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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스퍼거는 귀여워] 홈스쿨링? 대안학교? 중학교 선택의 길목에서

by 북드라망 2025. 8. 12.

홈스쿨링? 대안학교? 중학교 선택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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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치 약국과 로이약차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고, 약차를 손질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과 만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한다고 느껴지는)의 순간들이 있다. 가벼운 선택이라고 해도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도대체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같은 작은 일이라도 말이다. 하루에도 크고 작은 선택들이 줄지어 이어지지만, 대부분은 마음속에서 어떤 합의에 이른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감각.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에 대한 이야기다.

(전에 글에서도 썼지만) 나의 소박한 소원은 감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거였다. 어린이집도 졸업하지 못했으니, 초등학교까지 졸업하지 못하면 ‘무졸’이 되는 건데 그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한다면야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상 중학교부터는 홈스쿨링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던 참이었다. 어찌 되었든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한다면,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소양은 갖추지 않았겠느냐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점프하듯이 흘러, 벌써 감자가 6학년이 되었다. 정말 화들짝 놀랄 일이다. 귀를 잡고 버둥거리며 울던 감자의 어린 시절이 내 안에 선명하다. 감자를 재우려고 아기띠로 안았을 때, 정수리에서 맡았던 젖비린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작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시끄럽게 울면서 뻗대던 몸이 생각난다. 그런데 이제 곧 중학생이라니.
  
사춘기의 중학생, 홈스쿨링이 가능할까
재작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감자가 학교를 더 다닐 수 없는 순간이 오겠구나. 그럼 내가 집에서 끼고 가르쳐야지. 다소 막막하게 느껴졌지만, 그때의 나는 ‘어쩌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 막막함이 현실이 되려고 하니, 거대한 난관이 드러났다. ‘사춘기’를 생각 못 했던 거다. 물론 감자는 어릴 때부터 내가 의도한 바를 절대로 한 번에 따라주지 않을 만큼 자기주장이 강했다. 하지만 어떤 부분은 나와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제까지 감자와 둘이 지내는 시간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둘 다 집돌이, 집순이라서 밖에 나가지 않아도 잘 지내고, 둘 다 수다스러워서 자기 전에 한 두 시간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파에 앉아서 같이 책을 읽기도 하고, 같이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했다. 같이 애니를 보면 좋은 이유가, 기억력이 좋은 감자가 나 대신에 히어로 이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걔 이름 뭐였지? 네모나고, 학교 선생님인데, 막 시멘트를 만들어내는…. 그런?” “시멘터스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얼마나 좋았었다고!

당연히 학교에 가는 날이 더 좋다. 말해 뭐해. 하지만 학교를 보내기 전의 입씨름과 중간중간 걸려오는 선생님들의 연락과 기타 모든 것들이 버거워질 때면 차라리 방학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을 하기 전에는 방학 때면 길게 한 달쯤 둘이서 해외여행을 갔다. 아니면 짧게는 몇 주씩 작은 소도시에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게 별로 어렵지 않았고, 둘만으로도 편안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예감은 올해에 들어서 확실해졌는데, 이제는 정말 ‘타인’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내가 만들고, 내가 낳고, 내가 기르던 꼬마가 어느 순간 나보다 훨씬 커지고 힘이 세졌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때의 눈빛까지 변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전에 없이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성이 끊어지기 전까지 절대로 누워있지 않는 아이였다. 24개월이 되자 딱 낮잠을 끊은 감자 아니었던가. 이런 모습들을 발견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로 감자랑 분리가 되는 걸까? 그건 너무 좋은 일이다. 바라던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홈스쿨링은 불가능하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열외가 되는 순간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근처에 있는 일반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원서만 넣으면 되니까. 게다가 올해부터는 특수반에 들어갔기 때문에, 중학교에서도 특수반에 진학할 수 있다. 작년에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 새로 특수반이 생기니 들어올 거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민했다. 특수반에서 감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현행 수학이나 국어, 영어 정도는 따라가기 때문에 따로 나머지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국어 시간에 글쓰기를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다. 하지만 과연 감자에게 무엇이 더 득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한참을 고민했다. 감자에게 특수반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며칠을 더 고민했다. 여러 지인이나 선생님들께도 여쭤봤었는데, 일단은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사실, 전 학년 통틀어서 특수반 학생이 6명이다. 고작 6명. 신설되는 학교여서 그렇지, 특수반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사를 하거나 먼 거리를 통학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그만큼 들어가기가 힘드니까.

