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기, 머물러 行하는 법을 연습하기



더 아는 것이 두렵다




子路는 有聞이오 未之能行하여선 唯恐有聞하더라자로는 유문이오 미지능행하여선 유공유문하더라자로는 들은 것이 있는데 아직 그것을 실행할 수 없을 때는 다른 것을 또 듣게 될까 오직 그것을 두려워했다.―『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편 13장(『논어강설』, 성균관대 출판부, 이기동 역)


(오래 쉬었네요. 기다리시는 분은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한 편에 한 문장씩 뽑아서 글을 써가며 『논어』를 다 읽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저는 쓰겠어요. 흑)



작년 연말에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었다. 접다 보면 모든 페이지를 다 접어야 할 만큼 좋은 글들로 가득한 책이었다.(저는 인상적인 구절이 있으면 귀퉁이를 접어 두는 버릇이 있어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의 ‘11계명’이었는데, 11계명 중에서도 ‘새 소설을 구상하거나 『검은 봄』(헨리 밀러의 두번째 소설)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지 마라’라는 두번째 계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로의 이야기나 헨리 밀러의 계명이나 가리키는 것은 같다. 지금 하는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정말 어렵다.


A를 보는 사이에 B가 보여서, B를 하다 보니 A를 까먹고 C를 하다가 A가 생각나서 A를 하고 C는 영영 잊혀진 경험, 다들 있으시죠?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면 그 책을 써낸 필자가 읽은 다른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그 책이 읽고 싶어진다. 운동도 그렇다. 야트막한 동네 뒷산을 오를 때에도 숨을 헐떡이면서 마음은 지리산, 설악산을 오르는 중이다. 공부나 운동처럼 특별한 일을 할 때뿐이 아니다. 출근해서는 퇴근 후를 생각하고, 퇴근해서는 출근할 걱정을 한다.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 먹고 난 후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 그것도 아니면 스마트폰에 눈이 가 있다. 이런 자잘한 예들을 들다 보면 도대체 어느 한순간도 그 순간을 살고 있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사소한 집중조차도 어려운 마당에 ‘아는 것을 아는 바대로 행하는’ 윤리적 차원에서의 ‘집중’은 말 그대로 ‘아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 어쩌면 행하지 못한 것이니 ‘아는 것’도 못 되는 것일 수 있겠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세계다. 아는 바대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것이 훨씬 가치 있다고 ‘여기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점점 그런 식의 전제에 회의가 든다. 오랫동안 알지 못했던 자연의 비밀이 파헤쳐지면서 자연이 파헤쳐졌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인간 심리의 어두운 반대편을 알게 되면서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욕망들이 곳곳에서 소용돌이친다. 재화는 엄청나게 늘었지만 결핍감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고, 결핍감이 늘어가는 것에 맞춰서 불안도 함께 는다. 이른바 삶을 윤택하게 하는 모든 것이 늘었지만 정작 윤택해지지 않은 삶이라는 역설의 중심에 ‘행行의 무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와 지식의 양은 폭증하였으나 몸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니까 욕망은 잡다해지고 만족은 요원하기만 한 것이다.


온 세계가 특정한 전제 속에서 세팅되어 있는 마당에 나 혼자 단번에 어떤 경지에 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으나, 머물러 행行하는 법부터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읽어도 ‘읽어 치우는’ 식으로 읽지 말고 1년에 단 한 권이라도 온전히 읽기를 바라고, 밥 한 끼를 먹어도 밥에 집중해서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일들을 못해서 그간의 괴로움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사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만, 기왕에 사는 건데 조금이라도 덜 힘든 상태로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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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문화유목민 2015.01.23 08:57 답글 | 수정/삭제 | ADDR

    아,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힘들었던 거군요~
    책을 '읽어 치우는’ 에서는 뜨끔! ㅋㅋㅋ

    • 북드라망 2015.01.23 13:24 신고 수정/삭제

      그래서 힘들었던 것입니다. ㅠㅠ 그래도 힘내서 잘 살아야지요. ^^

  • 예비아빠 2015.02.28 10:47 답글 | 수정/삭제 | ADDR

    읽어치우는 식이 아닌 한 권이라도 온전하게 읽기- 격하게 공감합니다. 밥 한술 입에 넣자마자 삼키기도 전에 다음 반찬과 밥에 손이가는 저로서는 참 돌이켜보게 됩니다

    • 북드라망 2015.03.02 12:36 신고 수정/삭제

      저희도 참 그게 어렵습니다. 노력하는 수 밖에 없겠지요. 예비아빠님도 화이팅입니다^^

  • s 2015.03.30 05:17 답글 | 수정/삭제 | ADDR

    더 아는 것이 두렵다 라는 한줄을 읽으면서 부터 뭔가 뇌리를 스치는
    그런 포스팅이었습니다.ㅎㅎ

    분명 지금 하는 것에 집중하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야겠지만,
    또한 미래를 내다보라는 말이 있죠..
    유비무환 처럼 미리 준비하고 예상하여 근심 걱정을 없에는 방법도
    많이들 강조하고요..

    이런것들에만 너무 강요 받고, 익숙해진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사람의 뇌는 동시에 한가지 밖에 못하는데
    한가지만 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느껴지니까요.
    토끼를 두마리 세마리 잡으려다가 결국 혼자 고꾸라져 바둥바둥 대고 있네요.

    북드라망님께서는 '한가지만' 하기 위해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전 뒤쪽일은 메모도 해서 잊어보려고도 하고,
    여러가지 시도해보는데 생각처럼 잘 안되네요ㅎㅎ;

    • 북드라망 2015.03.30 13:14 신고 수정/삭제

      정말정말 어렵죠. '우선순위를 두고' 일하는 걸 계속 연습중입니다^^ 시간과 순서를 정해놓고 그 시간에는 그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심지어 가끔은 타이머를 맞춰두고 일하기도 합니다. 말은 이렇지만, '지금 답글을 달고 있는 북드라망'은 선천적으로 느긋해서.. 일이 조금씩 늘어질 것을 예상하고 중간중간에 쉴 시간도 끼워놓고 그려러고 합니다만.. 쉽지 않네요.
      글쎄요. 다른 사람들과 다른것 같지 않네요^^;;
      다만, s님이 '강요받는다'거나 하는 일들에 너무 조바심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그 조바심 때문에 '지금하려는 일'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잘 안되면 계속 해보면 되지요.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