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너바나? 니르바나?, 『Unplugged in Newyork』

너바나? 니르바나?, 『Unplugged in Newyork』 



배철수 아저씨는 '니르바나'라고 했고, 잡지엔 '너바나'라고 써있었다. 나는 대체로 '너바나'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글자'로 '읽은 것'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게 아니고, 때는 95년 케이블 방송이 시작된 해였다. 아무래도 처음이다보니 컨텐츠가 부족했을 터, 당시 엠넷(Mnet) 채널에서는 엠넷에서 제작한 방송과 거의 같은 비율로 MTV를 볼 수 있었다. 


처음 'MTV'라는 알게 된 것은 '잡지'를 통해서였다. '미국에는 24시간 내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방송이 있는데, 그게 MTV다' 정도의 정보였다. 대략 그런 정보를 무심결에 취득한 후 직접 본 것은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던 '극장식 음악감상실'에서 였다. 위성방송 같은 걸 비디오로 녹화해서 틀어줬던 것인지, 가끔씩 뮤직비디오 오른쪽 상단에 'MTV'라는 워터마크가 찍혀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던 음악감상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MTV를 우리집 거실에서 볼 수 있게 되다니…, 하며 꽤나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너바나가 메이저 데뷔를 했던 해를 『Nevermind』 앨범 발표를 기준으로 잡으면 91년인데, 95년 케이블 방송 개국까지도 나는 밴드의 이름만 들어봤을 뿐, 음악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쩌다 한번씩 구입하는 음반으로 근근히 버티던 때였으니, 바람 결에 들어본 밴드의 CD는 우선순위 목록에서 한참 밀려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예 들어가 있지도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꾀병을 피워 조퇴를 한 날이었는데, 일찍 집에 돌아와 TV를 켠 나는 감전되고 말았다. 엠넷에서 오늘 이야기할 너바나의 언플러그드 공연 실황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처음 커트코베인을 봤고, 너바나를 처음 들었으며, MTV 언플러그드 공연을 시작부터 끝까지 본 것도 처음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언플러그드' 공연은 말 그대로 '플러그'를 꽂지 않은 공연, 그러니까 '어쿠스틱' 공연이다.(요즘도 계속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날의 공연 시청 후에 CD구입 우선순위는 크게 바뀌고 말았고, 이른바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너바나, 펄잼, 스톤템플파일러츠, 스매싱펌킨스 등)의 음반이 상위권으로 올라왔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록밴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치렁치렁한 긴머리, 짙은 메이크업, 가죽바지, 뾰족한 부츠 뭐 이런 것들이다. 뭐라고 해야할까, 록밴드의 패션의 '양식화'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90년대 이후 등장한 '얼터너티브 밴드'들은 달랐다. 적당히 긴 머리, 아니면 박박 깎은 대머리, 평상복, 스니커즈까지. 무대에 서있지 않으면 '일반인'과 구별하기 힘든 외관상의 '자연스러움'은 그들의 '음악'과도 매우 동형적이었다. 적으면 세개, 많으면 5~6개 정도 밖에 사용하지 않는 코드, 한 30분 연습하면 충분할 따라할 수 있을 정도의 기타 솔로까지. 팬들이 직접 '커버밴드'를 만들기가 쉬워졌다.(그런 점들이 홍대 인디씬의 부흥에도 꽤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할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밴드음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라하는 것'이 쉬워졌으니까.)


나의 '록' 음악에 대한 '열광'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 기타 실력이 25년 째 그대로인 것도 이것, 바로 '얼터너티브' 때문이다. 그래 너 때문이다!) 그 전까지, 이런 저런 밴드 음악들을 듣기는 했지만, 뚜렷한 정체성이 없는 '팝송팬'이었다면, 그날 너바나의 MTV 언플러그드 공연을 본 이후, 그 후에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의 음반을 찾아서 듣기 시작한 이후로는 '록팬'으로 진화하였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변화는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입고 다니는 옷도 그렇고, 일년에 두 번쯤 미용실에 가는 패턴도 그렇고, 딱히 듣고 싶은 음반이 없을 때 듣는 음악도 그렇고. 


물론, 끝간데 없는 '자기혐오'라든가(커트 코베인), 반대로 도무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자기애'(빌리 코건?) 같은 '얼터너티브 록'의 저변에 깔린 정서들은, 아… 지금 생각해도 꽤나 지긋지긋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나의 10대 후반, 성격 형성기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음원이든, 음반이든, 뮤직비디오든 어쨌든 '음악'은 단순히 잘 어울리는 음들의 조합이 아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스타일, 전달되는 형식, 물성 등등 총체화된 양식으로 수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 시절의 엠넷과 MTV와 동네 음반가게와 너바나의 비디오와, CD와 앨범 자켓들이 나에게 그러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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