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자유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으로서의 '운동 그자체'

#삶의 양식 - 신형, 정·기·신 - 가라타니 고진



신체의 공산주의



나에게 삶의 양식은 여러 개다. 우선 ‘가족’. 아침 일찍 ‘안녕!’하고 떠나서, 밤늦게 다시 ‘안녕ㅡ’하고 돌아와 잘뿐이지만, 그래도 내 삶의 오랜 양식이다. 그리고 ‘회사’. ‘안녕하세요!’하고 들어가, ‘내일 또 봐요’라며 자리를 뜨는 불안한(?) 곳이지만, 가족보다 더 오래된 삶의 양식이다. 또한 세미나나 강의를 들으러 가는 연구실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의 정신적 영토는 이곳에 점령당한지 오래다. 또 이런 것도 있을 수 있다. ‘업무 파트너’. 일을 하면서 맺어진 동료나 고객 같은 사람들이다. 또 매달 통장에서 회비가 나가는 동창이나 동향 ‘모임’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당장이라도 몇십 개의 양식들로 쪼갤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때는 가족 문제가, 또 어떤 때는 회사 문제가 삶을 움직인다. 삶은 어느 하나로만 바라볼 수 없다. 그때그때 보다 중요한 것이 그 상황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눈을 돌리면 몸도 예외는 아니다. 머리, 목, 팔, 다리 등이 모인 생명양식이기도 하고, 정신과 육체가 서로 맞물려 구성된 생명양식이기도 하다. 석가는 사람이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이 사대(四大)가 잠시 합쳐진 것이라고 말한다. 모발·치아·뼈·손발톱은 땅에서, 콧물·정·혈·진액은 물에서, 열기는 불에서, 영명과 활동은 바람에서 빌려 몸이 구성된다(『동의보감』 , 「身形」, 202쪽). 몸은 물질들이 운동하며 일시적으로 결합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몸을 하나의 결합양태로 보고 ‘한 나라’와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서 ‘나라’[國]는 근대적 의미의 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 개념에 가깝다. 이런 관점에서 몸은 정(精)·기(氣)·신(神)으로 구조화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비적인 사고에 따라 신은 임금, 혈(=정)은 신하, 기는 백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 집중하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정·기·신이 서로를 중층적으로 구성한다는 사실이다. 동의보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몸은 하나의 나라와 같다. 심장은 군주, 재상은 폐… 등 오장육부와 정기신의 중층적 관계로 구성된다.


정은 몸의 근본이고, 기는 신의 주인이며, 형체는 신이 깃들어 사는 집이다.


─『동의보감』, 「身形」, 207쪽


정·기·신 상호간의 중층성은 그야말로 역동적이다. 인체의 기는 선천의 정기, 음식물의 정미, 자연계의 청기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선천의 정기’는 남녀의 교합을 통해 생명이 탄생할 때 구성된 것이다. 그 순간 천지의 기가 생명으로 결합된다. 기로부터 정이 생기는 것이다. 이 정이 몸을 구성한다. 따라서 정은 몸의 근본이다. 그런데 이 정이 다시 인체의 기를 만든다. 이른바 하초의 기는 정에서 화생된 것이다. 이 기가 명문에 저장되어 삼초의 근본이 된다. 또 음식물의 정기는 영기와 위기로 나뉘어 생성된다. 이와 같은 기와 형 사이의 상호 전화과정을 ‘기화작용’이라고 부른다. 기가 정을 거쳐 형이 되고, 형이 다시 기가 된다. 그런데 또 이 기는 신(神)의 주인이다. 신(神)은 포락(包絡)으로 싸여 있는 심에 모인 정화(精華)가 불로 변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따지고 보면 신은 정인 셈이다. 경광(驚狂), 경계(驚悸) 같은 정신적인 문제는 혈허나 신정이 약하여 생긴다. 따라서 정·기·신은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정이 없이, 기·신이 머무를 수 없으며, 기가 없이 정·신이 생성될 수 없으며, 신이 없이 정·기가 안정되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중층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를 복수적인 문제로 바라본 사람은 가라타니 고진(1941~ )이다. 고진은 우리 시대를 ‘자본’이라는 잣대로만 고찰하지 않는다. 국가와 네이션(공동체)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세계사를 교환양식의 변주로 바라보았다. 고진이 설명하는 교환양식은 세 가지다. 먼저 음식, 재산, 여성 등을 무조건 증여하고, 상대편은 알아서 답례하는 ‘호수적 교환양식(A)’이다. 다음은 약탈자가 약탈재산을 피지배자에게 재분배하는 ‘국가적 교환양식(B)’이다. 여기서 피지배자는 국가에 복종하고 그 대가로 보호를 받는 교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폐를 대가로 상품을 사고파는 ‘자본주의적 교환양식(C)’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회구성체이든 복수의 교환양식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는 상품교환양식(C)이 주요한 양식이다. 그런데 상품교환만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을 동시에 거느리고서야 가능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사회구성체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로 표현되어야 맞다. 자본 없이 지금의 ‘네이션=스테이트’는 없으며, ‘네이션=스테이트’ 없이는 지금과 같은 ‘자본’도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자본은 “네이션=스테이트”가 구성되고 난 후에야 가능했다.
 

