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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스퍼거는 귀여워] 사회성은 자란다

by 북드라망 2025. 7. 8.

사회성은 자란다

모로(문탁 네트워크)

 

일리치 약국과 로이약차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고, 약차를 손질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과 만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띠리링~’ 알람이 울린다. 일요일 오후 2시. 혹시나 잊어버릴까 알람까지 맞춰놨다. 감자가 처음으로 친구 집에 혼자 놀러 가는 날! 미리 빵집에 가서 친구와 같이 먹을 빵을 몇 가지 샀다. 이걸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옆에 있던 남편은 “가서 인사는 제대로 할까?” 라며 걱정한다. 그래 방문예절을 가르쳐야겠네.

“감자야, 집에 들어가면 먼저 친구 부모님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드려. 그리고 이 빵을 건네주면서 ‘엄마가 전해주라고 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할 수 있지? 가서 뛰지 말고, 말씀 잘 듣고, 맛있는 거도 많이 먹고 와.”


하, 불안하다. 엄마 없이 찾아간 다른 사람의 집에서 감자는 어떤 모습일까? 하지만 어쩔 수 있나. 감자를 보내놓고는 딱 생각을 끊었다. 문제가 있으면 전화가 오겠지 뭐. 그리곤 2시간 30분이 지나 친구 엄마에게 톡을 보냈다.

“감자는 잘 놀고 있나요?”

“넹 보내주신 빵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게임도 하고, 티비도 보고, 노래도 하고 잘 놀고 있어요. 다섯 시 정도까지 놀고 보낼게요.”


 그리곤 정말로 5시가 조금 지나자 돌아왔다. 싱글벙글한 얼굴로 신발을 벗자마자 재잘댄다.

“엄마, 00이랑 노는 건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요? 다음에 또 그 집에 놀러 가면 안 되나요?”


 
감자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아!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오랜 시간 동안 감자의 사회성은 더디게 자라왔다. 유치원 땐 다른 친구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말을 걸지도,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도 않았다. 혼자 어딘가에 빠져있거나, 어른들 사이에 끼어있는 게 다였다. 어른들이랑은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했는데, 또래들과는 그랬다.

나는 감자를 데리고 여기저기 남의 집을 수도 없이 방문했고, 우리 집에 초대했다. 조리원 동기 모임을 시작해서, 지역 모임, 어린이집 모임, 내 친구의 자녀들로 구성된 모임, 체험 학습 위주의 모임, 아스퍼거 모임, 영재 모임 등등 정말 수도 없이 많은 모임을 다녔다. 감자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겠다는 마음이, 작고 긴밀한 인간관계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이겼다.

그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아이들 사이에 끼지 못하는 감자를 보는 건 마음 아팠으며, 크고 작은 문제들도 생겼다. 울고불고 뒤집어지기는 일쑤고, 뛰어다니는 걸 쫓아다니느라 바빴고, 엄마들의 낯선 시선을 견뎌야 했다. 길게 이어지는 만남도 없었다. 감자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코로나 기간을 지나자 다른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다. 아이들은 더이상 엄마를 끼고 만나지 않았고, 자기들끼리 따로 연락했다. 이제 내가 애써서 만들 수 있는 친구 관계는 가능하지 않았다. 집 앞 놀이터에서 가끔 만나는 엄마들과 모임을 마지막으로 그런 만남은 끝났다.

사회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나 그 부분이 느린 자폐 아이들에게는 더더욱이나 그렇다. 사회성이 없으면 자기가 가진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사회성과 엄마의 안쓰러운 마음은 별개다. 그 속에는 엄마가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아이들과 비슷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걸 넘어서는 게 중요했다. 감자 스스로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다. 더이상 혼자 다니는 감자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게 되자, 자기의 속도대로 자라는 모습이 보였다.



친구라는 의미
그때 한 친구가 나타났다. 4, 5, 6학년 3년을 내리 같은 반이 된, 안경을 쓴 작고 똘똘한 친구. 자기보다 곱절은 큰 감자를 수호천사처럼 챙기는 친구다. 다정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애써줄 줄 아는 아이. 게다가 정말로 감자를 좋아하는 거 같았다. 뭔가가 잘 맞는 거다. 감자 말로는 ‘병맛 코드’가 서로 잘 맞는단다. 초등학생 남자아이들 특유의 이상한 유머, 지적해야 할지 말지, 어느 시점에 지적해야 할지 애매한 그런 코드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티니핑 노래를 개사한 ‘시진핑송’ 붕차카붕 노래를 개사한 ‘엉망징창송’. 듀오링고를 개사한 ‘따다링고 송’이 있다.

