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홈’이라는 환상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데 소통불능의 상태로 각자가 갇혀 있는 거죠, 각자의 방에. 이런 모습은 지금 우리 시대의 가족들하고 똑같지 않나요? 부모 자식 간에 믿음이 있으세요? ‘온전히 다 나한테 줘야 돼. 부모님도 온전히 나한테 신경을 써야 해’, 지금 이런 감정들 말고 가족 간에 다른 건 없지 않나요? 그래서 그게 없으면 막 의심하고, 어긋나게 되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러면서 또 자식들한테 엄청 투자하고, 또 자기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고 너무너무 노력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일종의 자기 확대예요. 그 존재 자체를 그냥 인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화하는, 자기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부부가 만나서 살고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이러고 있는 상태라는 거죠.
『소세키와 가족, 가족으로부터의 탈주』, 길진숙 지음,북튜브, 50쪽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가족의 정의와 형태는 수없이 많을 테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개성에 맞게, 또 각 가정의 상황에 맞게 말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근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스위트’한 가족을 꿈꾼다. 어쩌면 그렇게 세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회사에 나가서 돈을 잘 벌어오셔야하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고, 아이들은 알아서 공부를 잘 해주는! 적어도 어렸을 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뭔가 우리 집은 달라도 다르게 느껴졌다. 회사에 나가서 돈을 꼬박꼬박 벌어오셔야 하는 아버지가 집에 계신 적이 많았고 주로 돈과 관련된 사고(?)를 치셨다.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꾸준히 일하셨다. 고등학교에 다녔을 때의 나는,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친구들의 어머니들처럼 서로 친하게 지내시고 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지금 떠올려보면 오로지 내 위주의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인용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부모가 온전히 나를 위해 다 해줘야된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가만히 떠올려 보면 부모님을 향한 나의 바람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요즘,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그런 행위를 바라게 된다. 또 시부모님들이 여러 지원을 해주시는 경우는 어떠한가? 물론 잠깐은 부러운 감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로지 지원해주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부모님들도 다 각자의 생각이 있으실 테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형태만 공유할 뿐, 서로 다른 각자의 방에 갇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지금은 양가 부모님들께서 각자 잘 지내시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여길 뿐이다.
집이 ‘스위트’하다는 것. 달콤한 음식은 흔히 중독을 불러온다. 건강에도 안좋을 뿐더러 충치를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돈을 꼬박꼬박 벌어오시고, 어머니가 계속 집에 계시고 나는 공부를 잘 해야만 하는. 그런 가족의 형태를 ‘스위트 홈’이라 부른다면 아마도 나는 너무도 답답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가족도, 근대도, 우리에게 분홍빛 미래를 선사하지 않는다”(같은 책, 7쪽)는 저자의 말이 더욱 와닿는다.
그렇다면 “분홍빛 미래”는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다시 책을 뒤적여본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개성”(같은 책, 42쪽)을 충분히 발휘하고 그것을 자기 확대의 방식이 아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분홍빛 미래는 아니더라도 ‘스위트’한 상태, 적어도 중독 상태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 않을까? 오히려 ‘언스위트’한 우리 집이었기에 지금 나는 나의 개성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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