그런데 고진은 여기에다 ‘교환양식 D’를 도입한다. 바로 ‘공산주의’다. 이 과정에서 놀랍게도 고진은 칸트를 ‘사회주의자’로서 호출한다.


호수원리에 기초한 세계시스템, 즉 세계공화국의 실현은 용이하지 않다. 교환양식 A, B, C는 집요하게 존속한다. 바꿔 말해, 공동체(네이션), 국가, 자본은 집요하게 존속한다. 아무리 생산력(인간과 자연의 관계)이 발전해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인 교환양식에서 유래하는 그와 같은 존재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존재한다면, 교환양식 D[=공산주의, 인용자] 또한 집요하게 존속한다. 그것은 아무리 부정하고 억압해도 좋든 싫든 회귀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칸트가 말하는 ‘규제적 이념’이란 그런 것이다.


─『세계사의 구조』, 434쪽


디에고 리베라, 「Frozen Assets」, 1931


칸트의 보편적인 도덕법칙은 “타자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다뤄라”라는 말로 표현된다. 이를 실현한 상태가 ‘목적의 나라’다. 여기서 ‘타자를 목적으로서 다룬다’는 것은 ‘타자를 수단이 아닌 자유로운 존재로 다룬다’(『세계사의 구조』, 333쪽)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타자의 존엄을 인정한다. 서로를 자유로운 상대로서 존엄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상호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는 사회주의(어소시에이셔니즘)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다. 결국 사회주의는 호수적 교환양식(A)을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소련식 국가나 복지국가처럼 단순히 재산을 재분배하는 정의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변주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부의 격차가 생기지 않는 교환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환양식 D(=공산주의)는 규제적 이념으로 존재한다. 실현될 리는 없지만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으로서의 이념. 사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말했던 ‘공산주의 운동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억압된 것의 회귀(=교환양식 A가 되돌아오는 것)’로서 매번 도래한다. 이 목소리는 작지만 현실에 실현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칸트가 말하는 ‘의무’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정·기·신 상호간의 중층성이 인정된다면, 신은 그냥 신이 아니고, 정·기의 신이다. 기도 정·신의 기이며, 정도 기·신의 정이다. 아울러 몸은 원래 천기가 형체를 갖춘 것이다. 결국 천기를 현실의 지평 위에서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려는 것,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될 때 정·신도 바뀌고, 신체도 바뀌는 것이다. 굳이 명명한다면 ‘신체의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세계사의 구조 - 10점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비(도서출판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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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궁금 2013.11.27 13:44 답글 | 수정/삭제 | ADDR

    약샘, 정기신의 중층성과 고진의 중층성이 어떻게 이어지는 건가요? 사회를 복수적인 문제로 보았다는게 이해가 잘 안 가서요. 정기신이 상호구성하는 논리와 고진이 말하는 교환양식 A,B,C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호구성, 공존하는 논리 사이의 유사성인가요?

    자유에 가까워지려는 운동으로서 '신체의 공산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도 생각하신게 있음 알려주세요..^^

    • 약선생 2013.11.27 17:42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ㅎㅎ 이렇게 고난도(?)의 질문을? ㅠㅠ 제가 진짜 C급이라,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될지,,,참 난감하네요. 그래도 시도해 보겠습니다. 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책을 갖고 있지 않아서 논거 인용이 부족한 상황이긴 하네요. 일단 쓰고 나중에라도 고치죠. 뭐 쩝.

