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반 친구들
Hunter College
현재 나는 Hunter College의 부설 코스인 I.E.L.I(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Instituion)에 다니고 있다. Hunter College는 뉴욕 시립 대학교에 속해 있는 학교다. 한국 사람이 많다는 것만 빼면 정말 좋은 학교다. (한국 사람이 많다는 건 공부를 빡세게 시킨다는 소리^^)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마인드가 좋다. 이곳에서는 영어점수가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 자체를 전달해 주는데 방점을 찍는다. 학생들이 영어라는 언어를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 그건 역시 아니다. 학생들의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똑같다(^^). 우리들은 지각하고 졸고 딴짓하고 멍 때린다. 나른하기 그지 없는 아침 시간, 학생들이 하나 둘씩 유체이탈을 할 때면 선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Hey, Guyz. 영어가 원래부터 여러 언어가 짬뽕된 거라 좀 많이 이상해. 하지만 어쩌겠어? 그냥 배우는 수밖에 없지 않아?!”
국제반 친구들
사실, 수업에서 배우는 건 영어만이 아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은 다들 세계 각국에서 영어를 배우러 이곳 뉴욕을 찾은 사람들이다. Hunter College에서 보낸 첫 학기는 ‘우리’라는 집단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또 놀라워하는 과정이었다. 일단 담임 제임스부터가 남달랐다. 제임스는 62살인데 나이가 전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고, 스패니쉬와 잉글리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바이링거다. 그는 5살부터 20살까지 페루에서 자랐다. 그래서인가, 제임스는 스스로를 미국인이자 동시에 페루인으로 생각한다. 외국어 및 외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학생들이 온 각국 나라 사정에도 아주 빠삭하다. (때때로 수업 중간중간 한국 학생에게 이상한 한국어로 핀잔주기도 한다. “저기요, 졸지마, 이 바보야!”)
내 친구 비비안은 태국에서 왔다. 하지만 비비안의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다. 그래서 비비안의 아버지의 부인은 총 세 명이다. 게다가 비비안의 (직속?) 어머니 역시 타이-차이니즈 혼혈로서, 비비안은 타이에서 자라면서도 어렸을 때 한자도 익히고 대만으로 중국어 어학연수도 갔다 왔다고 한다. 비비안은 세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환경에서 자라온 셈이다. 우리는 모두 혀를 끌끌 차며 비비안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 “엄마가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라니, 안 됐군!”
사브리나는 성격 시원시원한 프렌치 언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사브리나가 서유럽에서 왔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가무잡잡하고 선이 굵은 그녀의 외모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사브리나의 어머니는 알제리 사람이고 아버지는 이탈리아 사람이란다. 그 둘이 프랑스에서 만나 결혼하고 정착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브리나는 ‘프렌치’가 된 것이다. 게다가 사브리나는 현재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분은 또 미국 흑인 농구 코치라고 한다. 사브리나가 곧 결혼에 골인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미국+프랑스+이탈리아+알제리가 함께 하는 가정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국적을 물어보는 영어 질문은 “Where are you from?”이다. 말 그대로 어디서 왔느냐이지, 핏줄을 묻는 게 아니다. 그러니 고민할 필요 없이 당연히 비비안은 “From Thai”이고 사브리나는 “From French”다. 만약 내 부모님이 한국인이 아니었다고 해도 내가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말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면 나 역시 “I’m from Korea”인 것이다.
교실 속 국제 사회
한국에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외국 땅에서 ‘Korean’이라고 규정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나 역시 친구들과 대화하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Korea’이라는 단어로 번번히 회귀하곤 한다. 하지만 나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건 역시나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 다양한 국적과 사고방식들이 우글거리는 환경 속에서 나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3월은 숨가쁜 한 달이었다. 대만에서 커다란 학생시위가 일어났고, 베네수엘라에서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시위 중 죽었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중국행 말레이시아 비행기가 실종되었다.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우리 반에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국제 시사 뉴스를 읽어도 강 건너 불구경처럼 다가올 뿐이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전혀 다르게 쓰인다. 이 나라들은 이제 내 친구들이 떠나온 나라가 되었다. 뉴스를 접할 때마다 그 친구들이 생각나고, 친구들에게 질문하면서 그 상황을 공유하고, 때로는 마음 아파하고 때로는 반발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국제 사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단 몇 명끼리의 친분으로도 국경을 넘나드는 작은 네트워크가 생겨난다. 내 신체가 다 달라진 느낌이다(^^).
그리고 지금 내 모든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 다들 자기 언어로 신문을 읽은 후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내 친지들의 안부를 묻는다. 대만 신문, 태국 신문, 일본 신문, 콜롬비아 신문……. 이곳에서 나는 세월호 참사를 한국 뉴스보다 외신을 통해 더 자주 접하고 있는 셈이다. 외신들은 한국 신문보다 이 상황을 훨씬 더 비판적이고 신랄하게 분석한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다 맞는 말인지라, 오히려 내가 그쪽에서 더 배우고 있다. 부끄럽기보다는 슬프다. 연민과 회환을 넘어,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을 때 느끼게 되는 그런 슬픔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생존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뉴욕통신을 마친다.
글·사진. 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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