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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賢者)의 삶과 죽음 현자(賢者)의 삶과 죽음 '죽음'을 떠올리면, 너무 아득하게 먼 듯하여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러다가도 문득, 당장에라도 심장이 뛰기를 멈춰버리면 그대로 죽어버릴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움찔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결국 얇은 실에 매달려 절벽 아래로 던져지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이 끊어질 때 죽는 것이다. 오랫동안 당겨진 실이 낡아 끊어지거나, 매달린 채로 과하게 난동을 부리거나, 어쨌거나 언젠가는 끊어지게 되어 있다. 안간힘을 쓰며 실을 튼튼하게 만들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스스로 끊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말로 신이 있어서 인간들이 그러고 있는 광경을 본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인간으로서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도저히 어떻게 할 .. 2018. 4. 23.
돌잔치를 준비하는 아빠의 마음 돌잔치를 준비하는 아빠의 마음 돌이다. 돌(石)말고, 돌(돐) 말이다. 맞다. 그렇고 보니 예전엔 뷔페 창문에 ‘돐잔치 전문’이라고 써있고 그랬다. 나는 지금의 ‘돌’보다는 예전의 그 표기법이 더 마음에 든다. 돌멩이랑 헷갈리지도 않고, 받침에 들어간 ‘ㅅ’도 어쩐지 멋스럽다. 아마도 헷갈리는 사람이 많아져서 ‘돌’이 되어 버린 것 아닌가 싶지만 너무 편의주의적인 것 같다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마 예전의 표기가 다시 표준이 되기는 불가능한 일이겠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 사회에 대한 깊은 분노가.......가 아니다. 아빠는 딸의 돌잔치가 코앞에 있다는 이 현실을 회피하고 싶다. 사실은 그게 진실이다. 흑. 사실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각종 경조사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성품의 .. 2018. 4. 20.
공부한다면, '개'처럼 공부한다면, '개'처럼 인간 너머라구요? 카프카의 세계에는 동물이 가끔 나옵니다. 개(「어느 개의 연구」,『소송』), 쥐(「작은 우화」,「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 원숭이(「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어쩌면 두더지?(「굴」) 동물은 자기의 종족에 관련된 어떤 질문에 붙들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란 무엇으로 사는가?’ ‘쥐의 불안과 고독이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등. 머리에 이런 화두를 활활타는 불처럼 이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동물은 어떤 경지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라짐’. 아버지 개와, 친구 쥐들이 시비를 걸며 매달려도 그들은 슬그머니 떠나버린답니다. 자신의 테두리를. 때로는 이 사라짐이 죽음과 변신의 테마로 구현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는 어김없이 인간이 문제가 되지요. 어쩌다.. 2018. 4. 19.
존 스칼지, 『유령여단』 - 이불속 하이킥을 덜하는 방법 존 스칼지, 『유령여단』 - 이불속 하이킥을 덜하는 방법 이불속 하이킥. 고요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느닷없이 허공을 향해 발길질을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개는 처절한 후회, 자책, 수치심 등에 휩싸여 무의미한 동작이나 발성을 갑작스레 폭발시키는 행위를 폭넓게 아우르는 말이다. 이 행위는 일견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독립적으로는 발생하지 않으며, 물밑에서 선행된 일련의 사고 과정에 뒤따라서 일어난다. 더 중요한 필요조건은 사고와 행위 모두를 앞서는 타임라인에, 반드시 씨앗이 되는 사건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불속 하이킥은 과거에 몸소 겪었던 사건을 기억으로부터 길어올려, 당시에 취했던 자신의 행동이나 언사를 제 3자적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한 뒤, 다시 시점을 .. 2018.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