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듀안 올맨 『An Anthology』- 영웅은 영광을 얻으면 죽는다

듀안 올맨 『An Anthology』

- 영웅은 영광을 얻으면 죽는다



좋아하는 앨범과 그저그런 앨범을 가르는 기준이 있으신지……? 나의 경우엔 아주 명확한 기준이 있다. 턴테이블이든, CD플레이어든 음반 한장을 걸어 놓고 1번부터 듣기 시작한다. 1번 곡이 끝나고 나면, 2번 곡이 시작되기 전 짧은 공백이 있는데, 이때 이미 2번 곡의 전주를 머릿속에서 재생하기 시작한다. '따라 따라 따라라~', 이런 식의 두뇌재생이 마지막 트랙까지 계속 이어지면 '좋아하는 앨범', 중간에 이가 빠진 채로 재생이 된다면 '흠 대충 괜찮은 앨범', 다음 곡이 뭐였더라 싶으면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앨범이거나 '그저그런 앨범'이다. 더 세분하자면 혼자 '떼창'이 가능하면 '우왕 굿!'급 앨범이다. 여기서 '떼창'은 여러명이 함께 부른다는 개념이 아니라, 입으로는 노래나 기타 솔로를 따라하면서 발로는 드럼박자를 손가락으로는 베이스 리듬을 (대충이라도) 두드리는 온몸 합주의 개념이다. 그야말로 몸 전체로 듣는 것이랄까. 


그런 앨범이 많지는 않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정규음반들이랄지(특히 1집), 에릭 클랩튼의 부도칸 라이브 앨범(『Just one night』)이랄지, AC/DC의 70년대 음반들, 뭐 대충 그 정도다. 그런데, 약간 특별한 앨범 한장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올맨브라더스의 라이브앨범 『At Fillmore East』의 경우다.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유명하다니까 듣기는 듣겠는데, '이거 빠다 냄새가 너무 나는데' 싶은 기분이었달까. 앨범도 더블 앨범이어서 비싸기도 비쌌다. 본전은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듣고, 또 듣고, 다시 듣고, 그러다가 결국 CD로 산 앨범의 LP까지 구입하고, 결국엔 '내가 뽑은' 역사상 최고의 라이브 앨범 베스트3 안에 들어가는 앨범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듀안 올맨'과 만나게 되는데…….


밴드 이름 'Allman Brothers'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밴드는 '올맨 형제'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밴드다. 형 듀안은 기타를 치고, 동생 그렉은 키보드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그 외에도 디키 베츠(기타), 베리 오클리(베이스), 부치 트럭스(드럼), 자이 조하니 조한슨(드럼)까지 무려 6인 구성의 대형 밴드다. 특이한 점 한가지와 알아두면 좋은 점 한가지가 있다. 일단, 특이한 점은 드럼이 두 명이다. 활동한 연대가 다르냐 하면 그게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둘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두 명이 드럼을 치는 트윈 드럼 체제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워낙에 '임프로비제이션'(즉흥연주)가 중요한 밴드이다보니 독보적으로다가 튼튼한 리듬섹션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알아두면 좋을 점 한가지는 올맨브라더스 밴드의 드러머 부치 트럭스는 데렉 트럭스 밴드의 기타리스트 '데렉 트럭스'의 삼촌이라는 사실!(별로 안 중요한가….)




어쨌거나 오늘은 올맨브라더스밴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40여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그 밴드의 기타리스트 듀안 올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흔히들 훌륭한 기타리스트를 두고 '기타 히어로'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게임이 아니다. 게임이!) 듀안 올맨이야말로 지미 헨드릭스와 더불어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에게 지워진 운명, '영광을 얻으면 죽는다'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 모두 짧은 시간 동안 활활 타오르다가 일찍 요절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둘은 (지미 페이지처럼) '이거 뭔가 예전하고 많이 다른데…' 싶은 음반을 낸 적도, (리치 블래모어처럼) '아니 굳이 왜 이런 음반을 내는 겁니까' 싶은 앨범을 낸 적도 없다.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미 헨드릭스는 언제나 스물일곱 전성기의 지미이고, 듀안 올맨도 고작 스물넷에 록씬에 등장한 혜성으로 남아있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음반을 들을 때마다 아쉽다. 음악은 언제나 감탄스러울 정도지만, 남아있는 녹음 이외에 새로 나올 것이 없다는 사실, 그저 인간적으로 너무 일찍 죽었다는 데서 비롯하는 애틋함 같은 것이 있다. 


