉장고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지금은 안 돼!” 우리는 지금에서만 살 수 있는데 시골사람에게 지금은 늘 ‘금지’만 작동하는 시공간이었다. 그런 난처한 상황에서 발버둥쳐야 하는 시골 사람처럼 나는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항상 ‘지금은 만들 수 없는’ 요리만 떠오른다. 재료는 늘 없고, 재주는 원래 타고나질 못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존재는 저마다 타고난 능력을 누린다. 능력은 매순간 할 수 있는 만큼의 끝까지 자신을 표현.. 2020. 11. 9.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 2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