      1. 제가 바라보고 싶은 점은 대상 구성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상동성이었습니다. 고진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사회구성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물론 마르크스가 ‘경제’의 관점에서 하부구조를 생산양식으로 살핀 것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마르크스가 상부구조로 구분해 놓았던 국가, 민족, 종교 등의 문제를 그의 관점(경제의 관점)으로 더 철저히 적용하고자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으로 관점 전환을 시도합니다. 대상 구성물을 교환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죠. 이렇게 되자, 사회구성체 내의 단위들이 중층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한층 명확해집니다. 접근방식의 변화가 구성물을 완전히 달리 보게 하는 것이겠죠.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통념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하부구조의 변혁을 일으키고, 이것이 상부구조를 바꾼다는 식으로 거칠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교환양식으로 보면 그게 뒤집힙니다. 고진은 절대왕정을 통해서 (원래 약하게 존재해 있던) 국가가 유럽 권역에 분산되어 있던 개별 종족들(공동체들)을 초월하는 힘으로 올라선다고 봅니다. 바로 그 국가라는 교환양식이 대거 성립되면서 국가 상호간에만 미미하게 있어왔던 상품교환이 확대되고, 결국 상품교환이 보편화되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가 가능해집니다. 결국 자본이 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들이 강성, 확대되면서 기존에 있던 상품교환이 확대되자, 기존과 다른 사회구성체가 구성되었다고 봅니다. 하나의 원인이나 단위가 다른 단위를 확정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사회구성체는 호수적 교환양식, 국가적 교환양식 그리고 상품 교환양식이 복수적으로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순수한 호수적 교환양식, 순수한 국가적 교환양식, 순수한 상품교환양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어느 하나가 지배적일 뿐이죠. 그런 지배 국면들이 시시각각 변주되어 왔을 뿐, 각 단위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상품교환이 현실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것은 환상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님이 말씀하신 것 중 ‘상호 공존’이라는 단어는 좀 조심스럽습니다. 상품교환과 호수교환은 서로를 훼손시키기도 하고, 서로를 위해 불가피하기도 하니까요. 씨족사회의 경우 부족 간 호수적 교환이 지배적입니다만, 상품교환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단지 증여-답례의 호수 교환이 상품교환의 보편화를 억제할 뿐입니다. 이런 경우는 ‘상호 공존’이라기보다는 호수적 교환에 의한 상품교환 ‘지배’이니까요. 그러나 유럽의 절대왕정 이후 국가가 확대되면서 호수적 교환이 억제되어, 상품교환이 억제의 사슬에서 풀립니다. 결국 ‘공존’이 아니라 ‘쟁투’라고 봐야 더 옳습니다. 즉 ‘상호 쟁투’에 의해 서로의 위치에 존재하게 되는 양태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의역학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결코 특정한 무엇 하나가 다른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음-양, 오-행이 서로를 꼬리를 물며 규정하고 규정당합니다. 상극에 의해 쟁투하기도 하고, 상생에 의해서 조응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이를 신체에 적용하여 대표적으로 설명한 것이 <동의보감 신형편> 처음에 나온 정기신입니다. 사실 정기신 말고도 <동의보감>에는 이런 시선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대상 구성물에 대한 중층적 인식은 동아시아에 대표적인 사고방식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특히 장중경의 ‘상한론’은 이런 시선에 의해 신체를 바라보는 대표적인 의술 같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들에서 고진의 생각과 의역학적 생각이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들을 연결하기 위해서 아주 많은 점검과 사례, 그 보이지 않는 차이들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은 당연히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고요.

      2. 다음 ‘신체의 공산주의’는 제가 명명했습니다. 고진은 교환양식D(=공산주의)를 호수적 교환양식의 고차원적 회귀로서 항상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운동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를 칸트의 규제적 이념과 같은 것으로 설명합니다. 고진은 그것이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를 하나의 운동으로 바라본 것과도 같다고 봅니다. 끊임없이 회귀하는 것으로서 운동인 것이죠. 저는 신체라는 구성물 자체가 천지의 기를 잠재화시키면서(억압하면서?) 구성된 것이라고 본다면, 천지의 기를 회복하려는 운동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천지의 기’는 완전히 회복할 수 없습니다. 회복한다는 것은 천지가 된다는 말이고, 사람으로서의 신체를 벗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운동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천지의 기를 고차원적으로 회복한다는 이념은 과연 무엇일까?” 저에겐 이것이 최근의 고민입니다. 거짓 질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영 아닌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건강’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생각하는 방식이나, 고진이 ‘교환양식D’를 생각하는 방식이나, 칸트가 ‘목적의 나라’를 생각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즉 운동으로써의 ‘신체 공산주의’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통념적인 ‘인체’ 차원에서 이뤄질 것 같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신체-사회를 생각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닐까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정치운동과 결합된 신체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 무척 거친. 물론 C급 철학자의 오류가 듬뿍 담긴 생각일겁니다. 그러나, 만일 의역학이 고진의 접근법과 상동적이라면, 또 그것이 맞다면 ‘신체의 공산주의’가 아주 불가능한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공부를 더 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전개하는 고진의 사고는 푸코나 들뢰즈, 데리다 계열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것도 많고, 또 더 진전되거나, 완전히 반대로 이야기되는 것도 많습니다(특히 국가에 대한 생각은 푸코와 완전히 다릅니다) 저도 이 이질성들을 즐기며 읽었습니다. 대단히 탁월한 책이라고 생각되며 정말 많이 배우고 싶은 사고입니다. 너무 짧은 시간 답변을 쓰게 되어서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질문 너무 고맙습니다. 많이 공부하게 되네요. 그럼...

    • 북드라망 2013.11.27 17:48 신고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정기신과 고진의 중층성은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글 속에서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선생님의 자세한 답변이 달렸네요! 궁금증이 풀리셨길 바랍니다! ^^

    • 담담 2013.11.27 18:10 수정/삭제

      약샘, 바쁘실텐데 친절한 답변 달아주셔서 감사..많이 배웠습니다.
      날 추운데 건강하세요, 아니 천지의 기운을 회복한 신체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