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어떻게 삶을 구성할 것인가?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 어떻게 삶을 구성할 것인가?



"말에는 위대한 힘이 있지만 삶과 동떨어진 말은 그 힘을 잃는다. 청년들의 멘토들의 말이 그랬던 것처럼 힘을 잃은 말은 그저 덧없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결국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삶으로써 보여 주어야 한다. 완벽한 삶을 보여 주어 동경을 받으라는 뜻이 아니다. 동경이란 동일시의 감정이다. 모든 이에게 주어진 현실이 다른데, 그저 똑같이 되고자 하는 동경은 몰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삶으로써 보여주어야 하는 가르침은 내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전혀 스펙타클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나의 믿음을 가지고 나의 삶을 구성해 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로 하여금 자신을 동경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45-46쪽)




'이론과 실천'에 대한 오래된 문제가 생각난다. 나는 사실 이 문제가 지긋지긋하다. 왜 그런가 하면, 나의 실천이 언제나 이론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걸 느껴본 적이 있어서다. 아마 대개의 경우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최대한 실천을 이론에 근접시켜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고 있는 행동은 이론에 따른 것인데, 그게 진짜 실천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당연히 마음 속에는 죄책감만이 자랐다. 이건 결코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처음엔 '이론'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신체의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실천'도 잘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 이론을 바꾸면 된다. 편의점에서 마실 음료수 고르듯 이론을 갈아 타면 된다. 그 이론은 어찌나 신선한지 처음엔 받아들이는 몸이 좋아지는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신선함이 떨어질수록 내 실천은 그 이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철저하지 못한 나 자신, 게으른 나 자신을 탓하게 되었다. 그럼 또 어디선가 신선한 이론을 얻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얼마간 활력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겨웠다. 빈약한 실천으로 위대한 이론을 쫓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 '주의자'도 아니고, 가져야'만' 하는 신념도 없으며, 인생에 어떤 '목적' 같은 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먹고 싶은 걸 먹고, 피우고 싶은 담배도 피우고, 좋은 음악도 듣고, 마음 껏 만화책도 보았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런 과정들을 거친 다음에야 나는 전에 비해 훨씬 여유있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미래를 약속하는 이론들을 쉽게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훨씬 관대한 사람이 되었고, 덕분에 조금쯤 착해지기도 했다.


여전히 '남'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편이지만, 나는 이게 나의 큰 단점 중에 하나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걸 애써 고치려고 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그 단점에 짓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알지 못했던 시절엔 쌍욕을 했을 법한 상황에서 한번쯤 참는 다거나, 타인의 흠결을 지적하려고 들 때도 참고 넘어가거나 한다. 말하자면 매일매일 어김없이 돌아오는 일상에서 한번씩 고비를 넘기려고 노력한다. 여기에는 어떤 '이론'도 없다.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진짜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내 몸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두가지 사건이 있었던 게 아니다. 지난 십년 사이에 내 인생에 일어난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작용하면서, 그렇게 고비를 넘지 않고 터트리기만 해서는 더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 차라리, 어떻게 하면 화를 좀 덜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좀 더 나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욕을 안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경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같은 걸 고민한다. 그래야 조금 더 살기가 편할 것 같아서다. 공부가 필요한 건 바로 이럴 때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한 고비를 넘을 수 있는지, 오늘의 강밀도를 높여나갈 수 있는지,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하는 것들을 배우는 공부 말이다. '이론'이 힘을 얻는 건 추종자가 생길 때가 아니라, 질문자를 얻을 때이다. 그건 누군가가 자신을 추종하게끔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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