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과 고정관념
이번에는 뉴욕 생활의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불편함은 내가 아직 이곳에 이방인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 불편한 뉴욕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초기 몇 달은 내 머릿속 뉴욕을 넘어서 ‘리얼 뉴욕’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뉴욕과 고정관념
뉴욕, 하면 다들 최첨단 유행의 도시를 떠올린다. 그러나 맨해튼은 지어진 지 100년도 더 넘은 낡은 도시이기도 하다. 여기에 비하면 서울은 아직 청년기다(^^).
가령, 이곳 맨해튼에서는 열쇠가 왕이다. 건물들 거의 대부분이 100년 전에 지어진 구식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이용했던 전자 현관문은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열쇠를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큰 불편함은 아니다. 하지만 구식 건물들의 낙후는 현재 뉴욕시가 떠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두 달 전에도 이스트 할렘 가에서 가스누출폭발로 건물 두 채가 무너졌다. 순전히 파이프가 낡아서 벌어진 참사였다. 맨해튼에서 멀쩡한 건물 찾기가 더 힘들다는 말이 그냥 농담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건물 뿐만이 아니다. 뉴욕 길거리에는 하수구가 없다. 그래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쌓이고, 눈이 녹으면 녹는 대로 웅덩이가 생긴다. 하수도가 얼마나 중요한 기능인지 여기 와서야 실감하고 있다. 눈 오는 날이면 맨해튼은 새벽 내내 잠들지 않는다. 어디서 다 나타났는지, 수많은 눈 청소부(?)들이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뉴요커들은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물이 차오르는 횡단보도를 건넌다. 눈이 한 번 내렸다 하면 이 도시는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내가 느끼는 또 다른 불편함이 있다. 바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한 번은 포장초밥을 샀는데 알바생이 일회용 간장소스를 6개나 집어넣어서 기겁을 했다. 단지 일회용품 뿐만 아니다. 뉴욕에서 소비는 돈의 유무에 관계가 없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싼 것을 소비하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비싼 것을 소비한다. 그렇게 소비해도 될 만큼 물건이 남아돈다. 그래서일까, 맨해튼에는 일반인처럼 옷을 빼입고 여행가방에 물건을 한무더기씩 넣고 끌고 다니는 홈리스들이 종종 눈에 띤다. 그러면 홈리스를 보고 놀라고, 집에 와서 하루에 한 봉지씩 쓰레기를 만들어 버리는 나를 보고 또 놀란다.
뉴욕에 온 후 새로운 질문이 든다. 시골은 불편하고 도시는 편리하다는 생각 역시 하나의 고정관념이 아닐까? 불편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대적인 감각이다. 나에게 뉴욕은 그렇게 화려하고 편리한 도시가 아니다. 가끔은 내가 뉴욕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수많은 물건들 속에서 동동 떠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소비해야만 한다는 거,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 이것도 하나의 커다란 불편함이 아닌가.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뉴욕은 참 불편하고 불필요한 도시일지도 모른다.
뉴욕 사람들 : 흑백 논리 탈출하기
뉴욕에는 미국인이 산다. 이것이 내가 뉴욕에 오기 전 가지고 있었던 전제였다. 하지만 그 미국인이란 누구일까? 흑인과 백인? 한 사건을 겪고 나서야,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두 달 전, 세 명의 친구들이 우연찮게 타임스퀘어 정류장에서 싸움구경을 했다. 다음 날 이 삼총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날의 싸움을 생중계 해주었다. 다들 이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집중하던 와중, 내가 별 생각 없이 물었다. “그 사람들 흑인이었어?” 그리고 그 순간 곧바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왜 이 맥락에서 그 단어(Black)가 필요하지? 그 사람이 백인이거나 흑인이라고 해서 뭐가 바뀌니?” 그 순간 나를 포함한 친구들 모두 벙, 쩠다. 의도치 않게 뭔가 크게 잘못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다른 방향에서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내 질문(“그 사람 흑인이야?”)의 문제점은 인종차별을 했다는 게 아니라 너무 관념적이라는 데에 있지 않을까? 타임스퀘어 역에 실제로 가보자. 사람들의 피부색깔은 누가 흑인이고 또 백인인지 구별하기가 불가능할만큼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하얀색에 가까운 브라운, 브라운에 가까운 하양, 게다가 ‘흑백’ 논리를 고수하는 건 더 이상 여기 실정에 맞지 않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색깔과 생김새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에서 누가 싸웠느냐고? 그들은 히스패닉일지도 모른다. 동아시아인 혹은 인도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말을 못하는 중국인, 히스패닉과 미국인의 혼혈아, 아니면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홈리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도대체가 분류 불가능이다!
누구는 뉴욕이야말로 가장 미국 같지 않은 장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맞다. 뉴욕시의 지역 중 하나인 퀸즈만 해도 100개가 넘는 국적과 138개로 추정되는 언어가 공존하고 있다. 미국에는 미국인이 살지만 뉴욕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사는 것이다. 이 인터내셔널한 동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또 무슨 사람들과 만나게 될까? 현재 내가 확신하고 있는 사실이 딱 하나 있다. 이곳에 머물면 머물수록 내 고정관념이 깨질 것이라는 것(^^).
글·사진. 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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