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해완, 맨해튼 탈출, 퀸즈 독립생활 시작!!

맨해튼 탈출, 두려움 탈출 ~

 


맨해튼과의 첫 기억


더운 초여름이다. 뉴욕에 처음 떨어졌을 때는 칼바람 부는 1월이었는데 어느 새 에어컨 없으면 못 사는 계절이 오고 말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맨해튼 길바닥을 걷다보면, 지난 겨울에 방을 구하느라고 쭈뼛거리며 여기 저기 발품 팔았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이제는 그 대단한 맨해튼도 단지 옆 동네에 불과하다.





맨해튼에서 첫 집을 구하는 일은 이상하리만치 잘 풀렸다. 내가 도착할 때 즈음 갑자기 뉴욕 날씨가 풀렸고, 엄마와 나는 집을 보기 시작한 지 5일 만에 계약에 성공했다. 집이 좋은 건 결코 아니었다. 원룸을 커튼으로 나눠서 두 명이 함께 끼어 사는 집에, 한국 돈으로 다달이 100만원씩은 내야 했다.. 한국에서라면 쳐다도 안 봤을 그런 집이다. 그러나 이곳 뉴욕에서는 참 흔한 풍경이다. 나는 그래도 ‘맨해튼’에 살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 친구들 중에서 맨해튼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다들 맨해튼까지 최소 30분~1시간 걸리는 거리에서 통근한다. 심지어 강 건너 뉴저지에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하하, 그래도 나는 맨해트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맨해튼에서 살게 된 것에는 내 알량한 자부심보다 콩알만 한 간담이 훨씬 더 크게 작동했다. 왜 맨해튼이어야만 했을까. 뉴욕이 아직 무서웠기 때문이다. 지하철도 어떻게 타는지 모르는데 주말마다 시간표가 바뀌는 외각 지역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 영어로 택시 아저씨에게 길도 못 알려주는데 스패니쉬-잉글리쉬가 흘러다니는 동네에서 도저히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 나의 맨해튼 초기 정착은 이처럼 불명예스럽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정착지, 퀸즈


뉴욕 지하철이 얼마나 더럽고 변덕스러운지, 어느 공공도서관이 홈리스들의 집합소인지, 소셜 넘버 없이 뉴욕ID카드 받기가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센트럴파크에서 CD 파는 뮤지션들이 얼마나 돈을 잘 뜯어가는지. 뉴욕의 본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던 즈음이었다. 마침내 맨해튼을 뜰 기회가 찾아왔다. 방 주인 언니가 한 달에 $100를 더 올려달라고 한 것이다. 뭐라?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맨해튼 바깥이라면 더 싸고 더 넓은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겁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사를 간다면 당연히 퀸즈였다. 맨해튼에서 동강(East River^^)을 건너 퀸즈로 넘어가면 오래된 주택가들이 질서정연하게 등장한다. 미친 집값 때문에 맨해튼에서 밀려난 수많은 가족들, 이주민들, 유학생들이 이곳 퀸즈에 자리잡고 산다. 그러나 이곳 퀸즈는 단순한 주택지라고 하기에는 매력이 넘친다. 뉴욕의 상징이 ‘다인종’이라면 그 상징지는 맨해튼이 아니라 단연 퀸즈가 되어야 한다. 퀸즈 인구의 48%는 외국인이며 그 국적들만 해도 100가지가 넘고, 138가지의 다른 언어가 동시에 쓰이고 있다. 이곳에서 브라질 레스토랑이나 동남아시아 레스토랑은 평범한 동네 식당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한 달 동안 공을 들인 결과, 나는 마침내 퀸즈에서 적당한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전 집에 비교하면 가격도 싸고 방도 혼자 쓴다. 왜 진작에 용기를 내서 이사를 오지 않았을까 후회할 정도다. 아듀, 반쪽자리 원룸이여!





하지만 이번 이사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게 내 결론이다. 뒤끝이 영 찜찜하다. 초보 세입자들이 으레 당하듯 나는 돈을 떼였다. 전 집주인은 돈을 ‘덜 주는’ 합당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암만 생각해도 ‘돈 떼였다’는 것 말고는 알맞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전 집주인이 마침내 보증금을 돌려주던 날, 나는 결산서를 보고 식겁하고 말았다. 내가 전기를 더 많이 쓴 점(이건 아직도 납득이 안 된다!), 집주인의 후라이팬을 쓰면서 스크래치를 낸 점 등등이 돈을 깎는 이유였다. 내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 건 전기세를 틀리게 계산한 것을 발견한 것 뿐이었다. 그제야 결국 돈을 일부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일순간 소시민적인 복수감에 젖었다.)


아, 치사하다. 치사빵꾸다. 왜 그 자리에서 싸우지 못했는지 내가 한심할 뿐이다. 식상이 대운에 세운으로까지 들어왔는데 왜 나는 지르지 못했는가. 이 놈의 인성 때문인가! 다음 번에는 당하지만은 않으리라!!




홀로 다시 시작





이사를 한 번 치르고 나니 이제야 일상의 피로감이 몰려온다. 뉴욕에서의 첫 3개월은 그야말로 관광 모드였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언어가 주는 흥분감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잠잠하다. 벌써 모든 것에 익숙해진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익숙해지기 전까지 뭐든 반복해야만 하는 단계에 놓여 있다. 아이디카드를 새로운 주소로 다시 발급 받고, 차이나타운의 용달 서비스를 예약하려고 전화로 씨름하고, 옛 주소로 반송된 소포를 찾으러 우체국에 간다. 이 단순한 일들을 두 번 세 번씩 반복하면서 겨우 해내고 있다. 세상에, 대단하지 않은가,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 실패처럼 빠른 지름길이 없다. 전화해보기 전까지는 차이나타운이 예약을 안 받아준다는 사실을 알 수 없고, ID카드에 대한 서류를 들고 가기 전까지는 어떤 서류가 빠졌는지 알 수 없다.





이 와중에 한 가지 사실을 터득했다. 아무 기대하지 말 것(ㅋㅋ). 기대한 대로 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실패할까봐 미리부터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번 맨해튼 탈출기는 단순 반복과 실패 반복의 연속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외국인이란 남들이 한 번에 할 때 여러 번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반복은 어차피 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반복하지 않고는 외국어를 배울 수 없다. 게다가 외국어를 익히는 것과 외국의 일상을 익히는 것을 어떻게 떼어놓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뉴욕 생활의 첫 변화를 치러냈다. 무식했기에 용감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더 생활인이 되어야겠다. 다음 번에는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두 번 세 번 반복하다보면 결국 익숙해질 것이다.






글·사진. 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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