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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스퍼거는 귀여워] 어둠의 속도

by 북드라망 2025. 4. 15.

어둠의 속도

 

모로(문탁네트워크)

 

올해부터 일리치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며, 공부와 삶이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항상 궁리중.

 

 

 

 

루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루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루는 패턴을 읽고, 파악하는 것을 좋아한다. 루는 정직하다. 루는 매일 매일 정해진 일과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루는 우주를 사랑하고,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 엘리자베스 문의 sf소설 <어둠의 속도>의 주인공인 루는 자폐인이다. 소설의 배경은 어릴 때 초기 개입으로 대부분의 유전병을 없앨 수 있는 시대다. 태어났거나, 아니면 뱃속에 있을 때 발견된 질병들은 적절한 개입을 통해 ‘정상화’된다. 물론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은 그렇게 만들 수가 없다. 루가 태어나고 자폐에 대한 치료가 개발되었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폐인 마지막 세대다. 

하지만 루는 불행하지 않다.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해 간다. 대기업에서 적절한 배려를 받으며 _ 개인 사무실, 운동 공간, 주차 공간 _ 프로그램의 패턴 오류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루가 속한 팀에는 다른 자폐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모두 회사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조금은 독특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며, 가끔 모여서 피자를 먹고, 헤어질 때는 (물론)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함께 피자를 먹고 싶지 않을 땐, 그저 ‘오늘 모임은 가지 않을게’라는 말로 대신한다. 

루는 펜싱도 배운다. 패턴을 읽는 능력이 탁월한 그는 펜싱 경기에서도 사람들의 습관과 패턴을 파악해서 경기한다. 지역 토너먼트에 나가 실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짝사랑하는 여자도 있다. 같이 펜싱을 배우는 마저리의 눈은 우주같이 반짝인다. 루는 그 독특하고 아름다운 색을 사랑한다. 루는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사람들의 패턴을 알고, 한 사람이 가진 다른 면을 사랑한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아는가
글을 읽는 내내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어떻게 나는 사람들이 언어로 내뱉은 말 이면의 속 뜻 _ 눈빛, 느낌, 뉘앙스 _을 이해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루와는 반대로 예민한 편이므로, 말하지 않아도 너무 많은 정보가 인식된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 아는 것일까.

 “그가 어떻게 그처럼 확신하는지 궁금하다. 루시아는 최근 3개월 사이에 무척 자주 화를 냈다. 루시아가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톰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120p)"

 

생각해 본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까. 눈빛과 제스처로 알 수 있나. 아니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말로 하지 않는 경우에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일까?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자폐인의 시각으로 써져있다는 점이다. 글을 읽어가면서 처음에는 그의 문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나도 ‘루 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루는 마저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알지만, 그것이 피자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지, 다른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과 같은 건지 도저히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나는 아는가.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관심인지, 시기인지, 사랑인지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도 정확히 모르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정상인’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내가 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그게 과연 정말 나은 것일까?
  

보통이라는 것

“그래도 슬프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안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는다. 같은 때 같은 말을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 잘 지내요. 괜찮아요. 잘 자요. 부탁합니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아뇨, 사양할게요. 당장은 아니에요. 교통 법규를 지킨다. 규칙을 따른다. 아파트에 평범한 가구를 놓고, 내 별난 음악을 아주 조용히 틀거나 헤드폰으로 듣는다. 그래도 부족하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데도, 진짜 사람들은 내가 변화하기를, 그들과 같아지기를 바란다.(63p)”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회사에 새로 들어온 상사는 ‘효율적이지 않은’ 루의 그룹이 마음에 안든다. 그들이 없으면 예산을 ‘획기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배려 역시 ‘과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뇌의 자폐 인자를 제거해 준다는 임상실험에 참여하도록 강요한다. 응하지 않으면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고 협박하면서. 

루는 자신이 그 수술을 받고 싶은지, 그 수술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생물학을 공부한다. 의외로 자신이 이 분야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_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_ 일과 다른 일을 하면서도 살 수 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부터 가지고 있던 꿈 _ 우주에 가고 싶다는 꿈_을 떠올리며, 자폐인으로써는 실현될 수 없는 그 꿈을 생각한다.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세상의 온갖 방해 _ 임상 실험의 강요, 자동차 테러, 친구인 줄 알았던 사람의 분노에 가득찬 공격_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루를 돕는다. 루의 팀장은 강제 임상 실험을 당할 위기인 자폐인들을 걱정하고, 그들이 받는 사회적 부당함에 분노한다. 펜싱 코치인 톰은 루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을 제공하고, 따뜻하게 조언한다.  그러나, 루는 결국 회사의 강압이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수술을 결정한다. 또 다른 자신이 되기 위해서, 남들과 같은 감각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기 때문에.

꽤나 두꺼운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루와 마음이 동화되었다. 그가 가진 천재성과 남다른 감수성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루가 이런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정말로 반대했다. “안돼, 루 그러지 마! 넌 정말 매력적이란 말이야!” 하지만 소설 속 루는 나의 외침을 들을 리가 없고, 결국 수술을 하고 자신의 예전 모습을 잃었다.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 고유의 걸음걸이, 말투, 생각, 그리고 마저리에 대한 사랑까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고민하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수많은 다른 가능성에 놓인, 새로운 모습을 얻었다. 이 두 가지의 모습 중 무엇이 더 좋은지 내가 과연 판단할 수 있을까. 

 
어둠에도 속도가 있을까
소설을 쓴 엘리자베스 문은 실제로 자폐인 아들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소설을 쓸 당시 자신의 아들이 17살 정도 되었으며, 루와는 같으면서도 다른 _ 좀 더 활발하고 평범한 _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들을 키우며 일주일에 7일, 일 년에 365일을 붙어있으면서 느낀 고단함을 이야기했지만, 그것과 동시에 행복했던 순간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말미에 이야기한다.

 “정말로 이런 수술이 있다면, 그때는 아들에게 선택하게 할 거예요.”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해본다. 감자의 특이한 말투, 눈맞춤의 어려움, 자기 관심사에 매몰된 대화, 휘적거리는 걸음걸이 등 많은 것들이 ‘정상인’ 사람들과 다르다. 대신에 세상은 왜 그런지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 _ 왜 사랑의 매예요? 왜 단감은 단감이고 땡감은 뭐예요? 왜 베트남어는 다이어크리틱이 있나요? 글자 위에 왜 성조가 붙어있는 거예요? 하루에도 수십 가지 일상에 의문을 가진다. 그 속에는 ‘정상인’들이 결코 볼 수 없는 다른 패턴이 있다. 그 독특함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감자가 더 편안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것이 아닐까.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를지 몰라. 빛이 있는 곳에 늘 어둠이 있어야 한다면, 어둠이 빛보다 먼저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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