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약을 먹여? 말아?
자폐 스펙트럼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여러 질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감자 역시 아스퍼거를 진단받았지만, 그 진단명 밑에는 ADHD와 틱도 포함된다. 사회성뿐만 아니라 집중력의 문제와 몸의 조절 부분에도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필요하다면 약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 아이에게 정신과 약을 먹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고민만 반복하던 중,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첫 번째 시도를 했다. 해보지도 않고 고민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자폐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쓰인다고 알려진 아빌리파이. 부작용도 비교적 적고, 안전하다고 하는데, 제일 작은 단위인 2mg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1mg도 나옴)이 약은 도파민을 조절해주는 약인데, 내 생각에도 감자는 도파민이 과다 분출되는 스타일이다. 한 번 흥분하면 멈추기가 어렵고, 오히려 너무 즐거울 때 틱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의사 선생님은 이 약이 뾰족한 부분들을 조금 둥글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자기 전에 1번 먹는 거로 시작했는데, 한 3일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이 든다 해도 중간 중간에 여러 번 깨어났다.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작용은 다행히도 3일 정도 지나자 사라졌는데, 대신에 이젠 먹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잠드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내심 좋았다. 오히려 잠을 잘 자니 더 나은 느낌? 하지만 문제는 살이었다! 원래 키는 크지만 조금 마른 체형이었는데, 이 약을 먹고 한 달에 일 킬로씩 쭉쭉 찌는 게 아닌가. 끝이 있을 줄 알았지만 먹이는 내내 달마다 살이 쪘다. 게다가 발음도 어눌해지고 전체적으로 좀 굼뜬 느낌? 이것이 원래 어린이들의 일반적인 모습인지, 감자가 그동안 과도하게 흥분된 상태였던 건지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아빌리파이에 조금 적응하자 ADHD의 대표적인 약 중 하나인 메디키넷을 함께 시도했다.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이 약은 도파민을 증가시킨단다. 어라? 낮췄는데 다시 증가시키는 약이라고? 약간 의아한 상태였지만, 같이 먹이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먹였다. 하지만 먹자마자 틱 증상이 심해지는 게 아닌가!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틱 줄이는 것 가운데 선택을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틱은 본인에게는 큰 타격이 없는 거 같지만 보고 있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턱을 돌리고, 눈을 깜빡이고, 안면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
의사 선생님과 다시 상담했더니, 그러면 그 두 개 약과 동시에 틱을 줄여주는 다른 약물을 같이 써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아.. 무엇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게 무너지고, 그걸 막기 위해 다른 약물을 먹으면, 또 다른 부작용이 나올 것이며.. 그 부작용을 막기 위해 또 약을 쓰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개인병원이라고 해도 유명한 선생님은 최소한 3주 간격으로 의사를 볼 수밖에 없었다. 매주 가서 세밀하게 물어보고 싶은데 그게 안 되고, 결국 결정은 내가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정신과 약에 대해 위키백과보다 무엇을 더 잘 알 수 있을까.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아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약을 먹는 장점 - 단점 = 0 ??
그로부터 2년 뒤, 나는 한 번 더 정신과 약에 도전했다. 학교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혹시 내가 아주 쉬운 길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들었기 때문이다. 약은 여러 종류고 사람은 개개인의 특성이 다 달라서 맞는 약을 찾는 게 힘들지만, 맞는 약을 찾게 되면 손쉽게(?) 문제점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했다. 그래, 저번에 겁이 나서 너무 쉽게 포기했어. 끝까지 해보고 안되는 건지, 되는 건지 알아내자!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아는 사람에게 추천받아, 이 근방에서 가장 약을 답답할 만큼 천천히, 세밀하게 쓴다는 병원을 찾아갔다. 앞선 약의 부작용들을 이야기하고, 이번엔 노르에피네프린 계열의 아토목신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건 앞에서 사용한 1차 약 메디키넷보다 즉각적인 효과는 떨어지지만, 부작용이 적고, 은은하게 효과를 발휘한다고 알려진 약이다. 한 5개월 정도 먹였다. 이건 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괜찮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날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엄청 분노 폭발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춘기에 들어서서 그런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약을 먹여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모습들을 보이던 중,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감자가 요즘 들어서 학교에서 안 보이던 모습을 보이네요.”
선생님 말씀인즉, 학교에서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거다. 물론 소란하고 돌아다니고 지시수행을 잘 안 따르는 아이지만, 내면에 몰두해있는 스타일이었는데, 폭력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약 때문인가? 오히려 침착하게 만들어 준다는 이 약의 부작용 중, 자살에 대한 충동과 공격적인 행동 및 감정 기복이 있을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헉! 정말 생각해보니 약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내리겠다며 소리를 지르며 아파트 창문을 연 적이 있었다. 그땐 크게 반응하면 더 안 좋을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 달랬던 일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위험하다. 집중력은 요만큼도 좋아지지 않고, 충동성만 늘어나다니... 감자는 약물에 아주아주 민감한 스타일이었던 거다.
