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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스퍼거는 귀여워] 혼자 있고 싶은 마음

by 북드라망 2025. 6. 10.

혼자 있고 싶은 마음

 

글_모로

일리치 약국과 로이약차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고, 약차를 손질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과 만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나른하게 앉아서 털을 핥고 있는 고양이를 본다. 혀로 천천히 오른쪽 팔을 핥는다. 이어서 왼쪽 팔을 핥고, 왼쪽 다리로, 오른쪽 다리로 옮긴다. 길고 유연한, 꺼끌꺼끌한 고양이의 혀는 등 뒤쪽까지 닿는다. 유일하게 직접 닿지 않는 곳은 이마나 얼굴 위쪽. 고양이는 손을 핥고 그 손으로 꼼꼼히 얼굴을 닦고, 다시 핥기를 반복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쟤가 우리 집에서 제일 깨끗한 거 같아.’ 목욕하지 않아도,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털에는 햇볕 냄새가 난다.

 



올해로 11살인 우리 집 고양이 ‘마리’는 검정, 갈색, 흰색이 고르섞인 길고 아름다운 털을 가지고 있다. 3살 때 우리 집으로 입양되어서 줄곧 이 집에서 함께 산다. 몇 년 전부터 노묘 사료를 먹이고 있지만, 이 할머니 고양이의 털은 아직도 윤기가 흐르고, 코는 촉촉하고, 눈은 맑다. 고양이 눈을 본 적이 있을까? 여러 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금빛이면서 또는 오로라 빛 같은 다채로운 색을 가졌다. 그 안에는 길고 까만 동공이 세로로 그은 듯 벌어진다. 햇빛을 받으면 좁은 틈처럼 줄어드는 신기한 눈.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이 사랑스러운 고양이는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집사를 따라다니고, 몸을 단장한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빛을 따라서 손을 요리조리 움직이다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쭉 켜고, 곧 몸을 돌돌 말아서 움츠린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면 따라온다. 자다가 일어나 눈을 끔뻑거리며 화장실을 가는 나를 지켜준다. ‘앙~ 집사, 내가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볼일 보라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면 내 옆구리에 살며시 찾아온다. 내 팔 안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눕는다. 따끈따끈. 사람 체온보다 약간 높은, 부드러운 털이 느껴진다. 고양이는 현재만을 사는 동물이라고 한다. 인식의 단계에서 과거도, 미래도 없다고. 그저 지금 자고, 먹고, 단장하는 그것이 전부라고. 아, 나도 고양이가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두 달의 겨울방학?! 격렬하게 혼자 있고 싶다

유독 더 이런 마음이 요동치는 이유는, 지금이 바로 그 길고 긴, 초등학교 겨울방학 기간이기 때문이다. 겨울엔 장장 2달 남짓한 방학이 주어지는데, 학원도 안 다니고, 친구도 없는 감자는 지겹도록 집에 붙어있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 있으면 일단 먹성이 대단하므로, 삼시 세끼와 간식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가는 지경이다. 어찌나 잘 먹고 잘 크는지!

이 ‘인간 메뚜기떼’는 내가 잠시 나갔다 오면 그 새를 못 참아 집에 있는 서랍은 모조리 열어서 먹을 만한 것은 다 찾아 먹는다. 과자, 과일, 두유는 물론이고, 이런저런 먹을 게 없다 싶으면 김을 꺼내 먹던가, 그것도 없다 하면 얼음이라도 꺼내 씹어먹고 있으니 말 다 했지. 그러다 보니 3일에 한 번씩 장을 봐도 대체 먹을 게 없는 느낌이다. 비슷비슷한 반찬으로 돌려막기를 하면서, 각종 냉동식품과 배달 음식을 섞어가면서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정말로 강렬하게 혼자 있고 싶은 욕망이 든다.

출근해서 가지는 자유도, 방학 때는 여의치 않다. 일리치 약국에서 수, 목 이틀을 일하는데, 종일 혼자 집에 두기는 뭣해서 같이 출근을 한다. 오전에는 친구들에게 부탁해 보드게임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 등의 수업을 받게 하고, 점심을 함께 먹은 후에 집으로 보낸다. 집에 가면 혼자서 패드로 하는 학습지를 풀고, 듀오링고로 영어를 공부하고, 수학과 영어 숙제를 한다. 물론 금방 해버릴 분량이지만 미루고 미뤄서 겨우 한다. 그래도 하는 게 어디야.

