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 단축번호 1번, 나누는 사람
결혼한 지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새삼 첫 만남이 어떠했는지부터 쓰는 건 조금 쑥스럽고 어색하다. 당시 연애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니와 같은 고등학교 동갑내기에 같은 대학이라 첫눈에 반했어요, 와는 거리가 멀어 다시 끄집어내는 게 쑥스럽다. 만일 아내도 나와 같은 건축과였다면 우린 ‘건축학개론’과 같은 영화를 찍었을까? 음, 우리는 이제훈과 수지가 아니다. 게다가 아직 두런두런 추억을 곱씹을 만큼 일상이 느리게 흘러가진 않기에 그 시간을 더듬거리는 것도 어색하다. 그래서 굳이 다락에 있는 사진첩을 들춰보진 않았다. 아내와의 이야기는 나의 ‘간증’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인생에 큰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지금까지 아내는 나에게 여러 길을 ‘인도’해 주었다.
3년 정도 연애가 이어지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 즈음 그녀는 다니던 불교단체에서 진행하는 수행프로그램에 다녀오게 되었다. 갔다 오더니 그녀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요즘말로 ‘갑분싸’다. 그러더니 나에게도 거길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종교에 관심은 없었으나 불교가 모태신앙인터라 굳이 안 갈 이유도 없었다. 가보니 수행프로그램은 4박5일 동안 오로지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리였다. 그리고 마지막엔 올곧이 혼자가 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시간이었다. 갔다 와 보니 이제야 그녀가 왜 ‘갑분싸’해졌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도 우리 둘의 마음에 바탕이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혼 즈음에 있었던 ‘이벤트(?)’치고는 꽤 생뚱맞았다는 느낌은 여전히 든다.
그 사건 이후 아내보다 그 불교단체 활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저녁법회에서 법복을 입고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는 일이 집 그리는 일이라 그 단체의 불사팀에도 조금 관여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건축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모태신앙이었으나 초파일을 산에 가서 비빔밥 얻어먹는 날로만 생각했던 내가 목탁까지 두드리게 된 건 아내의 ‘인도’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돈을 벌겠다는 의지로 인해 나는 다시 초파일 신도가 된 반면, 거꾸로 그 사이 뜸했던 아내가 일요일마다 아침법회를 나가고 있다.
아내에 의한 이러한 전도활동은 ‘종교’에 그치지 않았다. 앞의 글에도 나와 있듯이 나의 육아가 시작될 무렵 아내는 자신이 다니고 있던 ‘공부’로 또다시 꽂아 넣었다. 그곳이 바로 문탁네트워크다(이하 문탁). 첫째를 낳고 부은 몸을 풀기도 전에 병실 침대 위에 앉아 아내가 열심히 따져 보던 게 첫째의 사주였다. 당시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던 아내가 ‘그렇구나, 토가 여섯 개야’라고 읊조리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내가 신금(辛金)이라는 걸, 그리고 토(土)가 금(金)을 생(生)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토가 많은 첫째와 함께 나를 문탁에 보낸 것은 모두 그 병실 침대에서 만들어진 아내의 각본은 아니었을까? 이전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내의 계획적인 임신과 출산을 고려한다면, 가능하다. 아니, 확실에 가깝다.
육아휴직은 끝났지만, 퇴직을 거듭하면서 나의 문탁 출입은 아내의 복직에도 끝나질 않았고, 오히려 문탁생활을 맛보고 나니 더 이상 반복적인 직장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또 문탁에 드나들었고, 이후 사무실 주소를 아예 문탁으로 해 두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10년이 흘렀고, 아내는 점점 학교 일에 바빠졌고 나는 점점 문탁활동에 관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교육’으로 넘어갔다. 첫째가 알게 모르게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아내는 또 나름대로 엄마모임에서 받은 충격과 당혹이 냉온탕 오가듯 반복되자 우리는 대안을 찾아야 했다. 아내가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동네에 있는 ‘보물섬 초등방과후교실’을 만났다. 보물섬은 그냥 학원과는 달리 자연과 교감하는 놀이와 미술, 형과 동생들의 모둠활동으로 이뤄진 방과후교실이었다. 덕분에 첫째는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어갔다. 셔틀버스도 없었고, 돌아가며 엄마 아빠들이 간식을 만들고 청소도 분담해야 하는 구조여서 처음엔 적응이 어려웠다. 하지만 덕분에 같은 동네에서 등하원을 하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 아빠들도 친구가 되었다. 같이 여행도 가고 만두도 빚고 김장도 하고.