그래서 일단 들어갔고, 지금 몇 달이 지났는데, 막상 들어가니 다시 고민이 생겼다. 특수교사와 담임교사, 그리고 위클래스 교사까지 감자를 도와주는 교사가 늘어난다는 건 분명 감사한 일이다. 체육 시간에 힘들어하는 운동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특수교사가 함께 참여해서 운동을 도와주었다. 급식시간에 ‘김치를 너무 많이 먹는다’라며 연락이 오고 난 후, 특수교사가 점심 내내 같이 밥을 먹어주시기도 했다. (김치를 많이 먹는다고 연락을 오는 게 조금 웃기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하지만 급식판 가득 산더미같이 김치‘만’ 받아오는 감자의 모습을 보면 전화가 올 만하다 싶다) 보육의 부분에서는 확실히 나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가 ‘안 해도 되는 아이’가 되는 일이었다. 이거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특수반에 배정되자 감자는 모든 일에서 열외가 되었다. 교실에서 감자의 자리는 선생님 바로 앞자리로 고정되었고, 수업시간에 ‘감자 빼고 다른 아이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자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서 자랑스레 이야기하기를, 수업시간에 자기가 안 해도 되는 것들이 많다고 했다. 안 해도 자기는 혼나지 않는다고. 그걸 듣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갔다.

실제로 6학년에 들어서서는 수업시간에 그저 앉아만 있다가 오는 것 같다. 개학한 지 두 달이나 되었지만, 이제껏 가져온 것이라고는 수학 1단원 시험지 2장뿐이었다. 알림장을 써오지도, 숙제를 받아오지도, 무언가가 쓰여 있는 교과서를 가져온 적도 없다.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수업시간의 많은 활동에도 열외가 되고, 숙제도 안 해도 되는 아이가 되었다. 이건 우리 아이만 단독으로 무언가를 더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학교에서의 위치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아이’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학교에 보내면야 어찌 되었든 오전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점심도 먹고 오고, 기본적인 수학, 영어, 국어 등을 배우고 오니 편하지 아니한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6학년 공부를 따라가기만 하면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학교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감자가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그 무료하고 긴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 이게 맞는 걸까.

 


어떤 중학교를 '선택'해야 할까
이게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중학교를 어떤 학교를 보내야 할지가 막막하다. 내가 활동하는 공간에는 이우학교 학부모들이 많다. 괜찮은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우학교 온라인 입시 설명회도 들어가 보았다. 물론 추첨에서 당첨되어야 보낼 수가 있는 거지만, 좋아 보이는 그 커리큘럼도 감자에게는 맞지 않아 보였다. 자기 주도적이고, 사회참여가 많은 학교인데 그 부분이 감자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도 발도르프니 공동육아니 이런 델 보내고 싶어서 노력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감자는 책 읽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삽으로 땅 파고 놀라고 했더니 경기를 일으키면서 싫어했다. 풀밭에 던져놓으면 도무지 어디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며 방황했다. 도대체 자기가 좋아하지 않은 그것들에 관한 관심을 늘려가는 것이 다른 아이들보다 곱절은 더 어렵다. 감자를 그런 식의 수업이 있는 대다수의 대안학교에는 보내진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감자를 장애에 특화된 대안학교를 보내기에도 어려워 보인다. 거기에 보내면 정서적 안정은 가질 수 있겠지만, 수업 편차가 너무 심했다. 한글 읽기부터 배워야 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감자를 국제학교에 보내자니, 이미 아이들의 수준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영유를 다니고, 오케스트라를 배우고, 공부로 달려온 아이들 사이에서 과연 적응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우리 감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고민 속에서 충북 괴산에 있는 기숙사 학교까지 알아보고 있다. 수학, 과학 위주의 개인 프로젝트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학교인데, 학년 구분도 없단다. 자기 진도대로 학습을 한다는 거다. 오히려 감자에게 이런 학교가 맞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먼 거리의 기숙 학교라는 점이 가장 걸린다. 내가 가까이에 없이 과연 생활할 수 있는가. 아니, 오히려 더 괜찮은 걸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선택 앞에서 일단 5월에 예정된 입시 설명회에 가보기로 했다. 가보면 또, 어떤 생각이 들겠지.

우리는 사실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그저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선택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아등바등 살아간다. 지금의 나도 무엇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는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어느 한쪽으로도 마음이 좁혀지지 않아서 초조하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를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 이게 과연 맞는가에 대한 고민. 그 와중에 이런 혼란한 글을 쓴다. 이러다 결국 보낼 학교가 없어서 홈스쿨링을 택할 수도 있겠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일반 중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겠지 싶다. 일단, 어떻게든 결론이 나기를 바라며 기회가 될 때마다 학교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묻고, 생각하고, 고민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결정이 되면, 또 그 나름대로의 장점을 믿고 잘해갈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니 다들 작은 힌트라도 떠오르면 나에게 말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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