집에가면 숙제를 하면서 생긴 모르는 부분을 같이 풀고, 집안을 정리하고, 다시 저녁을 할 시간이다. 그렇게 하루종일 사춘기 청소년이랑 씨름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탁 맥이 풀린다. 그럼 큰아들(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온다. 들어오는 소리부터 요란한 두 사람. 집 안은 늘 시끌벅적하다. 아…. 조용한 곳 어디 없나. 집에 내 책상도 없어서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책을 읽었는데, 이번엔 큰맘 먹고 대대적인 정리를 해서 조그마하게 책상 놓을 자리를 마련했다. 아직 완벽하게 세팅이 되지는 않았지만, 좋다. 왜 진작에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집 안에 작은 ‘숨숨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양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물어본다. “아이가 고양이를 좋아하나봐요?” 인터넷에는 이런 질문도 많다. “외동아이를 키우는데, 반려동물을 키우면 괜찮을까 고민이 돼요.” 혹은 “아이가 너무 원하는데 제가 자신이 없네요.” 등의 질문이 넘쳐난다. 하지만 여기엔 내가 해줄 말이 없다. 나는 나를 위해서 키우게 된 것이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굉장히 힘들었고, 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하릴없이 인터넷에서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쳐다보며 ‘나만 없어 고양이’를 외치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중 정말정말정말 고양이를 안 키우면 죽을 것 같다는 강렬한 욕망이 나를 자극했다. 어려서도 한 번도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던 나였다. 고양이를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불현듯 나를 사로잡은 그 욕망은 완전히 나를 지배했고, 그때부터 맹렬히 나만의 고양이를 찾아다녔다. 대표 고양이 카페 ‘고양이라서 다행이다’에서 입양 홍보 글을 보았고, 그렇게 마리와 만났다.

마리는 노르웨이 숲 고양이로, 품종묘다.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고양이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ㅎㅎㅎ) 예쁘고, 사랑스럽다. 이런 아이가, 사실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양 당시 3살) 아무도 입양 문의가 없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게다가 내가 4번째 주인이라는 것도. 머나먼 러시아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넘어와, 팻샵에서 오랜 시간 동안 전시되어 있었고, 새끼를 팔아 돈을 벌려는 첫 번째 주인에게 시달리다, 캣맘에게 눈에 띄어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갔다고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주인은 아파서, 세 번째 주인은 알러지가 심해서 결국 돌아돌아 나에게 왔다. 천상 공주로 보이는 마리가 이렇게 많은 시련을 겪었으리라곤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나는 고양이 구하고, 고양이는 다시 나를 구했다. 지금보다도 더 힘들던 시절, 알 수 없던 그 충동은 어쩌면 서로에게 도와달라는 신호였을까 싶다. 작은 존재에게 뭔가를 기대고 싶은 마음, 그 바람으로 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함께 하는 작은 하루가 그 안정적인 익숙함이 과거를 새로 만들고, 미래를 바꾸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컴퓨터 앞에 자리 잡고 앉아서 골골대며 나를 방해하고 있는 따뜻하고 작은 존재. 이런 것들이 빡빡한 하루를 지켜주는 힘이 된다. 나에게 숨을 공간이 된다.

 

 


혼자 있는 하루
이제 드디어 다음 주면 개학이다. 물론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는 새 학기가 되면 겪어야 할 어마어마한 산들이 기다리고 있다. 새 선생님과 연락하고, 감자의 상황을 공유하고, 아이를 적응시키고, 달래고, 윽박지르고, 그 모든 걸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렌다. 이제 6학년이라고 더이상 울음으로 자기표현을 하지 않고, 몇 달 전부터 가까운 곳은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녀오기도 하고, 공부도 정해진 대로 혼자 해보려고 하고, 혼자 씻고, 먹고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대신에 하루에도 서너 번씩 분노하고, 자기가 싫은 것에 대한 명백한 의사 표현을 하고, 엿가락처럼 몸이 늘어지고, 머리에 비듬이 생기고, 여드름이 올라오고, 냄새가 난다. 안아주려고 하면 까치발을 들어야 하고, 힘은 애당초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적어졌구나. 아무리 자라는 것이 느린 아이라고는 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때인가 하고.

혼자 있는 하루를 상상해본다. 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묶고, 따뜻한 창가에서 피아노를 쳐야지. 아침은 요거트에 그래놀라를 넣고, 바나나를 작게 썰어서 올리고 꿀을 두 바퀴 돌려서 먹어야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뭘 할까 하는 생각조차 없이 멍하게 앉아있어야지. 멍하게 앉아서 음악을 듣다가 티비를 보다가 까무룩 잠들어야지. 어제의 후회도 없이, 내일의 고민도 없이 혼자서도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시 감자가 돌아올 것이다.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아이가 자라날 거 같다. 그래도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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