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부탁해!
모로(문탁네트워크)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멀리서부터 감자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쿵쾅쿵쾅, 급하게 비번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가방을 집어 던지면서 들어온다. 무슨 일이지?
“엄마~ 엄마~ 내가 어디서 콘돔이라는 걸 봤는데, 생각해보니까 책에서 본 거 같더라고요?”
감자는 책장으로 달려가 책 하나를 꺼내 든다. 그러곤 나에게 바짝 다가와서 그림을 보여준다. 내가 얼마 전에 사준 성교육 책 비스무리한거다.
“엄마, 콘돔은 얇은 고무 주머니처럼 생겼는데, 이걸 음경에 덧씌우면 정자가 여성의 질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데요. 가장 간편한 피임 도구라고 적혀있는데요?”
그으래…. 그렇지. 문자 그대로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감자. 하지만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이야기하는 거야?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만나는지는 안다니? 그나저나 이 자식 도대체 뭘 본 거야?
감자, 사춘기에 들어서다
감자는 5학년, 이제 키가 나를 뛰어넘다 못해 한 뼘 정도는 훌쩍 커버린 청소년이다. 신발도 270을 신는다. 거기에다가 목소리가 쩍쩍 갈라지며 변성기 초입에 들어섰고, 얼마 전부터 겨드랑이에서도 시큼한 냄새가 난다.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거지?
사실 처음에 사춘기의 징조를 발견했을 땐, 기분이 좋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 어떤 발달도 다른 아이들보다 느렸던 탓에 얘가 사춘기가 오려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기려나 싶었다. 하지만 사춘기의 징조가 뚜렷하게 나타난 지금까지도 생활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샤워하고 나와 빨가벗고 돌아다녀, 제발 팬티부터 입으라고 해도 건성이다. 게다가 아직도 안방에는 퀸 침대에 싱글 침대를 붙여놓은 상태다. 영원히 여기서 엄마랑 같이 잘 거라고 말하는 감자. 여기로 오라고 부르면 그 큰 덩치로 내 무릎 위에 앉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금세 눈물을 보인다. 몸은 커가는데 마음은 아직도 몇 발짝 뒤처진 상태.
그러면서도 사춘기에 들어서니,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아진 모양이다. 나 역시 그 유명한 물음 “엄마, 아기는 어떻게 생기나요?”에 대한 질문이 두려웠다. 물론 탐구심이 강한 감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혼자 생각을 해보았나 보다. 어느 날에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기가 태어나려면 결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기가 두 명 있는 집은 그러면 어떡하나요? 결혼을 두 번 해야 하는 걸까요?”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 눈동자. 나는 결혼을 안 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 이혼 이야기, 동성연애 이야기, 결혼 전에 연애만 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 뭐 기타 등등은 다 이야기했지만, 왠지 단 한 가지 이야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기가 어떻게 생기냐고! 섹스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거냐고! 왜 말을 못 하냔 말이야.
이렇게 된 이유는 내가 소심해서가 아니다. 나 역시 성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경상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엄마 아빠의 입에서 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생리했을 때, 조용히 생리대를 사준 정도? 요즘 하는 생리 파티니 뭐니 이런 것도 없었고, 섹스에 관한 설명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나에게 성교육이란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H.O.T의 팬픽이 다였다. 그 시절엔 좋아하는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팬픽이 유행이었다. 멤버끼리 서로 사귀는 이야기니 일종의 브로맨스인 셈인데, 물론 야했다. 나는 학창시절에 친구들끼리 야동 같은 걸 돌려보거나 접했던 적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걸 팬픽에서 배웠다. 아주 걸쭉한 명작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작가들은 지금 다 무얼 하고 있으려나? (ㅎㅎ)
아무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그것도 장애가 있는 남자아이의 성교육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 말이다. 나는 은근슬쩍 남편에게로 토스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도움이 되지 않는, 덩치 큰 남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저절로 알게 돼. 냅둬.”
콱 마. 증말.
아이들에게 부딪혀서 알아갈 기회가 있을까?
사실 장애아이들에게 성이란 더 민감한 주제다. 평소에도 서툰 의사 표현과 과한 동작으로 주목을 받는 감자는 더군다나 덩치가 너무 큰 탓에 걱정이 되었다. 집에서는 무의식적으로 고추를 만지는 모습이 보이는데, 밖에서도 그러지 않을까.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간의 거리를 조절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괜찮을까. 보통은 의식적으로 사람들간의 거리를 띄우기 마련인데, 감자에게 그런 세밀함은 없다. 그냥 내가 저기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 이런 점들이 오해를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생각날 때마다 단도리하고 있지만, 한 두 번에 바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전문가에게 문의해야 했다. 나는 ‘사이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자폐 자조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 (다음에 이 모임에 관해서도 쓸 예정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어떻게 함께 관계 맺고 사는지 궁금하신 분들, 기대 바람) 거기에서 아이들 성교육을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었는데, 다행히 이 근처에 사는 전문가분을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
고기동에 있는 밤토실 도서관에서 몇몇 부모들과 선생님이 만났다. 다양한 고민이 오가고, 밀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적어놓은 수첩을 꺼내보니, 우리가 이야기했던 주제는 거리조절, 성기 만지기, 성적 언어, 터치 문제 등이었다. 크게 묶는다면 우리 집에선 괜찮은데 문밖에 나가서도 괜찮은가 하는 이야기였다.
