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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505

‘스위트 홈’이라는 환상 ‘스위트 홈’이라는 환상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데 소통불능의 상태로 각자가 갇혀 있는 거죠, 각자의 방에. 이런 모습은 지금 우리 시대의 가족들하고 똑같지 않나요? 부모 자식 간에 믿음이 있으세요? ‘온전히 다 나한테 줘야 돼. 부모님도 온전히 나한테 신경을 써야 해’, 지금 이런 감정들 말고 가족 간에 다른 건 없지 않나요? 그래서 그게 없으면 막 의심하고, 어긋나게 되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면서 또 자식들한테 엄청 투자하고, 또 자기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고 너무너무 노력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일종의 자기 확대예요. 그 존재 자체를 그냥 인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화하는, 자기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부부가 만나서 살고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이러고 있는 상태라는 거죠. 『소세키와 가족, .. 2022. 10. 17.
[청년루크레티우스를만나다]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좋지 아니한가? 원래 이 글은 전혀 다른 내용일 뻔했다. 의 주제들을 짜던 3월까지만 해도, ‘사랑’과 관련해서는 진한 한숨이 묻어 있는 전개가 예정되어 있었다. 공부와 연애의 병행 불가능성에 대한 한탄, 그럴수록 커지는 환상, 깊어지는 슬픔, 그리고 거기에 초연해지는 기술 따위를 쓰려 했다. 맨날 늘어놓던 지겨운 투정과 성과 없는 자기 최면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침침한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땐 거의 포기 상태였고, 별자리상 실낱같은 희망이 있을 거라는 말도 그냥 웃어넘겼었다. 나를 방해하지 마라. 열심히 공부해서 티 없이 청정한 수행자의 길을 가려니까. 슬픔을 밀어내고 겨우내 마음을 추슬렀을 즈음, 불현듯 핑크빛 봄이 찾아왔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이 진실이었나? 꿈.. 2022. 10. 5.
‘자기’로부터 벗어나기 ‘자기’로부터 벗어나기 1935년, 편협한 유럽중심주의에 지친 레비-스트로스는 유럽의 ‘바깥’을 기대하며 남아메리카 브라질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바깥’은 없었습니다. 남미에 도착하자마자 알 수 있었지요. 아무리 ‘바깥’을 찾으려고 해도 그의 눈은 익숙한 풍경, 길든 관념밖에는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는 없는 대로와 자동차, 유럽에는 없는 거칠고 투박한 살림살이와 먹을거리 등. 낯선 풍경 속에서 작동하는 것은 여전히 ‘유럽’이라는 척도였습니다. 열대로부터 돌아와서 그는 자기라는 관점 바깥으로 나가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또한 자기와 타자를 가르는 구분선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것도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통찰을 거듭해 가며 그는 독특한 인류학적 시선 하나를 .. 2022. 9. 13.
[청년루크레티우스를만나다] 표상은 영혼을 잠식한다 표상은 영혼을 잠식한다 정념이라는 불, 표상이라는 장작 내 나이 스물여섯,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내가 겪는 모든 괴로움의 팔 할은 한 쌍의 표상에서 생긴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될 너’와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될 나’. 이것이 소용돌이 같은 마음의 소란을 휘젓는 쌍두마차다. 가만 생각해보자. 분노나 억울함에 휩싸일 때, 미움이나 시기심이 일어날 때, 두려움이나 가책에 시달릴 때 그런 정념들의 불에 기름을 끼얹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해야만 하는’ 너와 나라는 표상이다. 물론 여기서의 ‘너’는 사람이기도 하고 사물이나 사건이기도 하다. 나는 가족, 친구, 학인, 애인, 선후배, 스승, 정치인 등의 사람들에 대해 각양각색의 이미지와 기대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피부, 몸매, 병.. 2022.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