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북드라망 한뼘리뷰 대회 - 『청년, 연암을 만나다』 메모 &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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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editor’s memo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공부’는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그게 입시든 고시든 아니면 그것들과 아무 상관없는 공부든, 무엇이든, 제대로 해내기만 한다면 ‘공부’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크게 바꿔놓는 것이 없다. 이건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믿음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위력을 여러 번 실감했던 것 같다.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대학엘 가지 않았더라면, 대학에 가서 전공 공부에 매달리는 대신에 학교 밖 ‘공부’에 매달리지 않았더라면, 더 이상 공식적인 ‘학생’ 신분이 아니게 되었을 때에도 ‘학생’인 듯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도대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은 말하자면 ‘연암-공부’로 인생의 궤도를 바꾼 세 사람의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어딘지 뭉클한 구석이 있다. 우리 모두의 ‘공부’, 화이팅이다!

 


밑줄긋기

그동안 나를 구체적으로 구성하고 있던 욕망에는 무언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 무언가란, 정말 ‘무언가’로 실체는 딱히 없었고, 뭐든 지금보단 나은 무언가였다.) 그러니 ‘무엇이 되려’ 하지 않으면서도 충실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연암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내가 가지는 허무함에서 나오는 냉소, 곧 무기력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무언가 되지 못한다면, 삶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중략) 연암의 병은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쐬고,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생기자 쓱 나았다. 어쩌면 중2병스러운 내 무기력도 그런 것이 아닌지, 삶의 의미를 찾거나, ‘무엇’이 되어야 할지 확신하고 달려가기 시작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연암처럼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재밌고, 주위 사람들과 사는 것이 즐겁고, 매번 사람들에게서 각각의 빛깔들을 읽어 낼 수 있다면, 그러니까 내가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온전히 내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무엇을 그렇게 냉소한단 말인가? (이윤하, 『청년, 연암을 만나다』, 「프롤로그」, 북드라망, 19쪽)

나는 ‘욕심내는 일’이 좀 멋쩍었다. 욕심내도 되나 싶기도 하지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서기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좀 요상한 마음이다. 욕심을 낸다는 건, 무언가를 하고자 함이고, 그 배움의 장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배움의 기회를 욕심낸다는 것은 쑥스러울 문제가 아니었다. 욕심낸 그 자리에서 내가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 자리가 아니면 만나지 못했을 세상에 감사하며 말이다.
그렇다. ‘이름’(名)에 생긴 나의 ‘욕심’(欲)에 ‘부끄러움’(恥)이 없는가를 물을 뿐이다. 그리고 부끄러움 없이, 명실(名實)이 상부(相符)하게 살아갈 뿐이다. 내가 지금 가진 이름에 걸맞게! 어쩌면 지금 나는 이름과 실상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자연, 같은 책, 「명실상부하게 살아가기」, 133-134쪽)
사람을 사귈 때 얼마나 마음을 다해야, 그의 죽음이 뼈를 찔러댈 만큼 온몸으로 아플 수 있는 걸까. 얼마나 친해지고 정이 붙어야 그 인연 자체가 악연이라고 말할 만큼 괴로운 것일까. 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어 본 적이 없어 사별의 아픔에 대해서 얘기할 순 없지만, 사실 누군가와의 이별에도 그리 괴롭다고 여겨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토록 아파하는 연암을 보며, 사람들과 그동안 적정선을 치고 살아왔던 걸 더 이상 부인하기가 어려웠다. 좋은 게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고, 관계도 변하기 마련이라며 적당히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하지 않아서 그동안 나는 이별의 아픔도 잘 알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냥 적당히 사람을 만나는 걸로는 인연조차도 될 수 없다. (같은 책, 남다영, 「인연은 다 악연이다」, 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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