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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796

[아파서 살았다 최종편] 오랜 고통과 불안을 '만나다, 철학하다' ‘경험’에서 ‘지성’으로 근대 이전, 학인들은 스승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부처님을 따르던 무수한 제자들과 공자의 문도 3천 명을 위시하여, 주자의 강학원을 찾았던 2천 명의 학인들, 양명의 뜰에 모여든 개성 넘치는 문사들. 비단 이들 대가들만 그랬던 건 아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수많은 문사가 있었고, 그곳엔 가르침을 받기 위해 천 리를 마다않고 오는 학인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배움터란 기본적으로 ‘코뮌’이었다.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앎의 ‘코뮌’. 그럼 왜 그토록 스승을 찾아 헤매었던가? 그 ‘코뮌’에 접속해야만 지리멸렬했던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생역전’이 가능한 것이다. ─고미숙, 『나비와 전사』, 휴머니스트, 2006,.. 2013. 6. 14.
남들과 같은 삶을 살 것인가, 내가 원하는 삶을 고민할 것인가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해체하라 ! 1. 매달리거나 내동댕이쳐지거나 프롤레타리아는 항상 불안정에 내던져진다. 부르주아지가 만들어 놓은 일자리를 온종일 찾아 나선다. 꿈과 삶은 상품이 되어, 경쟁과 변동에 이리 저리 움직인다. 불안정의 그물에 내던져진 위태로운 존재. 그야말로 정처 없다. 정처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온통 한심해진다. 아이와 엄마는 입시 도박에 휩쓸리고, 꽃다운 청춘들은 취직준비로 함정에 빠진 생쥐마냥 버둥거린다. 직장인들은 월급과 승진이 자신을 갉아 먹는걸 눈뜨고 지켜본다. 서점 가판대에 깔려있는 자기계발서들은 오직 잘 매달리는 법일 뿐이다. 하지만 기막히게도 대부분 도로 빼앗기고 만다. 학생들은 산더미 같은 사교육비만 남기고 판돈과 시간을 빼앗긴다. 대학생들은 껍데기 스펙만 남기고 아름다.. 2013. 6. 12.
내게 힘이 된 것들 -부모님과 책읽기, 일기 쓰기 내게 힘이 된 것들 어린 시절엔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 역시 놀이를 참 좋아했다. 시골에서 중학교까지 다닐 동안엔 발길 닿는 곳이 모두 놀이터였다. 학원이 없던 복된(!) 시절, 학교가 파하면 운동장에서 해가 설핏 기울 때까지 놀았다. 초등학교 시절엔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땅따먹기, 오케바닥(돌차기?) 같은 건 물론이고 남학생들이 주로 하는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도 참 많이 했다. 몸집이 좀 커진 중학교 시절에는 십자가생, 사다리가생(‘가생’이 무슨 뜻인지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같은 여럿이서 함께 하는 역동적인^^ 놀이들을 하며 자랐다. 탁구도 즐겨 쳤는데 누우면 천장에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고 책을 펼치면 그 위로도 공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좋아했다. 방학이면 오빠들이 축구나 농구를 하는 주변.. 2013. 6. 7.
두 발로 선다는 것, 스스로 선다는 것 두 발로 서기 "사람이 사람답게 생각할 수 있는 건 걷고 있을 때일지도 몰라. 왜냐하면, 연인들도 걸으면서 장래의 일을 이야기하잖아." 이 대사는 일본 드라마 에서 주인공 ‘아야’가 휠체어를 밀어주는 남자 친구 ‘아소’에게 하는 말이다. 병상에서 보내던 그 시절,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두 다리로 우뚝 서서 ‘친구’와 우리의 앞날을 이야기하며 나란히 걷는 것. 1983년 5월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대구 ‘앞산‘ 아래의 5층짜리 작은 아파트 2층에서 살았다. 처음 일 년은 한 쪽 벽면 전체가 창으로 된, 어디에 앉아서도 앞산이 훤히 내다보이는 방에서 지냈다. 그 방은 산 아래 길과 같은 높이로 놓여 있었다. 방에서 올려다 보이는 산 아래 승마장에는 언제나 반들반들.. 2013.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