처음에는 방과후교실도 먼저 알아보고 겸서도 먼저 데리고 다녔지만, 아내의 일상은 어쩔 수 없이 바빠졌다. 등하원팀에 자연스럽게 내가 들어갔고 간식도 전해줬다(순대나 핫도그, 샌드위치 등을 사간 적이 많아 차마 ‘만들었다’고는 못 하겠다). 운영회의에도 들어가고 졸업식 행사에도 참석했다. 나는 아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시간이 여유 있었고, 많은 행사가 낮에 치러졌다. 자연스럽게 아빠로서 엄마들과 홀로 섞이게 되었지만 쫄지 않았다. 이미 문탁에서 단련되었기에 엄마들과의 수다가 어색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서 지금까지 활동의 많은 부분이 아내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내는 나를 잘 알아보았고 나하고 맞는 부분들과 만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서로의 ‘디테일’을 살펴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세상에 대해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아내와 난 우리 일상을 들여다보질 못했다. 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아내와 난 그냥 각자의 공부만 하고 있었다. 첫째와 둘째의 대안적인 교육에 공통의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우린 그저 등하원을 반복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아내가 말했다. 처음에는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공통부분이 커보였다고. 하지만 서로 바쁘게 지내면서 학교나 문탁 등을 각자 자신만의 활동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사실 공통부분은 굉장히 적어진 건 아닌지 물어왔다. 최근 식탁 위에서 우리의 언성이 높아진 건 그 때문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닌 듯 했다. 문탁에서 어설프게 공부하면서 공통개념 운운했지만 정작 아내하고는 함께하는 것들을 점점 줄여온 셈이다.
문탁 첫해 축제의 주제는 ‘가족을 흔들어라’였다. 그리고 주제에 맞는 한 권의 책으로 ‘가족의 종말’을 읽고 세미나를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주제와 책의 제목을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듯하다. 자신의 활동영역과 공부만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설령 지금의 가족이 흔들린다 해도 새로운 가족(공동체)을 이루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나 가족의 종말이 꼭 다른 구성원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 이후 하게 된 공부와 생각들, 종교활동들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의 활동들이 대부분 처음이다 보니 올곧이 내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처음에는 먼저 시작했고 같이 하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빠져버리는 아내를 슬그머니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식탁 위에서 비난의 화살을 아내에게 날린 셈이다. 그동안 공부 헛했구나.
하지만 아내의 욕심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뭔가를 잡다하게 늘어놓고 하는 스타일이라면, 아내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또 어떤 점에서 실천하기 때문에 단순한 욕심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학교에서는 잘 가르치고 아이들과 소통도 잘하고 생태적인 감성과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고 몸으로 표현하는 춤도 잘 추고 싶고 술이 세지는 않지만 즐기고 싶고 모던하고 세련된 감각이지만 자연스럽고 손때 묻은 흔적을 좋아하고 대체로 된장찌개를 좋아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구의 스파게티를 마음속으로 돌돌 말고 있다 보니, 늘 아내의 몸에 무리가 간다. 언젠가 용하다는 어떤 보살님을 뵌 적이 있는데, 아내를 보자마자 성질 죽이라는 말을 했다. 용하네, 난 10년 살아보니 알게 된 걸 한 번 보고 알아채셨다. 그 분은 나에게도 한 마디 하셨다. 옆에서 잘 들으라고. 네~
이러한 아내의 성향에 혹시 학교 선생님이 아닌 다른 일이 더 적합한 것은 아닐까? 의사나 간호사가 되겠다고 몇 번 들었던 것 같은데, 실험실 쥐나 개구리 잡는 걸 싫어하고 주사 바늘 놓기를 무서워하는 걸 보면 안 하길 잘한 것 같다. 결혼 전 한 번은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무슨 실험 도중 폭발사고가 났고 아내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고 했다. 잠깐만,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그 생각은 나중에 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얼굴 전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아주 심각하진 않았지만 폭발로 약품이 온 얼굴에 퍼져 버렸다. 결혼도 안 한 젊은 여교사가 얼굴에 붕대를 감고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은 안쓰러워 보였다. 많이 놀랐으나 다행이도 흔적은 별로 남지 않았다.