 



오늘의 앨범은 듀안 올맨이 죽은 후 그가 남긴 녹음들을 묶어낸 컴필레이션 앨범 『Anthology』이다. 듀안 올맨은 올맨브라더스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기 전에도 이미 완성된 기타리스트였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음반이기도 하다. 이미 윌슨 피켓이나 아레사 프랭클린의 세션을 하기도 했고, 1970년에 에릭클랩튼과 함께 데렉앤도미노스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이 음반에는 당시의 녹음들이 차곡차곡 수록되어 있는데, 앨범 전체를 듣다보면 듀안 올맨의 기타 실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그냥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잘 친다'. 위대하다.


에릭 클랩튼의 '사연'이 있는 곡, 'Layla'에서 들려주는 빠르고도 정확하면서 애절한 '슬라이드 기타' 연주는 워낙에 '전설적'이어서 말이 필요없고, 윌슨 피켓이 부른 비틀즈의 'Hey Jude'는 블루스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그 외에도 어느 트랙이든 결코 빠지는 곡이 없을 정도로 꽉 찬, 그야말로 고르고 골라서 넣은,『Anthology』랄까. 



음반 자랑을 조금 하자면, 이 음반은 홍대의 중고LP샵에서 무려 6만원이나 주고 구입한 음반이다. 재킷의 보관 상태는 썩 좋은 편은 아닌데, 속지도 여기저기 찢어져 있고, 앨범 재킷도 위아래로 조금씩 터져있다. 그러나, 그런 재킷의 상태와는 대조적으로 음반 자체의 보존 상태는 아주 훌륭했다. 전문 LP샵에 있던 물건이니, 먼지는 이미 깔끔하게 닦여진 상태였고, 음질에 거의 지장을 주지 않는 실기스만 몇 개 있을 뿐이었다. 듀안 올맨이 죽고 한 해 뒤인 1972년에 제작된 음반(무려 43년!!)인 것을 감안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아마, 듀안 올맨이나 올맨브라더스 밴드의 인지도가 좀 더 높았다면 훨씬 고가였겠지만…….




마지막으로 'side 1'의 곡 리스트다. 첫번째 트랙에 B.B king 메들리가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마치 '나는 블루스의 고향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듯하다.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이른바 세계 3대 기타리스트라는 게 있는데,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그 세 사람(지미 페이지, 제프 벡, 에릭 클랩튼)도 자신이 3대 기타리스트라는 걸 모를 것 같다. 여하간,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영국 출신이라는 점이다. 비틀즈부터 롤링스톤즈, 더 후, 딥퍼플, 레드 제플린, 퀸까지 당대 '영국 록'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었다. 그 중에서도 영국 출신의 기타리스트들은 거의 '신God'으로 추앙받을 정도였으니, 듀안 올맨이나 지미 헨드릭스의 등장에 미국 블루스, 록씬이 들썩였던 것은 당연지사. 더군다나 역수입된 '브리티쉬 블루스' 사운드가 아니라, 미국의 진흙이 잔뜩 묻은 본토 블루스를 구사하는 듀안 올맨은, 아, 그러니까 '혜성'이지 않았을까?


내가 딱히 미국인도 아니고, 미국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확실히 '기타리스트'라고 한다면, 그 중에서도 '블루스' 기타리스트라고 한다면 역시 '아메리칸'이 더 좋다. 스티비 레이본이나 듀안 올맨이나, 비비킹, 앨버트 킹 더 멀리 로버트 존슨까지. 블루스라면 역시 '빠다맛' 나는 미제 아니겠는가. 


사실, 이 음반은 재킷이 상할까봐서 LP를 자주 꺼내지는 않는다. 그냥 애플뮤직에서 찾아서 듣곤 하는데, 오래간만에(한 두어달 만에) LP를 꺼내서 들어보니, 역시 맛이 다르다. 중간중간 흙도 씹히고, 먼지도 폴폴 날리고. 사람도 차도 잘 다니지 않는 대륙의 어느 교차로에선가 젊은 듀안 올맨이 살아있을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든다. 이런 게 아마도 애틋함이겠지. 이미 한참 전에 스물넷, 듀안 올맨보다 나이를 더 먹어버려서인지, 날이 갈수록 더 그런 것도 같다. 그래서 조금 고맙기도 한데 어쨌든 그는 나에게 언제나 젊은, 혜성 같이 등장한 '기타 히어로'일테니 말이다. 



_ 올맨브라더스 <Statesboro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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