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자기가 지배하고, 자기가 복종하는 사회

  #자동완성기능─血─장 자크 루소  

자기가 지배하고, 자기가 복종하는 사회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인간은 태어날 때는 자유로웠는데, 어디서나 노예가 되어 있다”(루소, 『사회계약론』, 김중현 옮김,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0, 34쪽)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사회계약론』을 시작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 즉 타인을 노예로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소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인간이 본성적으로 정치적이라는 점을 부정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연 상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시점이 생긴다. 자연 상태에서 자기를 보존할 수 없을 정도로 방해물들이 많아졌을 때다. 방해물로는 사유재산이 대표적이다. 이때 사람들은 서로 힘을 합쳐 이 문제들을 돌파하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힘을 합칠 때의 결합 형태가 무척이나 까다롭다. 방해물들을 물리치는 힘을 가지면서도, 서로 억압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자가 전체와 결합되어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게 하는 결합이다. 그래야 “이전과 다름없이 자유롭게 남아 있게 하는 결합”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 자연 상태의 자유가 계속 존속되도록 하는 결합 형태를 발명하는 것이다.
 
이 난관을 모면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시도한 것이 바로 ‘사회계약’이다. 그것은 구성원들이 “그가 가진 모든 권리와 함께 공동체 전체에 전적으로 양도하는 계약”(같은 책, 47쪽)이다. 이것은 개인과 전체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게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타인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내놓기 때문에 계약은 평등하다. 그런데 전체에게 자신을 양도하기 때문에 그들이 잃은 것과 동일한 대가를 다시 얻는다. 오히려 더 큰 힘과 함께 되돌려 받는다. 기묘하게도 그 결과는 아무에게도 양도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루소와 프랑스 혁명


그런데 이것은 좀 다르게 설명해 볼 수 있다. 사회계약의 결과 탄생하는 것은 개별 의지의 집합체인 공동체의 의지 즉 ‘일반의지’이다. 공동체의 주권자는 바로 이 ‘일반의지’다. 결코 ‘정부(=통치체)’가 아니다. 주권은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힘이다. 따라서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일반의지’이지 ‘정부’가 아니다. 정부는 주권자의 집행자에 불과하다. 정부는 주권자로부터 명령을 받아 인민에게 전달할 뿐이다. 결국 세 개의 항이 나온다. 주권자, 정부, 그리고 신민. 그런데 여기서 인민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든 권리를 전적으로 양도하였기 때문에 ‘주권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민’으로 나타난다. 정부는 이 둘의 매개자다. 연비례로 설명하면 비례중항이다. 이렇게 보면 아주 묘한 형태가 된다. 자기(주권자)가 지배하고 자기(신민)가 지배 받는 형태인 것이다. 인민은 모든 것을 양도하여 일반의지를 구성하고, 그 일반의지로 공동체를 지배한다. 그런데 인민은 또한 철저하게 그 일반의지에 복종한다. 자유는 복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민은 자신의 변형된 의지에 복종하는 것이 된다. 자기가 지배하고 자기가 복종함으로써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자기에서 나간 것이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양도하지 않는다.
 

이런 형태는 한의학의 기혈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혈(血)은 중초에서 기(氣)를 받아 이를 변화시켜 붉게 만든 것이다. 수곡정미(收穀精微, 음식물의 영양소)는 영기, 위기, 진액으로 나뉜다. 그 중 영기와 진액이 맥으로 들어가 서로 결합하여 빨간 혈액으로 바뀐다. 결국 음식물이 곧 혈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자연의 모든 사물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만 되는가 보다. 그런데 혈은 음에 속하며 성질이 정적이다. 즉, 혈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반드시 기의 추동작용에 의해 운행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는 혈의 통솔자이다(『동의보감』 내경편 券二 ‘혈’ 300쪽). 그런데 이 추동작용을 위해서 폐와 간이 작동해야 한다. 혈은 폐의 선발작용에 의해 상부와 외부로 흐르며, 간의 소설기능에 의해 (혈액)순환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기를 도와 혈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장부다.
 
한의학은 여기서 ‘음식물-(기)-장부-혈’의 도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음식물은 자연의 산물이다. 자연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이 구도는 이렇게 바꿔볼 수 있겠다. ‘자연-(기)-장부-혈’. 그런데 앞서도 말했지만 음식물은 혈이다. 또한 그 음식물은 영기로 변화해서 장부로 들어온다. 장부의 기능에 따라 영기는 혈을 통솔해 흐르게 한다. 이것은 앞에서 보았던 루소의 ‘주권자-(일반의지)-정부-신민’의 구도와 같다. 주권자와 신민은 인민으로 같은 것이었다. 결국 ‘자연’이라는 주권자는 ‘기’라는 일반의지로 전화해서, ‘오장육부’라는 정부를 매개로, 자신의 변형된 형태인 ‘혈’이라는 신민을 통솔한다. 결국 자연은 자기 자신인 혈(=신민)을 지배한다. 혈은 애초에 자기 자신이었던 기(=일반의지)에 복종한다.
 
더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기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형체가 있는 혈에 의존한다. 그래서 혈은 기를 보호한다(血爲氣之守)고 할 수 있다(『기초한의학』, 「혈증론·통혈」, 292쪽) 또한 기가 혈을 얻지 못하면 흩어져 통섭하지 못한다(氣不得血, 則散而不統). 일반의지는 신민들이 복종할 때 존재할 수 있다. 만일 신민들이 복종하지 않는다면 일반의지는 숨어버린다. 더군다나 장부, 사지관절, 구규(九竅) 등 신체 모든 부위는 혈의 자양을 받지 못하면 그 기능이 급속히 저하되거나 상실한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헐어서 떨어져 나가는 탈저((脫疽) 같이 심한 경우도 있다. 루소의 구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신민의 복종이 없어지면 혁명에 의해서 무너진다. 정부형태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기가 혈을 지배하지만, 혈의 복종이 없다면 기는 무너진다. 물론 이 기를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애니메이션 <썸머 워즈>의 한 장면


그런데 아즈마 히로키(東 浩紀, 1971~)라는 일본 철학자는 이 일반의지가 컴퓨터 세계에서 현실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글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는 모든 시민들의 행위와 욕망의 이력이 개별적으로 기록되다 보면 사회 전체의 ‘총기록’이 도출된다. 물론 이때 시민들 서로 서로는 굳이 의사소통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각각이 충실하게 검색만 하면 된다. 바로 그 기록의 총합이야말로 일반의지가 아니고 뭐냐는 반문이다. 그래서 루소의 일반의지를 현대적으로 변용했다고 해서 “일반의지 2.0”이다. 구글의 자동완성기능 같은 것이 초기적 형태다. 자동완성에 뜨는 것들이 현대적으로 가시화된 일반의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총기록사회’이다(아즈마 히로키, 『일반의지 2.0』, 87쪽). 거칠지만, 아주 새로운 무의식의 냄새가 풍긴다. 무의식이 기록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 언어적인 무의식이 다름 아닌 일반의지라는 생각이 드니, 기(氣)도 언어의 형태로 돌아다니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풀칠하고 있을 때 우리는 기를 만지고 이어붙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주권자인 천지(天地)가 ‘나’라는 정부를 통해서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도.



약선생(감이당)


사회계약론 - 10점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일반의지 2.0 - 10점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현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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