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레드 제플린 『The song remains the same』 -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레드 제플린 『The song remains the same』 

-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트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답한다. 지미 페이지라고. '지난 번엔 지미 헨드릭스라고 그러지 않았나?'라고 물으신다면, 그건 가장 존경하는 기타리스트라고 답하겠다. '듀안 올맨도 그렇게 끝내준다며?'라고 물으신다면, 그건 '최고죠'라고 답할 수밖에.(이 코너에서 언급한 적은 없지만 가장 자주 듣는 기타리스트는 에릭 클랩튼이다.) 뭐 어쨌든 내가 가장 '(아이~)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는 지미 페이지다.(물론 목록을 더 만들수도 있다.)


중학생 때였다. 여드름도 꽤 많이 났었고, 1년에 막 12센치미터씩 자랐던 시절이다. 당연히 온몸에 에너지가 끓어넘쳤다. 매일매일 농구를 막 3게임씩 해도 지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오늘의 내 몸뚱이에 비춰 떠올려보면 그게 진짜 나였을까 싶은 그런 시절이었다. 여하간,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던 중학생이었으므로 '록'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무슨 말이냐 그게) 어쩃거나그렇게 록에 경도되어 갔는데, 나는 에너지가 넘치긴 했지만, 꽤나 학구적이었다.(이건 또 뭔소리야) 지금 듣는 '록'이 어떻게 이런 '록'이 되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없는 용돈을 쪼개가며 음악잡지를 사다 읽고 나름 메모도 해 가면서 꼭 들어봐야 할 음반 목록들을 만들곤 했었는데, 사실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돈도 별로 없고, 어쩌다 돈이 생겨도 중학생의 발이 닿는 범위 안에 있었던 음반가게에는 그런 음반들이 별로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런 '휴지조각'들을 작성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록 팬이라면 당연히 레드 제플린이나 딥퍼플은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오! 그러니까 그 두 밴드는 클래식으로 치자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것이었던 것이다.(비틀즈와 스톤즈가 바하와 헨델인 것처럼…….) 예를 들면, 소개팅을 나갔다고 치자.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제 취미는 클래식 음악 감상입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와~ 그럼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곡 중에 좋은 것 좀 추천해주세요' 했다치자, 그러면 클래식 음악 감상이 취미라고 한 그 사람이 '아 제가 그 두 사람 곡은 들어 본적이 없어서요'라고 말할 리가 있겠는가?! 그 대화를 고스란히 '록'으로 옮겨와서 록 팬이라 자처하는 자가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듣고 나서 '별로'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안 들어 봤어요'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여, 나는, 그러니까 (음반을 많이 모은) '아저씨' 세대의 막차에 탄, '아저씨'가 되고 만 나는 요즘의 어린 록 팬들과 도무지 함께 호흡할 수가 없다. ㅠㅠ (조금 흥분하고 말았다.) 


뭐 그런 이상한, 말도 안 되는 자격지심에서 산 음반 한장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레드제플린 4집이었다. 그 유명한 'Stairway to Heaven'이 4번째 트랙으로 들어있는 그 음반이다. 감상이 어땠을까? 밍밍했다. '이게 뭐, 왜 명반인 거냐' 하는 기분이었달까. 그 시절의 유행이었는지는 몰라도 어쩐지 수족관 속에서 녹음한 듯 먹먹한 사운드나, 확 가는 샤우팅도, '쩌는' 기타 솔로도 없는, '아 이게 뭐지 도대체' 싶은, 이게 명반이라니? 차라리 그 음반과 비슷한 시기에 구입했던 딥 퍼플의 『in Rock』 앨범이 더 명반('더' 명반이라니 써놓고 보니 참……) 같았다. 중학생은 아주 간단하게 결론을 냈다. '리치 블랙모어가 지미 페이지보다 더 잘 치는군'이라고. 




그러다가, 어느날 외삼촌이 우리집에 놀러 오셨고, 나는 꽤 큰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다음 수순은 역시 동네 음반가게로 가는 것이었겠지. 그날따라 동네 음반가게 사장님께서 갑자기 앨범 하나를 '강추'하셨다. 원래 그러던 분이 아니셨는데, 그날따라 어째서 그러셨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악성 재고'를 처리하려고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나야 늘 '악성 재고' 처리 전담반이었으니……. 그렇게 '강추' 받은 음반이 바로 사진 속의 저것 레드 제플린의 『The song remains the same』이었다. 아까 말했듯, (전설의 명반) 레드 제플린 4집에 충분히 실망해 있던터라, 계산하는 순간까지도 미심쩍었지만, 아저씨의 '강추'와 록 팬으로서 가져야 할 '교양'에 대한 강박 덕에 덜컥 더블앨범을 사고 말았는데…….


