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판소리를 인문학적으로 읽기 : 방심하는 순간, 놀부 되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를 조금 인문학적으로 읽기

『낭송 흥보전』


박통이 요물이고 탈수록 잡것이라. 놀보댁이 옆에 앉아 통곡을 하는구나. 일꾼들도 무색하여 놀보를 말리면서,

“그만 타소, 그만 타소. 이 박통 그만 타소. 소문났던 자네 재산 순식간에 탕진하고,

이 박통을 또 타다가 무슨 재변 또 나오면 무엇으로 막으리오. 제발 이제 그만 타소.”
고집 많은 놀보 놈이 가세가 변했어도 성정은 안풀렸구나.

“너의 말이 용렬하다. 빼던 칼 도로 꽂기 장부의 할 일인가. 무엇이 나오는지 기어이 타볼 테다.”

― 구윤숙 풀어읽음, 『낭송 흥보전』, 164쪽


『흥보전』의 스토리야 다들 아시는 바와 같고요. 다만 생각해 볼 것은 놀보의 악덕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 내용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낭송하는 『흥보전』은 아무래도 전래동화를 읽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읽히니까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 덕분에 성공 신화를 이룩한 흥보를 본 놀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제비 다리를 부러트리고 다시 붙여주어 기어이 박씨를 얻어내 키웁니다. 그런데 다 자란 박들을 톱으로 타서 열릴 때마다 엄청난 재앙이 놀보에게 닥쳐옵니다. 그런데도 놀보는 박을 타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흥부 박에서 금은보화가 나왔듯이 이 박에서도 금은보화가 나오길 기대하는 거지요^^;;



이미 열린 박(재앙)보다 더 문제인 것은, 그것들을 겪고도 기어이 끝을 보고 말겠다는 놀보의 욕심 아닐까요? 읽기에 따라 요행을 바라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단순한 오기일 수도 있고, 욕심에 눈먼 광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떻게 읽어도 현재를 돌아보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우리도 수도 없이 안 될 일 앞에서 요행을 바라고, 오기를 부리고, 심해지면 광기가 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흥보전』은 그러니까 ‘욕심’을 들여다보기에 아주 좋은 텍스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를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제가 가진 무수한 욕심들을 빼고 나면 저는 아마 껍데기만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특이하게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수련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다고 저는 생각합(믿습)니다. ‘빼던 칼 도로 꽂기 장부의 할 일인가. 무엇이 나오는지 기어이 타볼 테다’라며 기어이 다음 번 재앙의 문을 열고 마는 놀보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이죠. 각종 ‘중독’도 다 이와 같은 양상입니다. 그것이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하고야 맙니다.


그래서 결론은 ‘욕심을 줄이자’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물론 노력은 해야겠지요. 하지만 흥보처럼 타고난 심성이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그건 정말 멀고 먼 목표로서 인생 전체를 두고 해봐야 할 일이고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거 하나만 꼭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놀보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걸 잘 기억하고 있으면 톱질을 하다가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이걸 열면 끝장이다’. 이것마저 까먹어 버리면 그냥 놀보 되는 겁니다.


우리 안에는 놀부도 있고 흥보도 있지요.


이런 식으로 『흥보전』을 읽어가다 보면 우리 마음 속에는 흥보도 있고 놀보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내 마음을 조금 더 잘 알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마음의 구석구석을 잘 들여다볼수록 욕심을 줄이는 것도 수월해지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


낭송 흥보전 - 10점
고미숙 기획, 구윤숙 옮김/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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