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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영역, 조금씩 조금씩 넓어져 간다_아빠 아기의 영역, 조금씩 조금씩 넓어져 간다 사람이 처음 태어나면 누워있는 자리, 딱 그만큼밖에 없다. 거기서 보이는 것들, 냄새, 2-3시간에 한 번씩 입으로 들어오는 것들 등 그 정도가 세계의 전부다. 그러다가 보이는 게 조금씩 많아지고, 손으로 무언가를 쥘 수 있게 된다. 저 멀리 무언가 보이는 데 무엇이 보이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가서 보고, 만지고, 입에 넣어봐야 하는데 아직은 몸을 뒤집을 수조차 없다. 그래서 온 힘을 쥐어짜 뒤집는다. 뒤집고, 뒤집다가 겨우 몸을 이동시키는 요령을 터득하는데 그조차도 쉽게 되질 않는다. 처음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 어찌나 답답한지 짜증도 나고, 눈물도 난다. 그러면서 배를 밀어 앞으로 가는 요령을 터득한다. 일단 한번 앞.. 2018. 1. 26.
카프카, 산책을 나서다 -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카프카, 산책을 나서다 1.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카프카가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집의 제목은 ‘관찰’(1913년)입니다. 카프카는 1904년부터 1912년까지 일기와 연구 노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작품을 쓰곤 했는데요, 그것들을 엄선하여 펴낸 것이 바로 『관찰』입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18편의 짧은 이야기에는 아이들, 사기꾼, 독신자, 상인, 전차의 승객, 말의 기수, 인디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출현합니다. 사건도 가출, 전차에서의 하차, 등산, 말달리기 등 산만합니다. 이후에 카프카가 집중적으로 다루게 되는 가족 드라마, 법정 공방, 민족과 예술의 문제 같은 거시적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관찰’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만 보면 더욱 희안한데요. 관찰할 만한 대상도, 관찰 가능한 도구도, .. 2018. 1. 25.
앤 레키, 『사소한 정의』- 착각은 자유지만 실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앤 레키, 『사소한 정의』- 착각은 자유지만 실례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주, 머리를 잘랐다. 생일기념이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몸과 마음을 쇄신하겠다는 일종의 의식, 쉽게 말하면 그냥 셀프 생일선물이었다. ‘우주여 나의 머리카락을 바칠테니 새로운 운명과 샘솟는 에너지를 주세요!’ 라는 심정이었달까. 헤어스타일 상담을 하며 디자이너가 말했다. “ 숏컷도 잘 어울리시겠는데요.” “ 으허헝 설마요.” “ 진짜요. 아무한테나 안 권하는데.” 나는 기대와 불신이 동시에 차오르는 눈빛을 숨기기 위해 스타일북을 들여다보는 척 고개를 숙였다. 그럴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숏컷과 관련해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이, 선명히 기억하는 것만도 세 건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와 중학교 1학년 때 각각 한 번씩 숏컷을.. 2018. 1. 24.
철학, 건강의 기예 철학, 건강의 기예 철학, 여전히 너무나 낯선 나는 연구실 바깥의 주변인들에게, 심지어는 가족들에게조차도 뭘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인간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취직을 한 것도 아닌 주제에 바쁜 척은 다 하고 다니는. 그래서 다들 내게 묻는다. 도대체 뭐하고 싸돌아다니는 중이냐고.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런 질문에 답할 때면 ‘철학’이라는 말을 빼려고 노력하게 된다. 결국 그게 그거지만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말하거나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식으로 대답하게 되는 거다. 분명히 철학을 공부하고 있고 그걸로 글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철학’이라는 말이 낯설다. ‘철학’이라는 말이 주는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난 뭔가 고원한 진리를 논할 것만 같은 철학의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가 부담스.. 2018.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