아, 나는 이 음반을 듣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아찔하다. 지금까지도 '레드 제플린 4집은 별거 아니야' 같은 소리나 해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음반은 기본적으로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OST다. 재미있는 건, 레드 제플린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 라이브를 영화화한 동명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는 라이브 앨범이라는 이야기! 4집에 수록된 곡들의 라이브 버전들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 'Stairway to Heaven'도 있고, 'Black dog'도 있고, 무엇보다 'Rock and Roll'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등교길 버스에서 라이브 버전 'Rock and Roll'을 들을 때의 그 기분을. 앨범 버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에너지가 거기에 있었다. 존 본햄은 드럼을 망가뜨리려는 듯 두드리고, 지미 페이지는 정말이지 아슬아슬하게 베이스와 드럼 반주를 따라가며 솔로를 펼친다. 어쩐지 엉뚱한 노트를 집거나, 반주를 쫓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솔로다. 아오 지금도 찌릿찌릿하다. 듣는 내내 팽팽하게 조여진 그루브를 유지하는 기타 리프와 베이스 워크도 인상적이다. 그제서야 나는 '아, 록밴드는 라이브가 중요한 것이로구나!' 했다. 


지미 페이지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그날 나는 '오 형님, 제가 앞으로 레드 제플린 앨범은 다 사겠습니다'라는 맹세를 했다. 그리고 레드 제플린파가 되었다. 그러나 결국 맹세는 지켜지지 못했다.




어째서 '맹세'를 지키지 못한 것인가. 거기엔 사연이 있다. 그리고 나는 맹세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다. 흥. 어쨌든 나는 레드 제플린의 정규음반을 거의 대부분 사 모았다. 남은 것은 BBC 세션이나, 베스트 앨범, 정규 음반 중 한 두개 정도였다. 아주 많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양이므로 조금씩 조금씩, 10여년에 걸쳐 모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2007년, '전설적' 밴드들의 '리마스터'판 발매 열풍이 불 때였다. 비틀즈 리마스터판도 나오고 산울림 리마스터판도 나오고, 누구네 리마스터도 나오고, 리마스터, 리마스터, 리마스터…. 그렇게, 레드 제플린 리마스터도 나왔다. 오늘의 사진들 속에 있는 것도 리마스터 버전이다. 리마스터들이 나오면서 나는 음반을 모으는 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인지 깨달았다. 내가 뭘 사면, 뭔가를 바꿨다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새 버전이 나온다. 결국 나는 영영 다 모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저 앨범만 리마스터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중학교 때 산 구판 CD는 너무 들어서인지, 아니면 CD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학창시절 내내 들어서인지, 여기저기 기스가 나기도 했고, 중간중간 오류가 나는 부분도 있었다. 다 괜찮았는데, 'Rock and Roll'의 기타 솔로가 시작하는 부분에서 오류가 나기 시작했다. 어쩌겠는가 새로 살 수밖에. 




결국 새 음반을 샀다. 지금까지도 꽤 자주 듣는 음반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CD는 친구에게 주었다. 그 녀석은 10대 때 드럼을 치는 시늉을 했다. 그 시절 내가 기타를 치는 시늉을 했던 것처럼. 우리의 포부는 꽤나 원대했다. 나는 지미 페이지가 되고 그 녀석은 존 본햄이 되어서 레드 제플린 같은 밴드를 해보자 같은, 아,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나의 기타는 울부짖다 말았고, 그 녀석의 드럼은…, 고무로 만든 연습판만 치다가 끝나고 말았다. 뭐 대개의 중학생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후로도 나는 계속 음반을 모아가며 록을 들었지만, 그놈은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힙합'을 좋아하더니, 서른을 넘어서부터는 음악이고 뭐고 나오면 듣고 안 나오면 마는 그런 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야, 안 듣는 록 음반 있으면 좀 줘봐'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정말 싫었다. 솔직히 CD를 빌려 달라는 것도 싫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온힘을 다해, 각고의 노력으로, 모든 주의를 기울여서 음반을 모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사람에게 음반을 빌려 달라고도, 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빌려줄 사람이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모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지 모르니까 빌려달라거나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록을 떠났던 놈이 뻔뻔스럽게 '줘봐'라니…….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지만, 벌써 애가 둘이나 있는 아버지에게 '야 이 X놈아' 할 수 없어서 조용하게 '안 된다'고만 했다. 그러자 그 놈은 '아 좀 줘봐. 나 다시 드럼쳐 보려고'라고 했다. 어쩌겠는가. 줘야지. 그래서 같은 것 두 장이 있는 이 앨범과 오아시스 1집과 기타 몇 개를 주고 말았다. 물론 그 놈은 '드럼' 따위 다시 치지 않았다. 배신감에 몸부림쳤지만, 어쩌겠는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말해두지만, 이 앨범은 '앨범'의 완성도, 특히 라이브 앨범으로서의 완성도만 놓고 보자면, 아주 훌륭한 음반이 아니다. 현장의 생동감을 갉아먹는 오버더빙도 들어가 있고, 솔직히 스튜디오 앨범만큼 연주가 훌륭한 것도 아니다. 지미 페이지는 리치 블랙모어에 비해서, 특히 딥퍼플의 『Made in Japan』이나 『California jam』에서 보여준 리치 블랙모어의 라이브 퍼포먼스에 비해서 조금 후달리는 연주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뭐, 록에는 완성도보다도 중요한 게 있다. 그걸 언제 들었느냐, 그걸 들을 때 내가 어떤 인간이었냐, 결정적으로는 그래서 그게 좋으냐 하는 것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앨범 몇 개를 꼽을 때 이 음반을 빼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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