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부모님과 베트남에 간 이야기
베트남에 갔다. 한국인 관광객이 거의 90%는 될 거 같은, 일명 경기도 냐짱.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지만 이번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왜냐하면 양가 가족, 즉 나의 엄마, 아빠, 남편의 엄마, 아빠와 감자의 엄마(나) 아빠(남편), 양가 3대가 같이 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양가 어른들이 친하게 지낸다. 매년 여름 휴가도 같이 보내고, 가을이면 함께 김장도 한다. 어찌 모든 게 좋을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평균 이상으로는 가족관계가 평온한 편이다. 나이도 비슷하고 다들 술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처음부터 어렵지 않은 관계였다. 그래서 차라리 나는 양가 부모님을 함께 보는 게 편하다. 뭐, 한방에 효도를 해치우는 기분이랄까.
이러 저러한 이유로 10년 전에 우리 아빠 환갑을 기점으로 다 같이 태국 여행을 갔었다. 감자가 24개월 무렵이었는데, 아이가 어려서 정신이 좀 없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기억이었다. 손이 많으니 아이를 봐줄 사람도 많고, 혼자 끙끙대며 육아하는 그것보다는 훨신 마음이 편했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다들 참 젊고 즐거웠다 싶었다.
환갑 여행도 벌써 10년 전. 재작년에 우리 아빠의 칠순을 시작으로 2년마다 어른들의 칠순이 줄줄이 이어졌고, 이번에도 모든 칠순을 퉁치려는 마음으로 베트남 여행을 기획했다. 하지만... 이미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지 않았나. 그 사이에 양가 어른들은 무릎이며 허리며 안 아픈 곳이 없어졌고, 나 또한 나이를 먹어서 열정이 사라졌다.
준비하는 동안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시간도 안 맞고, 뭐도 안 맞고, 숙소도 복잡하고 블라블라 무엇하나 쉽지 않았다. 베트남은 우기라고 하지, 나이가 있으셔서 많이 걷지 않는 동선을 만들려고 하니 차도 빌려야 하고, 숙소도 좋은 곳을 해야 하고... 괜히 가자고 해서 어디 아프신 건 아닐지.. 걱정이 차올라서 위가 쑤셨다. 더군다나 이 여행에서 ‘나는 과연 즐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복잡한 심경으로 밤 비행기를 타고 냐짱 공항에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작은 냐짱 공항에서 30분 먼저 도착한 우리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마주치자 (우리 부모님은 부산에 사셔서 따로 비행기를 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친근한 행복이 밀려왔다. 수화물 찾는 곳에 꽤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나는 엄마 얼굴을 1초 만에 찾아냈다. 다들 어디 계시지? 할 때 나는 자신 있게 성큼성큼 엄마한테 달려갔지. 부모님을 보고, 밀린 안부를 묻고 밖으로 나가자,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고, 그제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이번 여행이 괜찮겠다고.
그때부터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우리 집 ESTJ인 남편이 짠 여행 계획은 완벽했다. 남편은 모두 함께 지낼 수 있는 크고 고풍스러운 풀빌라를 예약했고, 다소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으나(그리스 로마풍) 부모님들의 만족을 얻어냈다. 일정 중간 중간에 엑티비티 체험도 넣고, 사막도 가고, 양도 보고, 사원에도 갔다. 그리고 저녁이면 흥청망청 먹고 마셨다. 매일 비 예보가 있었지만, 비가 거의 오지 않아서 다니기에 너무 좋았다. 10년 동안 늙은 부모님들은 한 분은 양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시고, 한 분은 임플란트를 앞두고 치아 발치를 하셨으며, 한 분은 감기에 들어 약을 드시고, 한 분은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도수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그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더군다나 많이 늙어버린 어른들을 보니, 이제 다시는 이렇게 함께 하는 해외여행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소중했다.