모임을 진행한 선생님은 먼저 사춘기의 발달 상태를 이야기했다. 자라나면서 사회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게 된다. 그때가 보통 7세쯤으로, 사회화된 젠더가 만들어진다. 부여되는 성별을 인식하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칭찬받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젠더를 인식하고 나서는, 기질적으로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험을 통해 배워나간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요즘엔 아이들이 싸우는 일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 아이들은 사회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딪힐 기회가 없다.
나 역시 과보호 성향의 엄마다. 감자가 다른 친구들과 싸워본 적이 있었을까. 아기 때는 서로 투닥거리면서 몇 대 맞아본 기억은 있지만, 내가 아이를 그 무리에서 빼 오는 방식으로 회피했기 때문에 싸움이라고 할 것까지의 에피소드는 없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네를 타다가 다른 친구를 친다던지의 상황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가 사과하느라 바빴지 감자 스스로 어떠한 해결은 하지 못했던 거 같다. 초등학교에 들어서자, 감자는 친구들과 따로 노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싸울 기회 자체가 없었다. 선생님은 안 싸우는 것 또한 회피라고 말했다. 싸우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갈등 조절을 배워나갈 수 있을까.
장애아이의 성에 더 예민한 사회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는 언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감자도 욕은 하지 않지만, 가끔 유튜버들이 이야기하는 비속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엄마들도 그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는데, 선생님은 그럴 땐 자기감정이 잘 정리가 안 되는 건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쟤가 지금 뭔가를 표현하기가 힘들구나하고. 욕하는 아이는 드러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아이일 수 있다. 그 마음을 먼저 읽어줘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런 후 강하고 멋진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다 안다고 이야기해주면서, 욕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핫한 주제인 성기 만지기로 넘어갔다. 나 역시 그 부분이 가장 고민인데, 이걸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은 평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남자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이 성기를 만진다는 사실을 알아두라고 했다. 엄마도 여자이기 때문에 발기에 대해선 잘 모른다는 것이 어렵다. 보통의 어른 남자들도 집에서 혼자 티비를 보거나 할 때 무의식적으로 성기를 만지는 경우가 있지 않냐며. 다만 밖에서는 행동을 제어할 뿐이라고 말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라 조절의 방식을 가르쳐줘야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성기를 만지는 것이 목격되면 그 주제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던 지가 좋다고 했다. “간식 먹을래?” 아니면 “오늘 숙제 없어?”라는 식으로 살짝 전환을 시켜주는 것이다.
그날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비장애 아이들도 많이 만지고, 성장의 자연스러운 부분인데 장애 때문에 레이더를 더 세우게 된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장애아이들에게 너무 엄격하다며, 모든 걸 하나하나 지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일상생활의 일은 놓아두는 게 낫다고. 생각해야 멈출 수 있으므로, 일일이 지도하는 것보다 자신의 행동 말고 다른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개입해 버리는 것, 성격 급한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도를 꼭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건강상의 위험이 있을 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했을 때다. 그러면서도 지도라는 것은 하지마의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잘해야 할까의 문제여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서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는 아이를 지도 할 때, “소리 지르지 마”가 아니라 지루한 걸 없애줘야 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혼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늘어나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 ‘해야 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 해야 한다.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고, 몰랐던 부분도 있었고, 고쳐야 할 부분도 있었다. 성교육 역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부분도 있는데, 내가 너무 억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나 싶다. 남들 앞에서 고추를 만지면 안 돼. 물론 그렇다. 하지만 하지 말라는 방식 대신에 어떤 다른 방법들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다.
감자는 달에 갈 수 있을까?
얼마 전부터 부쩍 여자친구 이야기를 한다.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데, 자기는 반드시 결혼할 거란다. 그래서 달로 신혼여행을 갈 생각이라는데, 그냥 그게 좋을 거 같단다. 아내랑 같이 가면 멋지지 않겠냐고. 또 며칠 전에는 타로를 보고 싶다며, 자기가 고추 만지는 걸 고치면 여자친구가 생길 수 있을지 봐달란다. (ㅎㅎ)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는데 또 여자친구 타령이다. 감자 생각에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느껴지는 걸까? 이 시대의 보수적인 남자일세. 요새 결혼이란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해도 요지부동이다. 자기는 꼭 결혼을 할 거라나? 그래 그러면 너무 좋지. 너무 좋을 거 같아.
그 날을 상상해본다. 날이 좋은 날, 야외 결혼식. 정장을 입은 감자가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있다. 하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있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멍하니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 영원히 남을 한 장면을 꾹꾹 담아낸다. “엄마, 나 달에 신혼여행을 다녀올게요.” 네가 이렇게 컸구나.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이렇게 자라났구나. 그리고 함께할 사람이 생겼구나. 그래 그러면 됐지. 그거면 됐어.
'아스퍼거는 귀여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스퍼거는 귀여워] ADHD약을 먹여? 말아? (1) | 2025.02.11 |
---|---|
[아스퍼거는 귀여워] 촌철살인 감자 (0) | 2025.01.14 |
[아스퍼거는 귀여워] 엄마의 우울 (2) | 2024.12.13 |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 팬클럽 (0) | 2024.11.05 |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의 똥 연대기 (0) | 2024.10.16 |
[아스퍼거는 귀여워] 내 소원은 초(등학교)졸(업) 시키기?! (0) | 2024.09.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