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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회』 - 무엄하고도 불경스러운! 로저 젤라즈니, 『신들의 사회』 - 무엄하고도 불경스러운! 내가 생전 처음 인도에 도착했던 밤, 델리 국제공항은 정전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그게 잦은 일이라고 해서 더 어처구니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공항 경비원들이 구불구불한 길목에 드문드문 늘어서서 손전등으로 길을 비춰 출구를 안내해 주었다. 여정을 시작한 인천공항, 경유해온 홍콩공항과 비교하면 안 그래도 터무니없이 초라했을 시설이, 희미한 손전등 불빛 아래 더욱 괴괴해보였다.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은 어둠속에 얼굴만 동동 떠있었다. 그 ‘다른’ 이목구비에 새겨진 선명한 음영과 부리부리한 눈 때문에, 그들은 얼핏 무시무시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전등 불빛을 따라 걸으며 나는 지금 제의를 위한 가면을 쓴 제관들이 이끄는 대로, 신에게.. 2017. 11. 15.
뤼시앵 페브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자기 밖으로 나가기 뤼시앵 페브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자기 밖으로 나가기 내 고조할아버지 이야기다. 고조할아버지는 꽤 활동적이셨는지, 마을 다반사를 거의 도맡아 하셨다. 하지만 뭐든 많아지고 커지면 나쁜 일이 생기는 법. 몇 가지 일로 주변과 크게 다투게 되었다. 땅 문제가 꼬이면서 이웃친척들과 큰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그 사달이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급기야 할아버지는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그러나 급하게 도망쳐 나왔지만, 사실 그 즈음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사방이 산과 바다로 막혀 있는 섬이라 섬 밖으로 나서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고, 더군다나 섬 공동체들의 네트워크는 매우 촘촘했기에 섬 안에서는 어디 도망가더라도 잡혀오기 십상이었다. 나오자마자 막다른 곳에 서 있는 셈이었다. 도무지.. 2017. 11. 14.
『친절한 강의 대학』 - 마음은 본래 허령한 것 『친절한 강의 대학』 - 마음은 본래 허령한 것 몸의 주인인 마음(心)은 그 본체가 원래 허령(虛靈)하여 한 사물에도 집착됨이 없다고 하네요. 마음을 본래 이러한 것으로 전제하면 분노, 우환 등의 감정은 치우침, 비정상이 됩니다. 마음의 작용, 이치를 살피는 데에 장애가 된다고 보게 되겠지요. 마음이 움직이는 그 순간부터 치우침이 없어야만 마음의 작용이 바르게 되고, 그래야만 마음의 본체가 바르게 유지될 테니까요. 한마디로 주자는 분노와 두려움, 좋아함과 근심, 지금 우리가 감정이라 하는 것들을 ‘성정지정’(性情之正), 마음이 정(正)한 상태가 아닌 비정상, 치우침으로 봅니다. 마음의 작용이 한쪽에 치우치고 매여 바름을 잃는다면 허령한 본체의 바름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응순, 『친절한 강의 .. 2017. 11. 13.
아기가 왔다, 그리고 먹는다, 아빠가 된다 아기가 왔다, 그리고 먹는다, 아빠가 된다 우리 딸이 이유식을 먹은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맨 처음 쌀을 먹던 날, 아빠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200여일 아기를 돌보면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어째서 그렇게 긴장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아기’가 ‘사람’이라는 느낌이 희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엄마, 아빠와는 먹는 것도 다르고, 자고 일어나는 주기도 다르고, 아무 때나 울고, 싸고...... 팔, 다리, 눈, 코, 입을 빼곤 모두 다르니 그(녀)가 도무지 ‘동류’로 느껴지지 않았달까. 무조건적으로 돌봐주어야 하는, 어쩐지 엄청 귀엽고 사랑스러운 생명체이기는 했지만, 이 녀석이 ‘인간’이라는 걸, 게다가 내 자식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음에도 실제 대할 때의 느낌은 ‘이게 정.. 2017.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