그 중 엉망진창송은 감자가 만들었는데 이렇다. ‘코끼리 방구는 냉장고에, 고래를 잡으며 너를 배신하는, 바퀴벌레 더듬이를 다운로드 한다. 아빠를 외계인한테 빼앗기고~’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자기가 좋아하는 문장들의 나열이다. 그게 재미있다고 둘이 깔깔댄다. 감자가 좋아하는 듀오링고 이야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같이 듀오링고 내에서 ‘XP 부스터’를 나누고, 프로필을 우스꽝스럽게 바꾼다. ‘과체중 밥을 너무 많이 먹음 나이 99999살’과 ‘팔로해주면 초코 우유 드려요’ 이런 식으로. 그래 친구는 그런 거다. 좋아하는 게 비슷해서 종일 별거 아닌 거로 낄낄대는 거.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같이 놀고 싶어 하는 거.

하지만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게 아니다. 감자는 모든 사람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라났다. 학교 친구들은 대답하지 않는 감자에게 긴 시간 동안 인사를 보내왔다. 지나가다 감자를 만나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작년에 공개수업을 갔을 때가 생각난다. 조금 미리 갔기 때문에, 복도에 잠시 서 있었다. 감자는 복도 옆 공간에 나와서 뱅글뱅글 뛰어다니고 있었다. 할 게 없을 때면 긴장을 풀기 위해서 늘 하는 행동이다. 나는 말릴 수 없는 걸 아니까 그냥 보고 있었다. 딱히 수업이 시작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선생님께서 자리에 들어와 앉으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복도로 나와서 감자를 찾았다. 엄마들이 오는 중요한 순간에 자리에 없는 ‘독특한 친구’를 가장 먼저 챙겼고, 그새 화장실로 가버린 감자를 찾아왔다. 나는 복도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 감자가 사랑을 받고 있구나. 많은 아이의 관심 속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한 명 한 명 불러서 햄버거라도 사주고 싶은, 엄마. 그러니까 나의 심정을 네가 알까?

사람들의 배려 속에서 감자는 성장했다. 어디서 뚝, 지금과 같은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디지만,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면봉이 필요하다며 자기가 혼자 다이소에 가서 사오겠다는 거다. 다이소는 많이 가봤지만, 혼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다이소는 물건을 찾기가 어렵지 않나. 미심쩍었지만 가보겠다길래 핸드폰이랑 카드를 쥐여주고 보냈는데, 금방 면봉을 사서 돌아왔다. 자기가 먹을 촉촉한 초코칩도 함께 사서. 면봉을 어떻게 찾았냐고 물어보자, 물건 정리하고 있는 분께 물어봤다는 거다. 와!


장애 여부를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하지만 성장에 따른 새로운 고민도 생긴다. 갑자기 감자를 사회에 내던져버린 기분이 든다. 함께 다니면서 몇몇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적도 많았다. 어느 식당에서는 ‘쟤 좀 이상한 애죠?’라고 이야기하는 것마저 들었다. 부산에서 엄마와 함께 밥을 먹을 때였는데, 엄마는 내가 속상할까봐 식당에서 나온 다음에야 그 이야기를 했다. 함께 있을 때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다. 곁에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번 일요일의 초대 전에도 고민을 많이 했다. 물론 누가 봐도 좀 다르다는 건 알겠지만, 친구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장애 여부를 밝힌 적은 없었다. 게다가 나 없이 그 집에 가면 그 특성이 더 많이 보일 텐데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 아이의 장애를 숨기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주제가 나오면 이야기를 하고, 조언도 얻는다. 하지만 그 정도와 범위는 언제나 고민거리다. 친구 엄마들을 일일이 만나가면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렇다고 말 안 하기도 그렇고…. 한참 고민하다 당일이 되었고, 에라 모르겠다 영 이상하다 싶으면 물어보겠지 싶어서 그냥 보냈다. 그리곤 혼자서 잘하고 돌아왔다. 그럼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일까.

아직 갈 길이 멀다. 감자는 얼마 전부터 인지 행동 치료를 배우는 센터에서 자기를 타자화시키는 훈련을 시작했다. 자기를 알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사회성의 시작이니까. 이제 첫발을 내디뎠으니 다음 걸음도 함께 걸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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