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북드라망 한뼘리뷰 대회 - 『뉴욕과 지성』 메모 &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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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editor’s memo

태어나서 지금까지(대충 40년) 단 한 번도 ‘한반도의 부속 도서’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외국의 도시에 체류하면서, 그 도시를 주제로, 그리고 그 도시와 연관된 글들을 소재 삼아 한 권의 책을 쓴다는 일의 ‘대단함’이 더더욱 대단해 보인다. 말하자면 그 일은 낯선 ‘도시’와 부딪히는 동시에 낯선 ‘글’을 읽으며 그 와중에 그로부터 ‘배울 것’을 찾아내는, 그 정도로 대단한 일이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리스펙’, 그 말이 절로 나온다. 그와 동시에 나는 대체 ‘청년기’를 뭐하면서 보냈는가 하는 자괴감마저도 들지만…… 말했다시피(그 말을 한 글 보러가기) 우리는 모두 ‘과정’ 속에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청년’이다. 그래서 아직도 ‘청년기’를 보내는 중이다. 절대로 자기 위안 같은 게 아니다! 아니라고!!

 

어쨌든, ‘삶’에서 무언가를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을 보면 된다.

 

밑줄긋기

나는 뭐든 열심히 했으니까 스스로를 능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주어지는 조건,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보고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중학교와 고등학교·대학교를 비판하는 것은 쉬웠지만, 그곳들을 나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활동을 꾸리진 못했다. 처음 백일 수행을 하면서도, 초등서당을 하면서도 주어진 일만 깔끔하게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백일수행이 끝난 지 한참 된 지금, 여전히 나는 능동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무언가에 한참 집중하다 보면, 또다시 내 말은 먹고 남의 일엔 간섭하지 않고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동은이 아직 곰에서 사람이 되지 않은 것처럼, 나 역시 아직 백일수행이 끝나지 않은 듯하다. (김고은, 「내 길을 찾아 삼만리」, 37쪽)정착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동이라는 자유와 폭력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는 하늘을 지붕삼고 땅을 바닥 삼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에 살게 되든지, 편견을 버리고 차별의 경계를 넘어서 이웃과 친구를 만드는 방법 말이다. 이것이 땅을 황폐화하는 전쟁에서 이기는 길이다. 잦은 이사와 낯선 환경에 심신이 지칠 때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말하자. 이 이상한 세상에서 내 한 몸 누일 곳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나의 역사는 그렇게 매일 갱신되고 있다. (김해완, 『뉴욕과 지성』, 「휴머니티의 집:하워드 진과 990 아파트」, 북드라망, 81쪽)
뭘 하고 놀 것인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언제든 관심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것은 욕망의 차원에서 통합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각자의 현실적인 능력과도 관계되어 있다. 목공으로 사업을 하자, 아카데미를 만들자, 글을 써서 책을 내자, 하는 등의 아이디어 이전에 함께 질문하고, 공부하며 그것을 이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는 ‘일’, 우린 그런 일을 해보려는 것이다.
우리는 맨날 싸운다. 내가 보기에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바로 이것이다. 과거 이른바 ‘청년 모임’에서 갈등은 곧 위기였다. 그런데 우린 맨날 싸우면서도, 또 나와서 함께 공부하고, 회의하고, 논다. 물론 언제 어떤 욕망이 튀어나와서 찢어질지 모르는 것이 청년들의 삶이다. 하지만 과정이 이미 목적인 이상, 된다, 안 된다가 그리 중요할까. 이만큼 된 것이 아닐까, 됐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보낸 2년 반의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졸업식조차 참석하지 않고 학교를 떠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여러 사람의 등에 떠밀려 졸업식에 갔다. 그리고 천 명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가운과 모자를 집어 던졌던 순간, 예상치 못하게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여기에는 힘든 시간을 함께 거쳐 왔다는 동료의식과, 앞으로 닥쳐올 시간에 대한 불안한 예감이 뒤섞여 있었다. 졸업장이 손에 쥐어진 약간의 특권은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원했다. 우리 모두 시대의 그림자로 살아가지는 않기를,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그래서 훗날 아기가 생겼을 때, 다음 세대에게 “이 세상에는 언제나 살 길이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같은 책, 「가장 낮은 곳부터 마비시키는 은총: 이반 일리치와 워싱턴하이츠」, 147쪽)
뉴욕의 대표적인 가치는 자유다. 세계 각국의 전통에 반하여 어떤 개인적인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 원하는 꿈을 설정하고 좇을 수 있다는 것. 반면, 호퍼는 여기에 크게 감동받지 않는다. 그는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을 자유라고 말한다. 그럴 때에야 유행이 절대적인 강령이 되지 않을 수 있고, 개개인이 시대의 정언명령에 원하는 만큼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은 물론 전체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선 절대로 우호적이지 않다. 대신 선택의 자유라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하는 게으름뱅이라는 명령어를 사방에서 발신한다. (같은 책, 「마음-지옥의 방랑기: 뉴욕의 에릭 호퍼」,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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