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editor’s memo
『천개의 고원』은 어떤 책인가? ‘이런 책이다’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책이다. 책을 처음 펼쳐서 읽기 시작한 순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아주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단 한 마디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무슨 마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계속 책을 펼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도대체 이 책과 ‘삶’을 연결하여 글을 쓴다는 건 어떤 것일까? 어쩌면, 『청년, 천개의 고원을 만나다』는 『천개의 고원』 보다 놀라운 책일지도 모른다.
밑줄긋기
기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내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내 삶 속에서 펼쳐졌던 모든 것들, 성공도 실패도, 사랑도 이별도, 언제나 자본이 만들어 놓은 조건에 내 신체와 감정을 맞추는 것일 뿐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이 조건하에 언제나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삶의 패턴만을 그렸을 뿐,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략)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 능동적이고 윤리적인 실천이다. 이 실천 속에서 여러 스승을 만났고, 벗을 사귀게 되었다. 무엇보다 공부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감이당과의 접속, 『천개의 고원』과의 만남은 이전에는 상상도할 수 없는 경험을 안겨 주었다.
옮긴이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죽음의 바다는 사방에 펼쳐 있고 우리는 얼마라도 더 살려 애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실존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도 노력도 긍정도 모두 실천이다.”(「역자 서문」, 『천개의 고원』, ix쪽) 내가 내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것보다 더 경이로운 일이 또 있을까. 이 모든 능동적 실천의 중심이 지금 나에게는 ‘글쓰기’다. (고영주, 『청년, 천 개의 고원을 만나다』, 「프롤로그」, 북드라망, 19-20쪽)
들뢰즈와 가타리는 ‘와’(and)의 철학자라고 불린다. 출발도 목적도 아닌 과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접속사를 꼽으라면, ‘~그리고, ~그리고’다. 결국 여기에는 ‘중간’만 남게 된다. 중간에는 ‘이것은 맞아!’, ‘저것은 틀려!’라는 이원론이 없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공부. 글쓰기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확장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아직도 위계적인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글쓰기로 하나하나 깨고 싶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은 내가 나와 치르는 전투이다. 내가 고집하고 있는 관념들과의 싸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가치들을 부수고 새롭게 세우는 것 말이다. 그렇다. 글쓰기는 끊임없이 나를 파괴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중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책, 「‘리좀’과 ‘글쓰기’」, 32-33쪽)
나는 지난 열 달 동안 『천개의 고원』과 내 삶을 연결하여 글을 썼다.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과거의 사건들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억압과 결핍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무기가 현실에 반격을 가한다는 것은 과거를 유쾌하고 재미있게 재구성함으로써 현재 내 욕망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목민이 멈추지 않고 이동하듯이,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실천’이다. 멈추는 순간 내 욕망은 또 다시 도처에서 작동하는 자본의 배치에 포획될 테고 또 다른 억압과 결핍에 머물게 될테니 말이다. (같은 책, 「‘전쟁기계’와 여행」,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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