만일 이게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붕대가 풀리면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되거나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될 타이밍이었다. 사고 후 얼굴이 바뀌진 않았으니 직업이라도 바뀔만한 사건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아내는 아이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선생님 팔자인 모양이다. 교과목을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민하고 공감하는 걸 잘한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상담가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내는 말한다. 메인으로 앞에 나서기보다는 옆에서 훈수 두는 걸 좋아하는지라 그럴 때 울면서 이야기하지 말라고 아내에게 종종 조언해준다. 가끔 이게 오버해서 지적질로 나아가면 식탁이 또 시끄러워진다. 또 공부 헛했군.
어쩌면 공부한다는 건 내가 아는 걸 상대에게 말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알기 위해 상대를 잘 듣는 게 아닐까. 때문에 들을 상대가 있다는 건 좋은 공부가 된다. 그런 점에서 문탁이나 보물섬뿐만 아니라 여전히 아내는 ‘일상’에서도 나를 이끌어 주는 셈이다. 다만 직장 동료나 협력업체와 톡으로 대화할 때가 거의 없는 것에 비해 아내는 학교동료들과 학생들과의 톡에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한다. 아내의 일상이 바쁘고 스마트폰으로 톡 하느라 일상에서 나의 공부가 되는 시간이 적어졌다.
아내와 나라는 관계는 결혼을 하면서 형성된 관계다. 그전부터 알던 사이지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빠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리고 그 이름 사이에는 가족이라는 일상이 존재한다. 물론 가족이라는 일상을 아내와 남편의 이름이 아닌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들은 대부분 아내와 남편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을 형성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맺는 것이리라. 보편성의 확고함과 상상력의 부족.
하지만 내가 부모 밑에 살면서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봐왔고 그 가족 속에서 살아왔지만 나 자신이 남편으로서 아내와 만나는 일은 그리 익숙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흘렀고 돌아보니 두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었다. 소소한 일들이 많았지만 문제는 앞으로 10년인 듯하다. 아이들의 발은 점점 아내와 나만큼 커져가고 밥만 먹여준다고 고마워하는 시기는 지나갔다. 아이들의 몸이 자라나는 속도에 따라 아내와 나는 정신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다. 아내가 먼저 그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1년 동안 다시 육아휴직을 하려고 한다. 비단 둘째를 돌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의 여유를 갖고 아내는 자신을 돌보고 덕분에 나는 아내와의 관계를 돌보았으면 좋겠다. 그 시간이 앞으로의 10년에 어떤 변화가 된다면 좋겠다.
아내는 애교가 별로 많은 사람도 아니고 얼굴이 엄청 예쁜 미인형도 아니다. 처음 보는 사람도 아내의 직업을 맞출 수 있는 전형적인 선생님상이다. 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 첫눈에 반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도 우리 사이에는 없는 듯하다. 게다가 바쁜 일상 속에서 셋째는 고사하고 예전처럼 계산적인 잠자리마저 맞추기 힘든 바람이 되어버렸다. 애 낳은 40대 아줌마의 엄청난 욕망을 기대하라던 아내의 장담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앞으로의 10년이 기대되는 이유는 적어도 아내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함께 나누고 서로 맞춰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글_청량리(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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