바깥에서 마주한 장애의 얼굴
하지만 문제는 감자였다. 감자는 빠듯한 일정과, 많은 사람과, 계속되는 이동으로 지쳐갔다. 급기야 말도 별로 안 하고 사방팔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큰 덩치의 아이가 아기처럼 흘리면서 먹고, 정신이 없었다. 어른들은 감자가 자폐 진단을 받았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외부에서 보니 힘드셨나 보다. 아는 그것과 현실로 맞닥뜨리는 건 별개의 일이니까. 특히 우리 아빠가 걱정이 많으셨는데, 3일째 되는 날 밤, 아빠가 말씀하셨다. 감자에게 뭐라도 교육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엄마 말로는 여행 와서 같이 보낸 시간 동안, 감자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걱정으로 잠을 못 드셨다는 거다.
“아빠, 감자는 원래 저랬어요.”
“그렇긴 한데.. 몇 개.. 몇 개만 고치면 괜찮아 보일 거 같은데...”
“아빠, 그게 안 되는 게 장애예요.”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 하는지 안다. 하지만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아빠, 몇 개만 고칠 수 있으면 그건 장애가 아니야. 쟤는 안 하는 게 아니고 못 하는 거라고.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야.”
물론, 바르게 앉아서 먹고, 다른 아이들처럼 서로 어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친근하게 이야기도 걸고 그러면 좋겠지. 하지만 감자는 아니다. 끊임없이 지루함에 튀어나가고, 좋아하는 듀오링고 (언어 학습 앱) 이야기만 하고, 다른 아이들과 달라 보이는 모습에 속상하셨던 거 같다. 왜 그렇지 않나. 밖에서 보면 더 낯설어 보이는 거. 나야 익숙하지만 사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감자는 더 도드라져 보인다.
“아빠, 다시는 못 볼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그냥 둬.”
그리고 감자가 지금 받는 사회성 그룹수업과 인지행동치료를 이야기했다. 먹고 있는 영양제와 먹지 못하는 정신과 약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학교에서는 이러저러한 일이 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지지를 받으며 잘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빠는 조금 안심하시는 거 같았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이 모든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가족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인 우리 엄마 아빠들에겐 그런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엄마랑은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아빠랑은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서로 입 밖에 올리기가 힘든 탓이겠지. 나는 그날 처음으로 오랫동안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나의 엄마 아빠가 아닌가. 우리 감자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 아닌가. 이야기하는 내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장 깊은 고민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커서 무엇이 될까?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사랑이었다.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 나는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감자도 그러하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감자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생각. 그게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이렇게 자라난 아이는 결코 어긋나지는 않겠다는 마음. 물론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지는 못하겠지만, 결코 나쁘게 자라지는 않겠다는 믿음. 그런 것들이 교차해서 지나갔고, 좋았다.
게다가 나만의 소소한 행복도 있었다. 저녁에 다른 사람들은 술을 마시러 나가고, 숙소에 감자와 둘이 남아서 소설책을 읽었다. 둘은 그때서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컴퓨터를 하고,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사랑하지만, 또 잠시 떨어져 있으니까 더 좋잖아?^^
덧. 사랑의 매는 정당한가요?
우리 부모님들은 아주 평범한 옛날 사람들이다. 나도 어릴 때 여동생과 머리를 쥐어뜯고 싸우는 날이면 빗자루로 엉덩이를 얻어맞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나. 하지만 할머니는 말릴 수 없지. 아무튼, 그러한 연유로 감자가 할머니에게 등짝을 좀 맞았다. 정신없이 굴면 짝하고 소리가 날 만큼 등짝을 얻어맞곤 했는데 감자가 그런다.
“할머니, 제가 인권 시간에 배웠는데요.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안 된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왜 폭력을 행사하세요?”
자신이 한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등짝 맞은 것만 억울한 감자. 그러곤 이런다.
“맞는다고 고쳐지나요?”
엄마는 머쓱하게 감자를 쓰다듬으면서 사랑의 매를 아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감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사랑의 매도 안 된다고 하던데요?”
“할머니는 말이야 예전에 그런 시대에 살았어. 엄마도 잘못하면 맞곤 했지. 이제 70살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에겐 그런 방식이 익숙한 거야. 각자의 방식이 있는 거란다. 나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 감자를 사랑해서 그런거니까.”
감자는 억울해 보였다. 하지만 이해했다. 소통 방식이 다르지만, 결코 자신을 미워해서가 아님을.
글_ 모로(문탁 네트워크)
일리치 약국과 로이약차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쌍화탕을 달이고, 약차를 손질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과 만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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