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영 & 크레이지 호스, 『Live Rust』
- '핫한' 게 아니라 뜨거운 거!
날씨가 너무 추웠다. 조금 원망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한동안 겨울답지 않게 뜨뜻미지근해서 좋았는데……. 그런데 겨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제야 좀 살겠군' 싶을지도 모른다. 으... 어쨌든 너무 추워서 제 정신이 아니었다. 뭘 먹든 소화가 잘 안 되고, 얼굴은 간질간질 하고, 옷은 두껍게 입어 늘 갑갑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겨울이 싫다. 그렇다고 봄을 좋아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 든다. 싫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얼른 가라' 싶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여름'이 최고 아니겠는가! 뜨겁고, 뜨겁고, 뜨겁고…… 뜨겁다 보면 축 늘어져 잠들고 마는 그런 여름 말이다.
나에게는 '여름'을 상징하는 몇몇 앨범들이 있다. 이를테면 밥 말리 & 웨일러스의 음반들이나 지미 헨드릭스의 라이브 음반들, 에릭 돌피와 부커 리틀이 함께한 라이브 앨범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겨울 하면 떠오르는 음반들도 있는데, 콜드 플레이의 초기 음반들이나 데미안 라이스 1집, 마일즈 데이비스의 쿨 시대의 몇몇 음반들이 그러하다.(혹시 몰라 남겨두자면 클래식으로는 여름엔 말러의 교향곡들이 정말 좋다. 겨울엔? 겨울엔 뭐 차이콥스키 아니겠는가?!)
위에 열거한 것들이 주로 그 계절에 듣는 것이라면, 반대로 겨울에 여름을 그리워하며 듣는 음반들도 몇가지 있다. 요라탱고 11집, 아바의 골드 앨범, 스티비 원더의 앨범들 정도다.(여름에 겨울을 기다리며 듣는 음반은 없다. '오지마, 오지마' 하면서 듣는 앨범도 없다. 너무 구차하기도 하고……. 쩝.) 여하튼 그런 음반들 중에서도 너무너무 추울 때면 꺼내듣는 음반이 바로 오늘 소개할 음반 닐 영과 미친 말들의 녹슨 라이브 앨범이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너무 차가운 물에 조금 부어줄 따뜻한 물 같은 그런 앨범이 아니고, 물을 끓일 불이요, 그 물을 담은 녹슨 쇠주전자 같은 앨범이라 이 말씀.
첫 트랙 <sugar mountain>이 나오면, 어쩐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기대감을 가지고 두번째 트랙 <I'm a child>가 나와도, <Comes a time>이 나와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14번 트랙 <Like a hurricane>까지 내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음반이 사운드적으로다가 막 '헤비', '메탈', '하드', '코어' 막 그런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나도 중학생이었던 그 옛날에는 '위대함 = 막 때려부수기' 공식을 신봉했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록이 꼭 그런 게 아니다. 말하자면, 록 음악이 가진 원초적이고 저항적이며 순수한 뭐 그런 정신이라는 것이 꼭 디스토션, 오버드라이브가 만땅 걸린 사운드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차라리 그쪽은 뭐랄까 '즉물적'이랄까. 표피만 핥는 꼴이랄까. 그래서인지 요즘은 헤비, 트래쉬, 데스 류의 사운드를 들으면 뜨겁기보다는, 오히려 춥다. 그래서 아예 한 여름에는 하드게인 샤워를 하기도 한다. 이건 철저하게 취향의 문제이므로 나와는 반대로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여하간, 그래서, 이 앨범의 어디가 그렇게 뜨겁냐 하면 음……, 그러니까 원초적이어서 그렇다. 닐 영이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거나 목소리가 소울풀하거나 하냐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차라리 '노래 못하네' 쪽에 훨씬 가깝다. 목소리가 좋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꽤나 가는 목소리다. 하모닉스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쌩목'으로 부르는 듯 하다. 그렇다면 손가락이 타들어 갈 정도의 기타솔로를 보여주느냐 하면 그 역시 아니다. 대충 악보 보고 짚어보면 나조차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정도다. 연주력이 뛰어나지도, 가창력이 뛰어나지도 않으니까. 아마도 한국의 어느 오디션 프로에 나온다면 1라운드 탈락이 예상된다.(어쩌면 작곡능력을 인정받아 1라운드 통과 후 2라운드 탈락일 수도……. 그런데 아마 그것도 안 될거야.)
그런데 노래 한 소절, 기타로 연주하는 노트 하나하나가 뜨겁다. 기타는 마치 모루인듯, 손가락은 망치인듯 연주해 간다고 해야할까. 하여, 한 음, 한 음에서 불꽃이 튄다. 앨범 뒷면 사진을 보면 닐영의 (레스폴)기타 스트랩에 지미 헨드릭의 벳지가 달려있다. 이게 참 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키는데, 지미 헨드릭스도 우드스탁 라이브(1969)에서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를 연주할 때, 그의 손을 마치 망치처럼 휘두르지 않았던가. 말하자면, 이 라이브 앨범은 지미 헨드릭스의 그 연주에 대한 오마주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앨범이 나온 게 1979년이니까, 딱 10년만이다. 뭐, 공연은 1978년에 했지만…….
앨범 부클릿을 열어보면 몇 장의 흑백 이미지들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나는 위의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설명을 해보자면 현장의 실제 상황에서 색을 빼고, 소리를 빼고, 운동성을 빼고……, 딱 '에너지'만을 남긴 것 같다고 할까. 이를테면, 사진을 잘 보면 가운데 닐 영의 발뒤꿈치가 들려 있다. 점프 중인지, 점프 후 착지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뒤꿈치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만다. 라이브 러스트의 현장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랄까. 그러니까 나는 그때 '뜨겁다'고 느낀다.
사실 닐 영은 예전부터 유명했지만, 우리 세대(대충 너바나의 팬이거나 친구가 팬이었던 세대)에게는 바로 그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덕분에 더욱 잘 알려지게 되었다. 커트 코베인이 자신의 유서에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라는 <hey hey, my my>의 가사만 적어놓지 않았던들, 우리는 닐 영을 그저 '골든 팝송' 테이프 속 어딘가에 수록된 '팝송 가수' 정도로만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예를 들자면, 우리 아버지가 물려준 LP 콜렉션 속에서 닐 영 음반은 단 한장뿐이다. 1972년에 나온 <Harvest> 앨범의 빽판인데, 이 앨범에서 닐 영은 (어쩐지 미지근한) 컨트리 '가수'의 느낌이다. 사실 닐 영도 이 앨범을 흑역사 취급해서, 나중에 <Harvest Moon>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새로 발매하기도 했다. 여하간에 아버지는 닐 영을 '팝송 가수' 또는 '포크 싱어'로 기억했겠지. 그렇지만, 나에게 형성된 그의 이미지는 누구보다도 후끈한 펑크로커다. 그러니까 통기타를 든 펑크로커 말이다.
그런데, 나는 섹스피스톨즈나 클래시나 뉴욕돌즈나 90년대의 그린데이, 오프스프링스, 랜시드 같은 그 어떤 펑크로커들 보다도 1978년의 닐 영이 훨씬 뜨겁고 반항적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음……, MTV가 있고 없고의 차이인가?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느낌이 그렇다. 닭벼슬머리 하지 않아도, 본디지를 입지 않아도, 그냥 늘어진 셔츠에 기름때 뭍은 통바지만 입어도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오래간만에 CD를 꺼내 1번부터 주욱 듣고 나니 괜히 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기분으로 겨울을 버틸 수 있으면, 뭐 그걸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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