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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796

산다, 자란다, 배운다 - 모든 것을 배운다_육아일기 산다, 자란다, 배운다― 모든 인간은 ‘호모 쿵푸스’다 _ 엄마편 눈 깜짝할 새에 매트 위 저쪽 끝에 옮겨 놓았던 딸이 이쪽 편 끝에 있는 식탁 아래에 와서 고개를 들고 씩 웃는다. 아직 정식으로(?) 팔다리를 들어서 기지 못하고, 배를 바닥에 붙인 포복 자세로―마치 군인들이 적진 침투 훈련이라도 하는 듯한 그런 자세로―기는데도 전광석화와도 같다. 하, 이제 200일을 갓 넘겼을 뿐인데…. 태어나 먹고(빨고), 자고, 싸고, 울고―이 네 가지만 할 줄 알던 아기가 그 200일 동안 습득한 배움은, 생각하면 엄청난 것이다. 누웠던 자리에서 옆으로 살짝 돌리지도 못하던 몸뚱이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갈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알고는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생명의 ‘본능’에 관련된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2017. 11. 17.
프란츠 카프카, 「유형지에서」 - 목숨을 건 도약 프란츠 카프카, 「유형지에서」 - 목숨을 건 도약 카프카가 1919년에 발표한 단편 「유형지에서」는 ‘몸에 계율을 써주는 자동기계’ 즉, 형벌기계에 스스로 몸을 눕히는 장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은 누구를 초점에 놓는가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복종하라’고 선고받은 죄수를 중심에 놓는다면, 규율권력을 몸 깊숙이 각인(刻印)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해가야 하는 근대인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죄의 심판자인 장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창조주를 산산조각 내 버리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이 됩니다. 그런데 이 ‘묘한 기계’ 자체를 해석의 축으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하나의 변신담이 지면 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상반된 운명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죄수와 심판자의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 2017. 11. 16.
『신들의 사회』 - 무엄하고도 불경스러운! 로저 젤라즈니, 『신들의 사회』 - 무엄하고도 불경스러운! 내가 생전 처음 인도에 도착했던 밤, 델리 국제공항은 정전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그게 잦은 일이라고 해서 더 어처구니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공항 경비원들이 구불구불한 길목에 드문드문 늘어서서 손전등으로 길을 비춰 출구를 안내해 주었다. 여정을 시작한 인천공항, 경유해온 홍콩공항과 비교하면 안 그래도 터무니없이 초라했을 시설이, 희미한 손전등 불빛 아래 더욱 괴괴해보였다.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은 어둠속에 얼굴만 동동 떠있었다. 그 ‘다른’ 이목구비에 새겨진 선명한 음영과 부리부리한 눈 때문에, 그들은 얼핏 무시무시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전등 불빛을 따라 걸으며 나는 지금 제의를 위한 가면을 쓴 제관들이 이끄는 대로, 신에게.. 2017. 11. 15.
뤼시앵 페브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자기 밖으로 나가기 뤼시앵 페브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자기 밖으로 나가기 내 고조할아버지 이야기다. 고조할아버지는 꽤 활동적이셨는지, 마을 다반사를 거의 도맡아 하셨다. 하지만 뭐든 많아지고 커지면 나쁜 일이 생기는 법. 몇 가지 일로 주변과 크게 다투게 되었다. 땅 문제가 꼬이면서 이웃친척들과 큰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그 사달이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급기야 할아버지는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그러나 급하게 도망쳐 나왔지만, 사실 그 즈음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사방이 산과 바다로 막혀 있는 섬이라 섬 밖으로 나서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고, 더군다나 섬 공동체들의 네트워크는 매우 촘촘했기에 섬 안에서는 어디 도망가더라도 잡혀오기 십상이었다. 나오자마자 막다른 곳에 서 있는 셈이었다. 도무지.. 2017.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