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 <Joshua tree>
- '좋아한다'고 느끼는 것과 자주 듣는 것은 별개
U2에 대한 나의 입장은…(내가 뭔데 '입장'씩이나)…여하간 나의 입장은, 묘하다. 엄청나게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고,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 아니 서너쪽쯤은 장식한 '슈퍼밴드'에게, 나 같은 음악계의 미물이 무슨 '입장' 따위를 갖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싶지만서도, 그래도 뭐 앨범도 서너장쯤 가지고 있고 그뿐만 아니라 무려 5세대 아이팟 U2에디션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뭐라도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 '묘'하다 보니 길어진 이 문장을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U2를 좋아한 적이, 단언컨대 '한번'도 없다. 어느날 올라간 동네 뒷산에서 록의 신이 헉헉대는 내 앞에 불쑥 강림하시어, '사실은 보노가 내 아들이었어. 삼위일체 알지? 그러니까 너는 이제 나의 밴드, U2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렴'이라는 계시를 내리신다면 나는 그 즉시 우상을 숭배하고, 동네 뒷산을 천년쯤 방랑하리라. 그 정도다.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나는 그들의 음반을 한장도 아니고 서너장이나 가지고 있으며, 굳이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인가. 묘하다. 일단, 어느 밴드나 뮤지션을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내가 명백하게 좋아하는 밴드인 AC/DC의 예를 들어보자. AC/DC가 만약 한국에 온다면 나는 기꺼이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 그들의 공연을 보러 갈 것이고, 현장에서 기념 티셔츠라도 판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살 것이며, 혹시라도 한국 공연실황 라이브 비디오와 음반이 발매된다면 양쪽 모두를 사겠다. 심지어 한 장씩 더 사가지고 로큰롤을 좋아하지만 AC/DC를 접해보지 않은 누군가에게 선물할 용의도 있다. 공연장에서 만난 생판 처음 보는 팬들과 음료수를 나눠 마실 수도 있고, 그저 팬이라는 이유로 그들과 친구도 될 수 있다. 말하자면, 나는 AC/DC와 그들의 음악이 만든 '세계의 일원'이 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U2에게선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사실 조금 꺼려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평상시의 '의식' 차원에서 보면 '좀 지루하지 않아?', '보노 목소리는 영 느끼해서……', '무슨 로큰롤이 그렇게 흐물흐물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느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U2를 꺼내 듣는다. '음, 지루할 텐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그게 참 어쩔수가 없다. 갑작스레 느끼한 보노의 목소리나 디 엣지의 기타소리가 생각난다. 이건 마치 먹을 때는 막상 맛이 없는데, 한참 안 먹거나 특정한 시기가 되면 먹었던 그 기억이 떠오르는 음식 같다고 해야 할까?
내게 그런 음식은 엄마가 만든 호박죽이다. 밖에서 사먹는 호박죽처럼 달지도 않고 곱지도 않아서, 엄마가 '호박죽 만들어줄까' 하면 '아니야 괜찮아, 나 호박죽 싫어하잖아'라고 하지만 어쩐지 한참 안 먹다보면 생각난다. 그렇다고 '엄마 호박죽 해줘'라고 했다가는 온 집안이 할로윈 분위기가 되어버릴 테니 참는다. 신기한 건 그와 비슷한 시기에 엄마도 호박죽이 먹고 싶어지는 것인지 아침에 일어나 보면 냄비에 호박죽이 끓고 있었다.
그러니까, <Joshua tree>는 호박죽 비슷한 앨범이다. 사운드는 (호박죽 색처럼) 화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귓구멍을 뚫고 들어와 심장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자극적이지는 않다. 엄마의 호박죽처럼. 아마도 그런 절묘한 사운드 메이킹의 비밀은 디 엣지 특유의 딜레이 주법에 있을 것이다. '딜레이'가 뭐냐 하면, 기타에 연결된 이펙터의 한 종류인데 'msec'(밀리세컨드) 단위로 악기의 원음을 자동으로 피드백 해주는 장치이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기타리스트는 기타를 한 번 '땅' 친다. 그러면 그 소리가 '딜레이 이펙터' 속으로 들어갔다가 앰프를 통해 나오면 '땅-또왕-또왕-또왕……' 하는 식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음의 간격을 조절하면서 일정한 리듬을 구축해가는 것인데, 디 엣지는 그 분야의 거장이다. '디 엣지=딜레이 주법'이 등식이 성립할 정도니까.
U2의 사운드의 뼈대, 아니 뼈대라기 보다는 배경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U2와 동시대에 활동한) 전형적인 록 사운드의 경우에는 한 음에서 다음 음 사이의 간격이 명확하고 (U2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다. 반대로 U2는 설명한 바와 같이 '땅-또왕-뜨왕……' 하는 식으로 음과 음 사이의 여백에 사운드를 가득 입힌다. 안개가 가득 깔린 것 같은 배경을 펼치는 셈이다. '쿵작쿵작'거리는 비트를 좋아하는 올드록팬에게 U2의 사운드가 싱겁텁터름한 이유도 사실 거기에 있다. 비트감은 약하고, 귀에 잡히는 '뼈'가 없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디 엣지의 리듬감이 약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정확한 '칼박자'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펼쳐놓은 배경은 와르르 무너진다. 딜레이 주법이 어려운 이유도 정밀한 리듬을 유지해야만 효과가 제대로 살기 때문이다. 듣기에 편안한 음악일수록 연주는 칼 같아야 한다.
디 엣지가 구축한 배경에 보노의 목소리가 얹혀질 차례인데, 여기서도 U2는 '전형성'에서 훌쩍 벗어난다. 록 보컬리스트들을 떠올려보자. 대부분의 청자가 '훌륭한 록 보컬'에게 받는 인상은 대개 어떤 막을 뚫고 나오는 것 같은 샤우팅이다. 이건 말하자면, '인간의 승리'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데, 인간의 원초적인 소리로 악기들의 소리를 압도해내는 장면인 셈. 나는 록음악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인상의 대부분(원초성, 원시성, 강렬함)이 여기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훌륭한 보컬리스트라면 목소리만으로 다른 모든 파트를 잠재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노의 노래는 조금 다르다. '뚫고 나온다'는 이미지이라기보다는 배경에 얹어진 채 노래를 부르다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배경과 진하게 섞이는 느낌이랄까.
아마도 아일랜드 출신 뮤지션들에게 의례 붙는 '몽환적'이라는 기호는 이와같은 U2의 사운드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즐겁자고 듣는 음악인데 귀에 걸리는 게 없으니 심심하고, 그러다 보니 영혼을 팔려고 해도 사줄 것 같지가 않다. U2를 떠올리면 점점 마음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겠지. 다만, 그런 음악이 주는 편안하달지, 멀어지는 감각에 대한 그리움이랄지 그런 것 때문에 주기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과 그리고 그것을 '듣는다'는 행위는 아주 철저하게 주관적인 일이므로, 누군가에게는 U2가 '인생의 밴드'일 수도 있으리라.(사실 그런 사람이 아주 많다.)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U2나 엄마의 호박죽은 나에게 해주면 좋겠는데 해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그런 정도의 것이다. 단언컨데 나는 U2가 별로다. 그런데 요즘 U2를 다시 듣고 싶어진다. 진짜 별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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