게다가 틱이 있어서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조절하면 근육이 이리저리 튀는 스타일이었다. 2차 약을 포기하고 다음은 3차 약. 마지막까지 해보자는 느낌으로 캡베이를 0.1mg부터 시작했다. 정말 작은 용량에도 감자는 너무 졸려 하고 몸이 축 처지는 증상을 보였다. 이건 정말 먹여도 안 먹여도 별다른 반응이 오지 않았는데, 좀 피곤해만 하니 먹여야 하는 걸까. 별로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오질 않자 결국 의사 선생님은, 약을 먹이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더 쓸 수 있는 약은 우울증약 계열인데 어린이에게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그렇게 기나긴 약과의 싸움이 실패로 끝났다.
결국, 실패하고 나니 좋지도 않은 약을 이러려고 먹였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겠지. 모든 것은 우리 아이에게 적용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는 한 번 시도해 봐야 했을 일이고,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도전해 볼지도 모른다. 그만큼 생의 중간 중간에 절박해지는 순간이 온다.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처음의 결심이 흔들리고, 내가 뭘 놓치고 있지 않나, 체크하는 마음이 끼어든다. 그래, 쉽게 쉽게 가는 법이라곤 없다. 잘 맞는 약이 있었다면 너무 좋았겠지만, 어쩌겠는가. 지름길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아이를 키우는데 말이다.
더욱이 요새는 본격 사춘기에 들어서서 아주 까칠한 감자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미운 적은 별로 없었는데, 요새는 울컥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나한테 도대체 왜 이래? 예쁘게 말해주지 않는 감자가 가끔 밉다. (다음 편에는 남자로 성장하는 감자의 이차 성장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많관부!)
1. 베라르 AIT
전체 청각 세포를 고르게 자극하여 왜곡된 청각을 바로잡아 줌으로써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학습장애, 언어장애, 우울증, 자폐증 등)의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일종의 마사지 혹은 물리치료 요법. 헤드폰으로 변형된 음악을 듣는 건데, 하루에 30분씩 2번, 10일 동안 연속으로 들어야 한다.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핸드폰이나 책도 보지 말고, 잠도 잘 수 없는데, 감자는 그 점을 가장 힘들어했다. 그냥 앉아서 이상한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고역일 수밖에. 이상하고, 먼가 수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청각에 예민한 아이라면 한 번쯤 해보기에 좋은 거 같다. 다른 사람이 안 듣는 음역의 소리까지 듣는 아이들의 소리를 교정해 주는 느낌이었다. 치료를 받은 후에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잘 듣는 것도 같고, 발음이 조금 좋아진 것도 같은 건 기분 탓인가?
2.뉴로피드백
‘집중할 때 나타나는 특수한 뇌파를 두피에서 측정하여 그 신호를 실시간으로 화면이나 소리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훈련을 통해 그 신호를 늘려 집중력에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뉴로피드백의 역사(?)는 오래되었는데, ADHD 치료로도 많이 쓰이는 거 같다. 머리에 전극을 붙이고 모니터 화면을 통해 게임 같은 걸 하는데, 청각과 시각 등을 훈련하는 느낌이다. 한 3개월 정도 진행했는데,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 치료를 받고 나서 줄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감자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근 2년이 넘게 줄넘기 1개를 뛰지 못했다. 이 간단하게만 보이는 줄넘기도 줄을 돌리고, 줄을 발 가까이에 내려오는 때에 박자를 맞춰서 뛰어넘어야 하는 손과 발의 협응 능력이 필요하다. 그 부분이 어려운 감자는, 나중에 가서는 줄넘기가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줄넘기를 할 수 있게 되다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뭔가 뒤뚱뒤뚱하는 뇌를 박자를 맞춰주는 느낌이랄까?
3.메타버스 사회성 치료
이거는 임상시험에 참여한 경우다. 메타버스 상에서 캐릭터들을 가지고 사회성 훈련을 하는 건데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교실, 운동장 등으로 나누어진 공간에서 가상의 캐릭터를 가지고 함께 규칙을 정해 게임을 하고, 착석 훈련을 하고, 친구들에게 대화하는 법 등을 세밀하게 배웠다. 지시를 잘 따르면 선생님이 포인트를 제공하는데, 그걸로 메타버스 내의 자기 방을 꾸미거나, 옷을 살 수도 있었다. 메타버스 속 친구들과도 꽤 친해졌는데, 실제로 만나는 것보다 컴퓨터 안의 친구를 만나는데 더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수업이 끝날 때 무척이나 아쉬워했고 며칠을 울었다. 정식으로 사회성 훈련 메타버스가 생기면 다시 참여하고 싶다.
이것 외에도 한약도 주기별로 꾸준하게 먹이고, 영양제에 뭐에, 안 그래도 키가 큰데, 좋다는 건 죄다 다 먹이고 있다. 단체 생활이 어려워 학원은 못 다니지만, 1:1로 필요한 몇몇 수업을 한다. 거기에 일주일에 2번, 버스에 지하철을 갈아타고 센터에 가서 사회성 수업과 인지행동치료를 받는다. 감자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수업을 해주기 위해서 언제나 고민이다. 실패도 많이 했고, 때때로 성공하기도 하지만, 또다시 ‘속는 셈 치고’ 여러가지에 도전해본다.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렵고도 어려운 육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내가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하고. 내가 생각하는 ‘정상'의 아이는 어떤 것일까. 나는 감자가 어떤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걸까. 감자가 좀 더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편하고 싶은 건 나일까. 감자일까.
글_모로(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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